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미
아이 학교 활동과 학부모 관련 모임, 그리고 행사에 참여할 일이 많아지면서 구르미가 혼자 집에 있는 날이 잦았고, 내가 힘들고 피곤하여 산책을 하지 못하는 일도 많아졌다.
하루는 외출하고 돌아오니 화장실 휴지들을 끄집어내어 바닥 여기저기 널어놓거나 물어뜯어 놓았다.
여기저기 오물로 칠갑을 해 놓았고 어떤 날은 책을 갉아 놓기도 했다.
결국 책이며 장난감들을 모두 구르미의 입이 닿지 않는 높은곳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가의 전집도 손쉽게 꺼내 읽으라고 책장 아랫칸에 정리해 뒀는데 너덜너덜 해 졌고, 어렵게 얻은 학습만화책도 모두 구르미 밥이 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갉는 것에 익숙해진 구르미는 집안 구석구석 나무들을 갉기 시작했는데 기둥, 책장, 식탁, 가구 등등 쇳덩이를 제외하고는 부드러운 플라스틱까지 갉아 놓았다.
할 일도 많고 힘든데 이것까지 치워야 할 상황이 되자 화가 나서 엉덩이를 때렸는데 심하게 웅크리며 떨고 있는 녀석을 보고는 금방 후회했다.
그리고 즉시 강아지 육아 공부에 몰두했다.
나는 구르미에게 분리불안증과 우울증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최대한 외출을 자제했으며 구르미와 함께 산책하는 시간도 만들고 집에서 함께 지내는 시간도 차츰차츰 늘려갔다. 아이들 또한 학교에 데리러 가지 않아도 스스로 귀가를 했고 구르미에게 초점을 맞춘 내 생활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강아지는 5개월이면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오는 시기로 1년을 성견으로 봤을 때 구르미는 10대에 접어들었다고 보면 될 것 같았다.
한참 이갈이를 할 때라 이빨이 간지러워 닥치는 대로 물어뜯었을 것이고 갈수록 딱딱하고 갉는 맛이 나는 나무나 플라스틱 등을 갉아 놓은 것 같다.
어느 날 외출하려고 양말을 신는데 그것을 빼앗아가서 주지 않고 애를 먹였다.
그 행동이 어찌나 귀엽고 재밌던지 나는 약속을 취소해 버렸다.
혼자 두고 못 나가게 하려는 행동이라 생각하고 외출 자제라는 결단을 내렸는데, 꼭 내 마음을 그대로 읽고 이용하는 것처럼 다음부터는 양말만 신으려고 하면 물고 튀었다.
참으로 난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