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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물림 되는것들 중에서

독립을 하고나서

by 구르미

나는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부모님에게서 분리되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실제로 부모님과 떨어진 것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였다. 매일 아침 등교를 위해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야 했고, 오후 자율학습 후에는 귀가 수단이 없어 난감한 일이 많았다. 결국 부모님은 동생과 함께 자취하는 조건으로 독립을 허락해 주셨다.


자취생활은 예상만큼 자유롭지도, 쉽지도 않았다. 끼니를 거르는 날이 많았고, 부모님이 그리울 때도 있었다. 전화를 드리면 바쁘다고 화를 내시다가도 전화를 하지 않으면 무심하다며 질책하셨다. 나는 전화 한 통에도 수십 번 고민했고, 전화를 못하는 시간동안은 더 불안했다. 사랑받지 못할까 봐, 쓸모없는 딸이 될까 봐, 그렇게 나는 전화 한통으로도 쓸모없는 인간이기를 수도 없이 반복해 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냥 무심한 사람이 되었다.

부모님이 나를 ‘쟤는 참 무정하고 부모 생각은 안하는 아이에요.’ 라고 소개하면 나는 그런 사람이었고, ‘쟤는 아무 생각도 없고 단순해서 내가 하나 하나 다 가르쳐야 돼요.’ 라고 소개하면 사회성도 부족한 사람었던 것이다.


부모님은 나를 ‘머리도 나쁘고, 키도 작고, 못난 아이’라고 입이 닳도록 말씀하셨다. 그 말은 나의 자존감을 바닥까지 끌어내렸고, 평소 잘하던 것도 부모님 앞에서는 덤벙대고 실수하기 일쑤였으며, 마치 그 부정적인 말이 나를 묶어 놓는 저주처럼 나는 그 주문에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내 진짜 모습을 발견했다.

내가 독립을 하고, 길거리 캐스팅이 되어 모델수업을 받으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내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나는 생각이 깊고 다정하고 영리했으며, 사회성도 좋다는 것을 알아가는 중이었다. 그동안 부모님이 ‘예쁘다’는 말을 인사치레로 치부하게 만든 탓에, 나는 스스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내가 누군가를 도왔을때, 누군가를 배려 했을때, 누군가를 위해 애 썼을 때 그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고마웠다. 누군가 무심코 배푼 행동이라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고마워할 줄 모른다면 베푼 사람의 행동이 결코 좋은 일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사소한 배려라도 고마워 할 줄 안다면 기쁘고 행복할 것 아닌가? 그러하기에 선행을 베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감사히 받을 줄 아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일 것이다


부모님의 부정적인 말 속에 갇혀 있었던 나를 구한 것은 결국 세상 속에서의 경험이었다. 인정받고, 칭찬받고, 관계 속에서 내가 가치 있는 사람임을 깨달으면서 나는 조금씩 스스로를 회복해 갔다. 아직도 관계를 맺는 일에는 두려움이 따르지만, 이제는 나 자신을 더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자 한다.


누군가를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소중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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