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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네는 결핍

자살이 허기진 밤 #075

by G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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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함께 사주를 기반으로 한 궁합을 보았다. 미래를 알 수 있는 건 늘 관심이 가기 마련이었다. 나와 함께 나열된 여자친구의 사주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단지, 그러려니 하는 마음뿐이었다. 웃으면서 관심을 보이는 척했으나, 정말 관심 있는 건 나 자신이었다. 그러므로 그 사이에 있었던 궁합은 가장 필요 없는 글자였다.


나의 사주는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는 것. 다만, 한 번 마음을 주면 오래간다는 것이었다. 그걸 본 여자친구는 우리가 이렇게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 서로에게 마음을 준 것과 같다고 이해하였는지, 활짝 웃었지만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음이 아직 그녀를 향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사주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저 서로 대화하기 위한 한순간의 유흥일 뿐.


첫눈에 반한다는 것을 믿지 않고, 그런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다다를 수 없는 것을 나는 안다. 만난 지 며칠 되지 않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마음의 용량은 정해져 있었고, 작은 내가 줄 수 있는 마음은 그리 크지 않았다. 우연히 서로의 붉은 관이 연결되었지만 나의 관은 낡아서 깨지고, 녹슬어 그녀에게 도달하는 마음은 그리 많지 않거나 오염되었다. 단지 학습된 다정함이 마음을 증폭시켜 보이게 할 뿐. 아직 온전히 마음을 줄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튼튼한 그녀의 관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옆에서 웃고 있는 여자친구는 내가 단순한 외로움 때문에 만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나를 좋게 보아주는 것을 알지만, 나는 그녀를 보며 쉽게 예쁘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때때로 연락도 보내지 않고 홀로 멍 때릴 뿐인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아직 초반이라 서로에 대해 적응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려나. 언젠가 진정한 나를 눈치채는 날이 온다면 무슨 말이 필요하지.


허무하게 보내는 저녁에 안부를 묻는 연락을 받고, 가끔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는 것. 손을 잡고 입을 맞추는 것. 별 것 아니면서도 때때로 피를 돌게 했다. 그때는 서로가 같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필요가 일치하니까.


그래서 착한 사람이 싫었다. 나는 나 같은 사람을 만났어야 했다. 서로가 서로를 언제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사람을 만났어야 했다. 진정으로 좋은 사람은 가능한 상처받지 말아야 했다. 마음 없음으로 스스로를 자책하는 일을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그 원인은 나였지만, 나 역시도 그런 사람들을 만나 가슴이 아렸다. 연애에서 생긴 상처는 다음 사람에게 화풀이되고, 그건 계속 이어져 오기 마련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이기적이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나는 나쁜 사람이었다. 그걸 안다는 건 내가 생각보다 더 나쁜 사람이라는 뜻.


덤덤하게 혼자여도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늘 불안해했다. 나이에 쫓겨 사라지는 기회를 보며 나는 초조해졌다.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치면 나는 이제 영원히 혼자가 되는 걸까? 이런 생각에 나는 그저 기회만 생기면 쫓아가는 날파리와도 같았다. 가만히 있으면 굶주려 말라죽고, 쫓아가면 후회만 남을 뿐인 인생. 나의 초조함으로 이기적으로 변한 나를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녀가 나의 손을 잡았으나 잡은 건 말라버린 낡은 나뭇가지. 따뜻하게 보여도 잡으면 상처 나는 그런 하등 쓸모없는 것. 눈도 하나, 팔도 하나뿐, 한 눈을 나를 바라보고, 한 손은 쓰러져가는 나를 붙잡고 있지. 그런 내가 건넬 수 있는 건 겨우 이런 어색한 함정일 뿐. 나를 위해 너를 희생하라는 말을 포장지에 싸서 주는 나는 가장 이기적인 사람. 이성보단 감정이, 감정보단 본능이. 본능보단 죽음이 우선인 나. 휩쓸린 네게 그저 말로만 위로를 전할 뿐. 이미 마음에 장애가 생겨버린 나는 정말 포장지에 싸여 있는 썩은 사탕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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