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만을 위한 배려
이러한 성향은 부모님의 부모님 그리고 그 위 누군가로부터 되물림 된 듯 싶다.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그리고 엄마, 아빠, 이모들, 외삼촌들,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내가 기억하는 일가 친척 대부분이 타인에게 헌신적이고 본인이나 가족이게 소흘한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그 성향을 그대로 물려받아 나 또한 그렇게 살고 있으며, 그런 남편을 만나 아이들까지 그런 성향을 타고 난걸까? 아니면 그냥 살면서 배우는걸까? 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게임, 스포츠, 놀이 할 것 없이 항상 지고만 오는데 늘 즐거워 보였다. 나는 주변 학부모들과 소담을 나누던 중 저 애는 뭘 하고자 하는 의욕도 없고 애살도 없고 승부욕도 없다고 했더니 아이가 내게 와서 말했다.
“친구가 이겨서 기분이 좋으면 나도 기분이 좋아요”하고 말을 했다. 그러나 상대방이 그 마음을 몰라주고 내 아이는 맨날 지기만 해서 재미 없다며 같이 안놀고 싶어 했다. 내 아이는 마음이 상한듯 금새 울상이 되어 혼자 노는 것을 보았을 때, 과연 이것이 상대방을 위하는 일이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타인만을 위한 배려는 겉보기엔 아름다워 보일 수 있지만, 때로는 자신을 희생하거나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어린아이들이나 아직 가치관이 형성 중인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태도가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이의 말에서, “친구가 이겨서 기분이 좋으면 나도 기분이 좋아요,”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 숨겨진 외로움이나 혼자 노는 모습은 아이 스스로의 감정이 외면받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타인을 기쁘게 하는 일만큼이나 자신이 즐거울 권리도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상대가 자신의 희생을 당연시하거나, 그 마음을 오해하고 소중히 여기지 않을 때 상처는 더 커진다. 예컨대 아이의 친구들이 그의 배려를 이해하지 못하고 "항상 지기만 하는 아이"로 바라볼 때, 그 배려는 오히려 아이를 고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려는 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문제를 일으킨다. 부모 세대에서 내려온 헌신적인 성향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자신의 필요를 외면한 채 타인의 요구에만 응답한다면 결국 번아웃과 우울감을 초래할 수 있다. 자신을 돌보지 못한 부모의 모습은 자녀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중요한 건 건강한 정서를 위해 균형을 찾는 것이다. 나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을 동일선상에 두는 마음가짐, 나 자신을 존중하며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일이 정말로 '위하는 일'이 되려면, 그것이 서로를 만족하게 하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그것이 한쪽의 희생에만 의존한다면, 그것은 결국 누구도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배려로 남는다.
아이에게도 가르침이 필요했다.
"네가 친구를 기쁘게 해주는 마음은 참으로 멋지고 소중한 것이지만 네 기분도 중요해. 네가 기뻐야 진짜로 친구와 함께 즐겁게 놀 수 있어.”
배려는 나를 잃지 않으면서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일 때 비로소 진정한 힘을 가진다. 그것을 배운 아이는 스스로를 사랑하면서도 타인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 수 있는,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