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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에 휩싸인 나의 정신과 일기 #6

자살이 허기진 밤 #062

by G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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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정신과에 상담을 받으려 방문했다. 의사와 마주 앉았을 때 나는 약을 거의 먹지 못한 것을 말했다. 최근 역류성 식도염과 더불어 아킬레스건염으로 처방받은 약이 오히려 나의 증세를 악화시키는 것 같아 약을 거의 먹지 못했었다. 나의 증상들의 약을 한번 먹으면 나는 이틀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명치와 목에서 계속 답답하고, 토하고 싶은 느낌과 더불어 심한 두통을 함께 동반했다.


육체적 아픔이 내가 약을 먹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과, 더불어, 정신과 약을 먹지 않았지만 내게 영향이 크게 미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슬 내가 왜 정신과에 다니는지 의문이 들었다. 기분은 너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우울은 나의 친구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무의미한 건 늘 같았다. 의사가 의례 물어보는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말도 이제 할 말이 없었다. 일은 바빠서 업무시간 안에 밀도 있게 일했고, 야근하지 않고 집에 와서는 이미 체력이 바닥난 무기력함이 나를 감쌌다. 집에서 스멀스멀 피워지는 나의 우울한 생각들은 무기력함에 이미 빨려 들어가 기를 펴지 못했다.


내 앞에 앉아있는 의사의 말은 예측 가능했고 나는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없었다. 할 말이라고는, 일이 나의 적성과 맞지 않아 퇴사를 생각하는 것. 뭔가 생산적인 것을 하고 싶지만 무기력으로 인해, 하지 못한다는 그런저런 이야기를 반복했다. 방문 전 했던 우울 평가를 보고 아직 그리 낮아지지 않았다는 말을 또 한 번 더 들었다. 내가 지금 몸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은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정신적으로는 우울증이, 내부적으로는 역류성 식도염이, 겉으로는 아킬레스 건염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스트레스를 자주 받고 있다는 말을 했다. 역류성 식도염으로 약을 2주 넘게 먹고 있었으나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밥을 먹고 바로 자지도 않았고, 컴퓨터 책상 앞에 늘 앉아있었기에 원인을 크게 제공했다는 생각은 안 했다. 결국 스트레스였다. 의사는 내게 위가 스트레스에 가장 민감한 장기라는 말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언제부터 이런 증상이 심해진 것 같은지 와 같은 질문을 했고, 나는 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1년 전 즈음부터 심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의사는 조용히 생각하더니 나에게 일주일에 한 번, 상담사와 이야기하는 치료를 권유해 주었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도 몰랐고, 새로운 제안에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나는 이 치료들이 나에게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조금 더 놀랐다.


의사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삶에 의미가 없다고 느껴진다고 했다. 삶의 의미가 없으니 모든 것이 무의미했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도 상실해 보인다고 했다. 이건 나를 관통했다. 나의 문제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방황하는 것, 무엇이든 내게 의미를 주지 않는다. 그러니 모든 것에 무덤덤하고 관심 없는 것. 마지막으로 의미가 있었던 건 헤어진 여자친구였겠지만 나에게 상처를 주고 헤어진 이후로 나의 원망의 대상만 되었을 뿐이었다. 그 이후 나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대로 죽어도 괜찮을 정도로.


그나마 여행을 하려 했지만 열정은 이미 바닥난 상태. 지도를 보는 것부터 나를 피로하게 했다. 계획을 세우려고 하다가도 그냥 인터넷 창을 닫기 일쑤였다. 그냥 위험한 곳에 가서 총에 맞아 죽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미션이 주어진 셈이었다. 나는 살기 위해 나의 삶의 의미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이를 찾을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바닥에 깔려 있긴 했다. 그냥 가라앉는 게 나은가? 아니면 나아가지 못할 걸 알면서도 헤엄을 쳐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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