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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의 소생

자살이 허기진 밤 #067

by G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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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받은 뒤, 몇 주가 지났다. 여전히 나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삶에서 회사를 떼어내는 건 아직 불안했다. 일요일 밤에는 월요일이 되어버릴 내일이 가슴을 짓눌렀고, 때때로 위가 역류하는 낯익은 불쾌감은 감내해야 했다. 자기 싫은 기분을 억누르며 자리에 누워서 생각했다. 이건 살아지는 삶일까? 아니면 살아가는 삶일까? 마음은 후자로 점점 기울어지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또 그 사람이 생각났다. 잠은 나에게 있어 휴식이지만 이 긴 고통을 지나야지 찾아왔다. 고통이 없는 하루는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아침 알람을 세 번쯤 무시하고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멍한 얼굴로 칫솔질을 하고 샤워를 끝내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조금 더 피곤해 보이고, 주름진, 늙어 보이는 내가 거기 있었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옷깃을 여미며 회사에 갈 준비를 했다. 또 가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마주해야 했지만, 알고 있었다. 지금 내가 고통받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당연히 어떻게든 해결될 것임을. 나는 그걸 알면서도 그 과정이 지난하고 마주하기 어려웠다.


의미와 의욕은 무엇일까. 의미는 삶의 방향성을 만들어주는 요소이며, 의욕은 행동에 대해 추진력을 실어주는 요소이다. 사람들은 개인 각각의 요소에 따라 의미와 의욕을 부여하며 살아간다. 그럼 나에게 묻는다. 이건 의미 있는 삶일까? 생각해 보았다. 삶에 있어서 의미는 없었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추측이 난무하는 미래는 나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의욕도 없었다. 의욕과 의미는 미래를 가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미래가 없기에 삶에 대한 의미도 의욕도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하나 소원이 있다면 내가 죽고 하는 시점에 지구가 멸망하는 것뿐.... 내 심술이 조금 섞였다.


의미는 없었지만 의욕은 가끔 필요했다. 무언가를 한번 더 시도할 수 있는 힘. 건강도 취미도 의욕이 바탕이 되어야 챙길 수 있었다. 나는 빨리 죽고 싶어 하긴 했지만 병에 시달려 골골거리며 죽고 싶진 않았다. 모든 게 무의미했지만 그냥 누워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았다. 나는 그나마 최선의 삶을 희망했다. 그렇기에 억지로 의욕을 짜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인가에 빠져들어야 했다. 덕후가 되어야 했다. 그러면 나의 의욕도 되살아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나처럼 의욕 없고 냉소적인 사람들 보다는 무엇인가에 깊게 몰두할 수 있는 덕후들이라고 생각했다. 금방 싫증 내는 나는 삶에서의 방향조차 잡을 수 없었다.


책은 독서모임을 통해서야만 간신히 한 권씩 읽을 수 있었고, 악기는 연주 하나도 못하는 것에 금방 싫증이 나버려 지속할 수 없었다.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하지만 어디 나가거나 타인들 앞에서 당당하게 찍을 수는 없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의 모든 행동이 내 얼굴을 빨갛게 했다. 무엇이 나의 의욕을 돋게 할까? 아니 그 취미를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줄까? 이제 더 이상 나는 의욕만으로도 모든 걸 할 수 없었다. 물론 의욕도 사라졌지만 남의 눈치를 점점 더 보게 되었다. 마음속으로는 어차피 한번 보고 말 사이인데 뭐가 문제지?라고 하면서도 늘 눈치를 보았다.


나이를 점차 쌓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아픈 건, 삶의 중심이 심장에서 뇌로 전이되었다는 것이었다. 나의 의욕보다는 눈치가, 낭비보다는 효율이, 휴식보다는 생산성이 우선되었다. 삶에서 설렘은 이제 없다시피 했고,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 끌림보다는 계산이 우선되는 사람이 많았다. 감정은 삶이라는 코스에서 메인디쉬였으나 이제는 디저트 정도로 격하되었다. 필수가 아니라 있으면 좋은 정도의 딱 그런 느낌. 서로를 만날 때, 이제 낭만은 사라져 갔다. 사람을 의미로 삼는 게 제일 좋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나를 의미로 삼지 않았다. 물론 심장이 중심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게 되는 건 별개의 이야기.


그래서 나는 뇌가 아닌 심장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헤매어만 했다. 뇌가 계산하지 못하도록 심장만이 의욕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했다. 뇌는 이성이 아닌 억제기였다. 그 애와 만났을 때도 나의 중심은 그래도 심장에 가까웠었다, 지금은 뇌로 전이되어 버린 지금 더 이상 되돌릴 수 없기에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덕후의 첫 발자국은,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처음부터 크면 내 마음이 감당할 수 없게 짓눌러져 버리니까. 소소하지만 확실한 결과가 남고, 트렌디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이런 계산적인 고민을 한 것부터가 이미 그른 게 아닐까. 나 역시도 이미 심장은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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