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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sm Aug 11. 2019

1박 3일 설악산 천화대 릿지 등반

뜨거운 여름날의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추억을 남기며

설악산 천화대 릿지길


등반을 하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설악산 천화대 릿지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릿지 등반 코스로 잘 알려져 있다.


여름과 초가을 시즌에만 허가가 나는 곳이고, 3명 정도의 인원이 아주 이른 새벽에 올라 밤늦게 하산하는 일정으로 당일 등반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중간에 비박을 하고 2일간 등반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출처: https://m.blog.naver.com/sigint/


길이도 길이지만,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고 중간중간 워킹으로 걸어가야 하기에 피로도도 엄청난 곳이기도 하다.


암튼, 암벽등반을 시작하고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천화대 릿지를 1박 3일(2019.08.02 ~ 2019.08.04)로 다녀온 이야기를 좀 풀어볼까 한다.



8월 2일 밤 10시.


등반 장비점의 메카인 종로 5가에 산악회 선배님들과 함께 스타렉스 1대로 설악산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번 등반은 총 10명이고, 이 중 2명은 따로 출발했고 8명이 한 차로 이동했다.



속초에 도착한 시간이 3일 새벽 1시경.

해가 뜨기 전에 출발을 해야 하기에 다소 이른 아침식사를 위해 속초에 있는 천진동 해장국집을 찾았다.


앞으로 내일 점심때까지는 이런 밥을 먹을 수 없기에 허겁지겁 든든히 배를 채웠다.



설악산 소공원 주차장으로 다시 출발한다.

약간 졸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설레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다.


설악산 천화대.

그 얼마나 가고 싶었던 곳이었는가!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배낭을 다시 한번 체크한 후 출발 전 단체사진을 찍는다.


모두 안전한 등반을 기원하며!



신선대를 지나 천화대 릿지 1 피치 아래쪽에서 장비를 착용하고 나니, 시계가 4시 31분을 가리킨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이라 해드 랜턴에 의지해서 장비를 착용하고, 서로 빠뜨린 것은 없는지 크로스 체크를 한다.



출발 전, 이번 등반의 안전과 대원들의 단합을 위해 다 함께 파이팅을 한다.


“산울림~~ 하야~~ 하이!”



1피치에서 앞서 나갔던 선행팀을 만나 잠깐 딜레이가 생겼고 그 사이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10명의 대원들이 1피치를 오르고 나니, 어느덧 해가 꽤 많이 올라왔다.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면서 본격적인 천화대 릿지 등반이 시작된다.



앞서 선등으로 나간 대장님 덕분에 이런 멋진 사진을 얻는다.


등반을 하다 보면 나와 동료의 페이스만 생각하다 보니 주변의 멋진 풍광을 잘 못 보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아직 경력이 많지 않다 보니 여유가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천화대 릿지는 이처럼 중간중간 짧은 하강 루트가 많은데 어김없이 앞서 간 대장님께서 이런 멋진 사진을 찍어주신다.



이 날 등반 중에 요란한 핸드폰 알림 소리가 울렸는데, 알고 보니 재난문자였다.


강원도 전역에 폭염주의보가 내렸으니 실외활동을 자제하라는 내용이었다. 정말 땀이 비 오듯 내렸고, 체력은 금세 소진이 되어가는 그런 기분이었다.


중간중간 그늘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휴식을 취하면서 수분 섭취와 체력 안배를 한다.



오르고 내리고 가 계속 반복된다.

살짝 지루하기도 하지만, 주변의 이름다운 풍광이 이 지루함을 금방 잊게 만든다.



슬슬 해가지기 시작한다.

10명이 등반을 하다 보니 다소 시간이 지체되어 이제 겨우 천화대 릿지 코스의 절반 가량을 왔다.



왕관봉을 가기 전, 사선크랙 정상에서 이런 아름다운 절경을 만난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신선이 된 기분이다.


이 맛에 등반을 한다. 이런 광경은 등반으로 올라야만 볼 수 있기에.



왕관봉 정상에 오니, 밤 9시가 가까워진다. 비박지를 찾지 못해 급하게 헤드랜턴을 켜고 야간 등반을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더 이상 야간등반은 안전을 위해서라도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대장님의 판단하에 왕관봉 정상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쪽잠을 청한다.


뜨거운 여름날이라 그런지 가져온 침낭도 필요 없이 그냥 바람막이 옷 한 벌만 입고 자도 따뜻하다.


그렇게 천화대 등반의 첫날이 지나간다.



8월 4일 새벽 5시.

또다시 남은 등반을 시작한다. 벌써부터 아래쪽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서두르지 않으면 이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또 시간이 지체될 것이다.


순간 일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너무 아름답다.



왕관봉에서 단체사진을 한 장 남긴다.

맨 앞의 대장님부터 마지막 말번까지.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등반에서는 각 순번 별로 정해진 역할이 있다.


어쩌면 등반이나 직장생활이나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있고, 이것이 어긋나는 경우 큰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등반은 곧 인생이 아닐까 싶다.



쪽잠이지만, 휴식을 취해서 그런지 다들 표정이 밝다.  



기상과 동시에 바로 출발한 관계로 중간에 간단히 이침을 먹는다.


사실 어제 폭염 속에 등반을 하느라 많이 지쳐서 그런지 난 어제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아침도 입맛이 통 없어서 초코바 1개로 때웠다.


사실 억지로라도 밥을 먹었어야 했다. 발목 부상으로 약 2달 이상 등반을 하지 못해 체력과 감이 많이 떨어져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고, 심지어 배낭도 남들보다 다 무겁게 꾸린 덕분에 어제도 힘들었는데, 마지막 날에도 폭염이 이어지다 보니 희야봉을 앞에 두고 난 결국 GG를 선언했다.


함께 왔으니 함께 내려간다


“함께 왔으니 함께 내려간다”는 대장님의 과감한 결정과....

힘든 건 다들 마찬가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친 후배의 배낭에서 짐을 덜어서 본인의 무거운 가방에 짐을 더하고, 본인의 생명과도 같은 생수 한 병을 망설임 없이 건네준 선배들의 모습을 통해 비록 정상을 앞두고 등반을 끝내야 했지만, 등반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닌 ‘함께하는 것’ 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뜻깊은 등반이었다.

함께한 사람들의 배려와 격려가 있었기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고, 나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고 뭘 더 준비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포기도 실력이다!


작년에 해외 원정을 가는 등산학교 동기 형님께 “포기도 실력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던 어떤 형님의 말씀처럼.... 나와 동료들의 안전은 물론, 더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도 이번 등반을 통해 얻은 소중한 교훈이다.



44살부터 61살까지.

10명의 대원들은 1박 3일간의 천화대 릿지 등반을 안전하게 끝내고 하산한다.


비록 완등이 아닌 미완의 등반이었지만, 완등을 했다면 알 수 없을 소중한 것들을 얻어간다.


언제가 꼭 다시 도전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하산길에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이 눈에 들어온다.


2019년 여름. 좋은 사람들과의 행복한 추억을 남긴다.


등반도, 인생도 두려워하지 말고... 천천히 가자.... 내 옆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천화대 등반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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