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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구마 Nov 18. 2021

이제 대놓고 섹스를 말할 수 있게 된 너에게

오늘 비로소 해방이 된 너에게. 이건 흘려들어도 좋을 잔소리야.

누구나 누군가에게 꼰대가 된다는 진리를 깨달은 꼰대이기에 ―이건 ‘꼰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의 영역이 아니라 ‘꼰대가 된다’는 필연성의 영역이야― 나는 오늘 기꺼이 꼰대가 되길 각오한다.

    

너는 벌써 친구들과 술판을 벌이며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그동안의 긴장이 풀리며 허겁지겁 집밥을 먹고 침대에 널브러져 있을 수도 있겠지. 어느 쪽이든, 그건 확실한 축복이야. 지금껏 머물던 작은 세계에서 아주 가까운 단 한걸음만 나아가도 너를 지켜줄 사람, 제도, 사회가 희미해지는 것을 느낄 테지. 학교, 의무교육, 수능과 입시 따위의 숨 막히도록 공고한 그 시스템들이 사실 네 경계의 안과 밖 모두를 막는 철벽이었음을 곧 알게 될 거야. 안에선 깨부수며 넘고 싶었던 그 높고 두꺼운 벽이 밖에선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똥냄새를 풍기는 고향의 담장으로 보이는 날도 있겠지. 이미 배달과 알바로, 노동자와 사회인으로, 혹은 우리가 알 수도 없는 온갖 모습으로 사회의 한 단면에서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을 너의 또래가 있다. 오늘 아침 엿도 떡도 초콜릿도 받지 못한, 너무 빨리 어른이 된 친구들이 있음을, 너는 자꾸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어른이 되면 어른이 숨기려 했던 것들이 낱낱이 드러나는 순간이 온다. 사랑과 술과 담배. 아직 얄팍한 너의 인생에 숱한 하루를 더해가며 사랑 후에 섹스가 혹은 섹스 후에 사랑이 정해진 순서 없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술은 잊고 싶을 때나 기억하고 싶을 때 모두 유용하다는 사실을, 담배는 확실히 해롭지만 그저 백해무익한 것만은 아님을 너는 알게 되겠지. 그렇게 너는 어른의 것이라 여겨졌던 (그러나 이미 많은 너희가 경험했을) 많은 것을 누리게 될 거야. 숱하게 들었을 자유와 책임, 권리와 의무 같은 단어가 온전히 너의 것이 된다는 말이야. 그렇게 기쁘고 두려운 순간은, 나에게 그랬듯, 너에게도 찾아오겠지. 매 순간 용감하게 즐기고, 깔끔히 통제하고, 때로는 젖어들고 또 빠져나오기를 바란다. 물론 그건 이제껏 누구도 제대로 완벽히 해내지 못한 어려운 일이니까, 만약 멋지게 실패해도 그건 그 나름대로 괜찮겠지.    

 

드디어 마지막 당부야. 무엇보다 나는 네가 죽지 않기를 바라.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육체와 지치지 않는 너의 정신을 함부로 써버리지 않길 바라고, ―너는 튼튼하지만 또한 반드시 소모되기 때문이야― 최선을 다하되 정말로 죽을 만큼 힘들어하지 않길 바라고, 언제 어디서든 함부로 목숨을 걸지 않길 바라. 위태로울 정도로 빨리 달리지 말고, 엑셀도 브레이크도 유턴도 천천히. 청춘은 너무나 소중하니까, 너는 그만큼 너를 아껴 쓰길. 나름대로 삶의 방식을 배우고 채우고 비우면서, 그렇게 무사히 잘 살아가길, 나는 진심으로 바랄게.     


짧게 하려고 했지만 역시나 말이 길어졌네. 나이와 혓바닥은 되돌릴 수 없이 계속 늘어만 가고, 듣기 싫은 말은 언제나 길고 장황하다는 ‘꼰대-론’ 소름 돋게 정확하다고 느끼는 밤이야. 아마도 내가 그렇게 지내지 못했기 때문에, 10년 전의 내가 부러워서, 그냥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말이니까, 너는 그냥 가볍게 넘어가 주길.     


모쪼록, 참 고생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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