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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우리

by 구르미

하루는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가 말을 하지 않았다.

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담당 선생님이 아이의 상태를 설명해 주면 덧붙였다.


"어머니, 안 그래도 오늘 하루 종일 윤이가 말을 하지 않아 안 좋은 일이 있는지 걱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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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장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정서불안, 분리불안장애, 소아우울증, 폐소공포증, 선택적 함구증, 무감정증, 뇌발달 저하... 아이에게 내려진 병명은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모든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아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들만 바라보며 살기로 했다.


분리불안 증세를 심하게 내 비치며 유치원 버스를 타지 않겠다고 하는 아이를 위해 대형면허를 취득하고, 천만 원이나 되는 돈을 빌려 버스를 샀다.


나는 아이유치원에 지입기사로 일을 했고, 아이는 엄마가 운전하는 버스라고 좋아하며 통학은 물론, 유치원 견학까지도 함께 다녔다. 어느덧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어 학교에 입학을 했다.


나를 찾을 때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장소에 대기하며 초등 6년을 헬리콥터맘으로 살았다.


다행히 아이는 조금씩 표현하기 시작했고, 울지도, 웃지도, 화를 내지도, 말을 하지도 않던 아이는 조금씩 필요한 말을 하기 시작했지만 문제는 또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어릴 때 해야 하는 행동들이 초등학생이 되어서야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학교에서는 요주의 인물이 되었고, 또래 아이들로부터 배척을 받으며 학교생활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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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평생에 잊지못할 은사님을 만나 친구들과 어울리며 학교에 적응해 나갔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면서 사춘기가 시작된 아이는 하나하나 챙겨주는 나를 보며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알아서 할게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혹자는 ‘서운하지 않으냐?‘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나는 그 말이 꼭 ‘나 이제 다 나았어요.’라는 말처럼 들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쏟아져 내렸다. 지난날의 한인지, 기쁨인지, 감동인지 모를 이상한 감정의 눈물이...





표지사진 출처 : 픽사베이 무료 이미지 family-6002642_1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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