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상의 모순

자살이 허기진 밤 #070

by GSR
IMG_3544.JPG

회사에 다니며 가장 큰 고민은 점심 메뉴다. 점심시간 30분 전, 회사 메신저는 점점 달아오른다.

"오늘 뭐 먹을까요?"

"어제 저녁 뭐 드셨어요?"

질문과 대답이 오가며, 메뉴의 후보는 점점 좁혀진다. 결국 남는 건 늘 가는 식당들, 그리고 간혹 추가되는 새로운 변주 한두 곳이다.


지하 불백집, 수제면 우동집, 벤또, 제육볶음, 라멘, 중국집, 마제소바, 육회비빔밥, 쌀국수. 가끔 새로운 음식점이 추가될 때도 있지만 결국 이 안에서 돌고 돈다. 다들 어딘지 알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가서 뭘 먹을지도 함께 상기된다. 머리를 싸매고 결정한 음식점에 앉아 주문하면 다른 사람들은 각자 다른 메뉴를 주문하지만 나는 늘 같은 메뉴를 주문한다. 늘 먹던 그것으로.


나의 생활 패턴도 이와 비슷하다. 익숙한 것을 기반으로 생활 반경이 정해지고 그 안에서 맴돈다. 같은 카페, 같은 편의점, 같은 배달 음식, 같은 게임. 나는 늘 낯선 곳과 모험을 추구하지만 일상적인 삶은 반복적이고 안정적인 것이 좋다. 안정적인 것을 바탕으로 모험하는 것이 좋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람은 본래 모순적이다. 나는 특히 더 그렇다. 나는 루틴을 선호하면서도, 아무도 가보지 못한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은 낯섦 그 자체를 경험하러 가는 것이니까. 나의 생활 패턴과 상반되지만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편견을 가질 수 없는 존재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타인을 대할 때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확정하여 정의 내리게 도와주지 않는다. 그것 자체가 편견이 될 수 있으니. 취향이 뚜렷하지 않은 나에게 확실한 yes와 no가 아닌 70%의 yes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함께 할 시간이 알려줄 테니까. 나에게 100%란 없다. 국밥을 싫어하지만 누군가 함께 먹자고 하면 가끔은 먹을 수 있는 인간이다.


때로는 취향을 포기하고 맞추기도 하고,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어떤 이에게는 차갑게, 다른 이에게는 따뜻하게 대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모순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편견을 경계해야 한다. 본디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삶을 편하게 해 주지만, 때때로 다르게 생각해야 상대를 더 알아갈 수 있는 법이니. 그러니 소중한 사람일수록, 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열어두어야 한다.


그렇기에 관계에서는 시간이 늘 필요하다. 만날수록 새로운 상황이 생기고 그때마다 마주하며 경험을 쌓아야 한다. 감당할 수 있으면 깊은 관계가, 감당할 수 없으면 자연스러운 이별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선택의 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