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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쉼터

이제는 길이 아닌 곳에서

by 구르미

구르미가 나를 잘 소개해 줬어. 맞아. 나는 하루야. 내가 태어난 곳은 작은 골목의 어두운 구석이었어. 그곳에는 바람을 막아줄 벽도, 비를 피할 지붕도 없었지만, 그게 나와 형제들이 살아가는 세상이었지. 우리 엄마는 매일 먹을 것을 찾아 떠났고, 종종 돌아오지 않기도 했어.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배고픔과 추위를 이겨내며 살아가야 했고, 살기 위해 무엇이든 먹어야 했어. 그러다 보니 점점 도로 가까이로 나가게 되었어. 차가 빨리 지나가는 걸 보긴 했지만,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 몰랐어. 그냥 길을 건너가면 내가 원하는 먹이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밖에 하지 못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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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길 건너 식당에서 널어놓은 생선을 보고 정신없이 도로 쪽으로 다가갔어. 그러다 갑자기, 눈앞이 하얗게 번쩍이고, 내 몸이 공중으로 튕겨 나가는 걸 느꼈어. 차가 내 쪽으로 다가오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너무 늦었어.


그렇게 난 차도 위에 쓰러졌어. 머리가 아프고, 몸은 고통으로 가득했지.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고,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으니 금세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어. 주변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외면하고 지나가기만 했어. 도로 위에서 조용히 눈을 감아야 하나 생각했어. 그 순간, 사람 소리가 들리더니 내 몸이 공중으로 떠 올랐어. 누군가가 나를 발견한 거지. 그 사람은 나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따뜻하게 안아줬고, 어디론가 데리고 갔어.


그렇게 난 처음으로 쉼터라는 곳에 오게 되었어. 낯설고 불안했지만, 그곳 사람들은 나를 무서운 차 소리도, 차가운 바닥도 없는 곳으로 데려가 주었어. 다정한 손길로 나를 치료해 주고, 영양식을 주며 나를 지켜주었지. 그제야 내 몸이 조금씩 나아졌어. 나는 더 이상 길 위에서 위험하게 살아갈 필요가 없었고, 처음으로 안전하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어.


[출처] 픽사베이 무료 이미지


쉼터에서 나는 로드킬로 생을 마감한 친구들을 생각했어. 길 위에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고양이들이 위험에 처해 있었고, 그중엔 정말 운 좋게 나처럼 구조되는 친구들도 가끔 있을 테고, 그렇지 못하고 떠나는 친구들도 많았으니까. 그 친구들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 이제는 더 이상 길 위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해. 나는 요즘 쉼터에서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맞이하고 있단다. 그러나 엄마와 형제들이 자꾸 생각나. 그래서 쉼터 선생님들께 매일 조르고 있어. 엄마와 내 형제들도 하루빨리 이곳으로 데려와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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