자살이 허기진 밤 #060
눈이 늦게 떠진 날이 있다. 시간을 계산해 보아도 머리까지 감고 나가기엔 시간이 아슬아슬한 그런 날. 결국 나는 조금의 여유를 선택했다. 머리는 모지를 눌러쓰는 것으로 대체했다. 회사는 복장에 있어 자유로운 분위기였지만 모자를 쓰고 온 사람은 나 혼자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 사람들의 나에 대한 잔소리는 희미해져 간다. 일정 나이를 넘긴 사람에게 잔소리는 크게 의미가 없다는 것들 다들 알기 때문이다. 사람은 고치는 것보다 버리는 게 편한 법이다. 이 세상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구부러진 철사를 피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다. 정말 나와 가까운 사람들. 부모님이나 혹은 연인 정도만이 내게 조언해 줄 뿐이다. 그 외에 사람들에게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일 뿐이다. 그 나이동안 한 명쯤은 잘못되었거나 좋지 않아 보이는,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줬을 것이고 그 긴 세월 동안 나는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포기한다.
재밌게도, 나이를 먹을수록 괜찮은 것들이 많아진다. 앞서 말했듯이 머리 한 번 감지 않으면 아침의 여유를 얻을 수 있고, 때때로 수염을 밀지 않거나, 어제 입은 옷을 한 번쯤 더 입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아무도 지적해 주는 사람들은 없다. 나도 점점 부끄러운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늦게 일어났어도 어떻게든 최상의 상태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고, 그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약속 시간에 도착한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조금은 허술한 게 멋이야 라며 자기 합리화를 가끔씩 하기도 한다. 지금보다 더 단정한 나는 사라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느슨한 긴장감을 주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조금의 감정 섞인 말도 참을 수 있을 만큼 친밀한 사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혼자였을 때는 그 느슨한 긴장감을 좀 더 팽팽하게 조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줄근하면서도 혼자인, 최악의 인간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래서 때때로 그립다. 내게 머리를 짧게 자르라는 너, 이런 옷들도 한번쯤은 입어보라는 너.
나는 무섭다. 이러한 사소한 괜찮음 들이 모여서 그 누구도 나를 바라보게 하지 못할 것을. 고집불통이고 재수 없으며 악만 남은 노인이 되어 늙어가는 것이 무섭다. 그렇게 변한다면 이미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 맞을 터였다. 나는 그런 나를 감당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