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허기진 밤 #071
축구를 하고 친구차에 타서 함께 집에 돌아가는 길. 우리가 할 말은 한정되어 있었다. 결혼 그리고 집. 이 주제가 우리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나는 지루하고 할 말이 없어 조용히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SNS에서는 아이 사진 혹은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올라왔다. 아이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이런 보기 싫은 게시물들은 숨김처리를 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들은 이제 결혼을 하고 애를 가졌다. 그들은 삶의 다음 단계로 무사히 넘어간 사람들이었다. 이제 나 역시도 선택을 할 때가 왔다고 느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두 가지 길이었다. 어떻게든 일반적인 루트를 따라가는 것. 아니면 탈선하는 것.
전 여자친구와 헤어지며, 이번 생에서는 결혼을 하지 못하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별 후, 나는 모든 관계에 피로감을 강하게 느꼈다. 부모님의 밥 먹었냐는 일반적인 안부도 듣기 싫었다. 나에게 어떠한 관심이라도 주지 않기를 바랐다. 직전 여자친구는 그런 관심이 싫지 않는 마지막 사람이었다. 이제 새롭게 만나며 관계를 쌓아가는 것도, 맞춰가는 데 시행착오를 거쳐가는 것도 너무나 싫었다. 물론 연락하는 이성이나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권태로웠다. 결혼 연령층이 점점 더 늦춰지고 있고, 일부 유명인들은 40대 혹은 50에 가까워 결혼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건 특수한 범위일 뿐, 나는 이미 적령기가 한참 넘었고 가진 게 없는, 쉽게 더 나은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존재.
친구의 차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면서 순간 삶이 너무나 무기력해졌다. 그냥 이렇게 편안하게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걸어가면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까지 가는 그 거리, 골목의 빛을 담당하고 있는 가게들의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라면 나도 지불할 잔고를 높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손에 음료수는 없을 것이기에. 그 행위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나는 늘 일을 해야 하는 셈이었다. 물론 이 툴툴거림이 모든 경제활동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냥 순간의 편안함과 더불어 나의 남은 삶이 지루해지고 예측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뿐.
잘 살기 위해서 결혼을 선택한다. 사랑과 더불어 경제적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범위에서 더 잘 살기 위해서 각자가 각자의 의무를 부과한다.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어린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이런 나기에 상대를 배려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건 아닌 것 같지만. 가장 좋은 건 서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면서, 함께 있으면 행복한 관계가 가장 좋겠지만 그건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선택의 기로에 다다랐다고 느낀다. 적은 가능성을 믿으며 사회적으로 그나마 믿음직한 나를 만들어 대비할지,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사회적으로 최악인 내가 될지. 무슨 길이든 후회할 길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옳을까? 나는 늘 내가 선택하지 못한 길을 그리워하며 후회할 것이다. 물론 이미 닳고 닳은 나는 만남에 있어서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도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