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허기진 밤 #073
네가 나의 동네친구라는 개념에 어울리는 건, 너는 나를 모르고 나도 마찬가지지. 그만큼 서로의 대한 선입견이 적어. 물론 첫인상에 대한 선입견은 아니야. 익숙함에 대한 선입견이지. 얘는 그럴 것이라는.
나는 네가 무슨 일 하는지 몰라, 너도 그렇고. 모임에서 만난 우연한 사람. 그 포지션은 너무나 이상적이야. 모임의 주제인, 단 하나의 관심사만을 공유하고 나머지는 신비로움으로 채워져 있어. 특히 함께 공유하는 지인 따위는 없지.
타인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기도 어려운 시대. 사실이 무례가 되는 시대. 모두 방어적인 내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엔 아마 나의 무색무취한 외모도 한몫할 거야. 늘 적당이 가장 어렵지. 그래서 더 이상적일 수 있어 우리가 만난다는 것은.
그렇기에 우리는 만날 때마다 내구성이 닳아. 단지 흥미와 알 수 없음으로 만났기 때문이야. 신비함이 벗겨질수록 우리의 관계의 내구성 또한 닳고 있는 거지. 빠르게 깨진 후 아쉬워하겠지.
익숙함은 편안함을 줄 수도 있지만 다른 선입견을 주지. 얘는 이럴 것이라는. 그게 틀리지는 않아. 하지만 나는 그러길 원하지 않아. 그래서 나는 나를 이런 사람이라고 스스로 정의 내리지 않아. 10일 중 8일을 피자를 먹는다고 해도 2일은 다른 새로운 메뉴를 찾을 수 있지. 그럴 때 피자를 권하는 건 나는 싫어.
때때로 서로를 꼭 알아야 할까 의문이 들면서도, 그렇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 대화를 할 만큼의 최소한의 정보만으로 이야기하는 건 꿈이겠지.
그럼에도 가까워서 좋아. 걸어서 5분, 신호등이 방해한다면 10분이면 만날 수 있지. 술을 걸치고 적당히 알딸딸한 상태로 헤어져 걷는 건 정신을 차리는 대에도 도움이 되지. 때때로 커피를 마실 수도 있을 거야.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며, 감지 않은 머리를 감추기 위한 모자까지 쓴 채로.
만남은 조금의 관심에서부터 시작되고, 익숙함이 되고, 지루함이 되는 그 과정을 거치면서 퇴색되기에, 익숙함이 되기 전 연락을 하지 않는 것도 어쩌면 건강한 관계가 아닐까. 순간의 만남으로 시기를 기억하는 사진처럼, 기억 저편에 박제된, 가끔씩 아련한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