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허기진 밤 #072
독서모임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책을 어떻게 구하는지 물어볼 때가 있다. 이북을 구매하여 핸드폰으로, 혹은 이북 리더기를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고,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책을 사서 소장한다. 대부분 책이 차지하는 공간이 부담스러워서 결국 이북 혹은 대여라는 방법을 통하게 되었다고 했다. 물론 다수의 사람들은 종이 책을 읽는 걸 선호하지만, 한정된 공간 속에서는 편안함보다 관리의 효용성이 더 주목받고 있었다. 나는 아직까지 종이책으로, 내가 직접 사서 읽는 것을 더 선호한다.
내가 책을 사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책을 넘기는 경험 자체가 만족스럽다. 넘길 때 들리는 사각거리는 감촉, 새 책에서 나는 잉크 냄새 혹은 비와 섞여 나는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좋다. 두 번째는, 마음에 드는 책이라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책 속의 한 문장이 생각날 때마다 책을 펼치기에, 늘 내가 생각날 때 옆에 있도록, 나의 책장 속에 책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필로 종이 책에 순간의 생각을 쓰는 걸 좋아한다. 그때의 시점의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시간의 편린을 조금이라도 남겨 놓을 수 있도록. 그렇기에 나는 책을 사서 내 책장에 꽂혀 있어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쩌면 나는 소유욕이 강할지도 모르겠다.
할 일 없이 무료한 주말, 좋아하는 에세이를 읽으려고 찾아보았으나 책장의 꽂혀있는 책들 중 노란색 표지는 보이지 않았다. 리미티드 에디션으로도 가지고 있지만 낡은 책을 찾아 헤맨 이유는, 책 그 자체보다 밑줄을 쳐가며 썼던 나의 속마음들이었다. 생각해 보니, 전 여자친구에게 읽어보라고 건네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건네어준 책이 대여섯 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책들을 돌려받지 못한 채 이별을 맞이했다.
지금은 많이 무덤덤해졌다고 하나 이렇게 직접적인 기억이 떠올라버리면 힘들어진다. 책을 돌려받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멍하니 다른 책 표지만 손톱으로 긁고 있을 뿐. 역시 영원히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건 없는 걸까. 돌려받을 수 없는 것들, 아예 내 손을 떠나버린 것들에 대한 마음은 역시 접어야 하지만 그 아쉬움 때문에 생각이 깊어질 뿐.
결국 핸드폰을 들어 같은 책들을 다시 구입했다. 이제 그 시점의 기록된 나는 돌이킬 수 없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도 다른 사람이다. 완성된 글은 가능하면 고치지 않는다. 그 글을 쓸 때의 나와 이후의 나는 다른 사람이기에. 그렇기에 닳고 닳은 지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다시 메모로 채워 넣어야 할까.
책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쌓이고 또 쌓이고, 나의 메모도 틈틈이 기록될 것이었다. 하지만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나는 모든 책의 나의 마음을 집어넣을 수 없다. 언젠가 수백 권의 책들을 노끈에 묶어서 버렸을 때처럼 나 자신도 한도 초과되어 묶어 버려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책들을 위해서라면 몇몇 중요도가 떨어지는 책들은 버려야 하니까.
그리고 혹시나, 언젠가 그 책을 그 친구가 다시 꺼내어 본다면, 나를 기억해 줄까? 그 시점의 나는 만나기 훨씬 이전이지만 그 시절의 나는 이제 너밖에 간직하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그건 이제 네 손에 달려있으니,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