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코로나 팬데믹은 세상을 휩쓸고 갔고 그 사이 갓 태어난 아이들은 엄마 등에 업혀 마스크를 한 채 외출을 해야 했으며, 말을 배우는 아이들은 마스크를 쓴 채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소통 부재로 발육이 부진했다.
한참 자라는 청소년기 아이들은 친구를 멀리하고 집에서 인터넷으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게임과 메신저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 역시 코로나에 두 번이나 확진되면서 집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고, 집안에 있는 아이들을 케어하느라 24시간이 부족한 듯 살아왔다.
그렇게 주부로, 엄마로, 집순이로 살다 나온 세상은 감히 내가 따라갈 수 조차 없을 만큼 급변해 있었던 것이다.
나도 한때는 잘 나가던 사회인이었고 적어도 그 분야에선 이름 날리던 유명인이었는데...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나는 사회와 점점 단절되어 갔고, 맞벌이를 하느라 아이들과 떨어져 지낸 과오는 내게 혹독했다.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큰애를 데려왔으나 여전히 맞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살림과 육아, 회사 일을 병행했지만 살림살이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복지시설에, 친척집에, 육아도우미에게 맡겨져 정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복지 사각지대라고 했던가?
가진 것이 부채밖에 없음에도 맞벌이 소득이 초과하여 정부로부터 그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었고, 맞벌이 소득은 어느 정도 인정되지만 재산이 없고 부채가 많아 대출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양가 지원 없이, 무일푼으로 결혼자금을 대출받아 결혼을 하고 보증금 없이 월세로 시작하여 아이 둘을 키우며 드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죽을 만큼 일을 해도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은 끊임없이 발생했다. 여타 한 상황을 겪고 있는 가정이 우리뿐만 아닐 텐데 정부대책이라고는 형식적인 지원에 그치고 있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있지만, 정작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지원은 부족했고, 보육비 부담, 물가 상승, 주거 불안정 등 현실적인 문제들은 가정마다 무거운 짐이 되었다. 가끔 뉴스를 통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일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사연을 접할 때마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았고,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도 같은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만 했다.
표지사진 출처 : istok 유료 이미지 1281456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