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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부여된 이유가 없다

자살이 허기진 밤 #066

by G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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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난 이유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고민했고 신과 운명 등의 개념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결국 그런 건 없었다. 이유는 없이 그냥 존재할 뿐, 아무도 사명을 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의미 없이 태어난 것이다. 의미 없음은 무한한 자유. 존재의 사유 속에서 사람들은 본인만의 길을 찾아 헤매고 정착한다. 나 역시도 그 안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아 헤매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의미 없음은 자유이지만 나에게는 공허이자 부유.


한때 나의 의미는 낭만과 즐거움이었다. 어차피 아무것도 없이 태어났으니 내가 손에 쥔 것들은 모래처럼 부서질 것이 자명하니 주먹을 조금 펴도 괜찮아 보였다. 새끼손가락 하나 펴는 게 뭐 그리 어려울까. 어차피 빠져나가는 건 새끼손가락만큼의 모래알뿐. 젊음과 의미 없음을 만나서 낭만을 만들어내는 시기가 나에게도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젊음은 점차 사그라지는 게 보이고, 주변도 점차 앞으로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었다. 다들 본인만의 의미를 찾아서 간직했지만 나는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특별할 줄 알았던 내가 누구보다도 평범해 보이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게 된 건 이카루스의 날개일까? 원하는 것을 갈망할수록 오히려 가장 멀리 멀어지는 걸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걸까? 아직 나에게 의미 없음은 그대로이지만 점차 가라앉고 있었다. 그냥 이대로 살면 적당히 벌고, 죽으면 되지 않을까? 남들은 그렇게 쉽게 하는데 나에게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나는 이런 면에서 쥐약이다. 사람들은 삶의 일반적인 라인에서 본인의 가치를 더 높이는데 집중하는 것이 대단했다. 나는 늘 부러웠다. 직장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 일은 일이니까 하며 꾸준한 사람들.


젊음의 상실은 내게 안정감을 추구하게 만들었고, 두려움을 심어주었고, 절망을 주었다. 이 모든 게 뒤엉켜서 나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퇴사하고 싶어지고, 의미는 이미 찾을 수 없어졌다. 그리고 뭔가를 꿈꾸지만 막상 하는 건 두려워했다. 한 발짝 나서면 유난일까. 가만히 있으면 휩쓸리는 것. 일상은 내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어서 쉴 수 있는 시간에는 머리와 몸을 쓸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다 버려야만 걸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낭만은 낭비로 이루어진다. 낭만은 버릴 수 있어야 완성된다. 낭만은 무엇인가를 남겨야 한다. 회사는 나에게 시간과 마음을 낭비하게 했지만, 나에게 저축을 주었고, 무엇인가 결과물을 남길 수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낭만이 아니다. 결국 찾아 헤매어야 했다. 그러면 나에게 낭만은 무엇인가. 결국 나는 신기루를 보며 달콤한 낭만을 꿈꿀 뿐. 그곳은 지옥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없다고. 인생에서 웃을 수 있는 날이 며칠이나 된다고. 남들도 다 이렇게 산다고 하지만 그건 그들이 대단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며, 나는 무력한 존재이기에 이럴 수밖에 없는 것. 이대로 중간정도의 괴로운 삶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불꽃처럼 지내고 최하위의 삶을 살거나 죽을 것인가.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몇 년 즐거운 삶을 살다가 죽으면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낭만은 낭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삶을 낭비하는 것도 낭만이지 않을까. 나의 남은 인생 중 즐거울 5년을 빼고 다 돈으로 환산한 후 태워버리면 행복한 삶이 될까. 슬픔은 나누면 얕보일 수 있는 여지를 주게 되지만 즐거움은 웃으며 나눠줄 수 있으니까. 적당히 위험한 국가에서 총을 맞아 죽는다면, 그것도 어쩌면 낭만이 아닐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질 수 없는 특별한 죽음이니까. 평범한 내가 어쩌면 가장 특별한 순간이 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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