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퇴사 노트 작성하기

자살이 허기진 밤 #061

by GSR
48D68454-4888-4FFD-A542-7E34D5494F74_1_105_c.jpeg


인턴이나 계약직등을 제외하면, 나는 지금 세 번째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정규직으로 첫 회사에 입사했을 당시, 선배들은 3년, 5년, 7년 혹은 3년, 6년, 9년의 거부할 수 없는 퇴사 욕구를 조심하라고 했지만, 나는 전해 들었던 최소한인 3년도 되기 전에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3년을 넘겨본 회사가 없었다.


영어 시험을 위한 학원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첫 번째 회사는 그 아르바이트를 했던 회사였다. 알바에서 정규직으로 갔었고 업무는 그리 타이트하지 않아 나름 편한 곳이었다. 주변에 마음 맞는 동료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한 이유는 여기서 오래 근무해도 발전할 것 같지 않아서, 미래의 나의 비전이 보이지 않아서 퇴사했다. 만약 내가 여기서 5년을 더 있다고 했을 시, 나는 다른 회사에 쉽게 취업할 수 있을 장도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 보았을 때 내 대답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 나는 팀장님께 이러한 상황을 이야기했고 퇴사 절차를 밟았다.


퇴사 후 계획이 있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무산되고, 망가진 후, 두 번째 직장에 취업했다. 나는 그곳에서 2년 동안 일을 했었다. 1년 후 급여 및 과도한 업무로 인해 퇴사하려 했으나 고민 끝에 무산되었다. 하지만 다시 1년 후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 이유는 이 회사에서 배울 건 다 배운 것 같아서, 사람 그 자체가 아닌 몇몇 사람들의 습관이 나에겐 너무나 고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싫은 건 아니었다. 내가 견디기 힘들었을 뿐)


두 번째 직장을 퇴사하기까지, 내가 충동적으로 퇴사한 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나의 퇴사 이유를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이 이유들은 퇴사한 후 미화된 기억과 편안해진 몸으로 인해 객관성을 잃을 수 있기에 나는 회사 다니면서 작성했다. 그 목록들은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 나는 왜 퇴사를 결심했을까?


이유를 하나씩 적어보니 수십 가지가 나왔다. 정말 사소한 것부터, 커리어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까지. 하나씩 틈날 때마다 적었다. 아마 2주 넘게 적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 질문에 나온 답변들은 두 가지 질문으로 나누어졌다.


* 지금 회사에서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있다면 어느 방법으로 해결 가능할까?

없다면 어느 방향으로 생각해야 할까?


이 질문과 더불어 본질적으로

이 회사는 나의 향후 커리어에 도움이 될까?

질문을 함께 생각해 보니, 어느 정도 나의 미래에 대해 윤곽이 잡혔다.


생각하고 있는 퇴사 사유들을 세분화하고 또 세분화했다면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으로 구분 가능하며 인간관계와 같은 사적인 것들은 직접 들어가 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기 때문에 제외, 공적인 부분에서의 개선점을 찾으려고 했다. 이직 시 나는 어느 점을 더 중요시하게 여기고 이직할 회사에서는 이걸 꼭 충족시켜야 하는지를 더 파악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조건을 만족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중요도를 구분할 수는 있을 터였다.


재미있게도 나는 이렇게 구분을 하며 깨달은 건, 지금 몸담고 있는 업무가 내가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지금 시점에야 이 업무를 7년 가까이했지만 지금 와서야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건 모순이지만. 흐르는 대로 살다 보니 이 일을 하고 있는 셈이어서 어느 순간이 되면 커리어를 버릴 생각도 하고 있었다.


뭐, 아무튼 나는 이 이후 어느 정도 개선된 사항에 만족하면서 세 번째 직장에 취업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는 회사 다니면서 다음 직장이 확정되고 퇴사를 하라고 말했지만 정작 나는 이직보다는 퇴사가 우선이었다. 나는 회사에서의 삶보다 굴레가 없는 나만의 삶을 좀 더 원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 생산적인걸 한 건 아니지만 나는 그 자체로도 무척 좋았다. 그래서 나의 미래는 회사에 있지 않았고 따라서 이직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퇴사를 생각하며 했던 생각들은 자기 합리화였으며, 불평 가득한 데스노트였을지도 모르지만, 뭐 어쨌든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었으니 오히려 좋다고 해야 할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잔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