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아픈 일들 하기
올해 초까지만 해도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만 보이던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상황이, 이제는 Pandemic으로 불리는 세계적 전염병의 대유행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고 있으며 경제는 물론 일상생활마저 위협하고 있는 무서운 존재로 군림하고 있다.
미국에 있으면서 접하게 된 한국의 소식은 매우 빠른 감염자 증가로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나라의 선진 의료 기술과 빠르고 정확한 테스트 덕분에 다른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월등히 높은 테스트 대상자 수와 비례한 결과로 보인 것임을 알게 된 이후로는 오히려 한국이 참 자랑스러워졌다. 물론, 비교도 안되게 저렴한 테스트 비용까지도 포함해서 말이다 (지금은 조금 내려갔겠지만 초반에 보험이 있는 경우 약 130만 원, 없는 경우 450만 원 정도가 단순 검사 비용이라고 들었다).
미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이곳에서는 COVID-19으로도 많이 불린다. 특히 업무에서 관련 이야기를 할 때는 COVID-19이라는 공식 명칭을 사용한다)가 창궐하고 퍼지는 것은 채 1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거주하는 이 곳과 정 반대인 서부 연안을 중심으로 발생하던 것이 지금은 걷잡을 수 없이 동부에도 확산이 되었고 오늘 (3/13) 부로 내가 거주하고 있는 매우 가까운 곳에도 확진자가 생기게 되어 두려워지고 있다.
나의 글을 꾸준히 읽어주신 구독자 분들께서는 잘 아시겠지만 2월부터 나는 세계적인 호텔 체인인 메리어트의 식음료 Director로 이직을 하고 근무를 해왔다. 모든 것이 행복했고, 기쁜 마음으로 출근해서 보람찬 느낌으로 퇴근을 하며 아내와 함께 좋은 회사에서 일하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이야기를 나눠오곤 했다. 불과 1~2주 전 이야기이다. 뉴스에서 자주 언급되는 바와 같이 여행, 호텔 업계는 현재 직격탄을 맞고 있다. 관련 주가는 종잡을 수 없이 폭락하고 있으며, 수많은 메리엇 계열의 호텔들에는 예약 취소 전화가 사정없이 빗발치고 있다. 내 동료인 Front office의 department head는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개인 예약자 및 여행사로부터 취소 전화가 불과 몇 분 단위로 걸려오고 있으며, 연회 담당 디렉터는 주요 고객사 및 대형 행사 예약자들로부터 취소 및 연기 문의를 받고 내용을 공유해주기 바쁜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평소 객실 예약률이 90%를 웃도는 최고 수준의 비즈니스호텔인 우리 호텔도 70%대로 가라앉더니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여행을 금지한 시점부터 약 3시간 전 미국의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오늘까지 평균 50%대까지 주저앉았다. 다음 주부터는 30~40%의 평균 예약률로 가라앉을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내 출근이 하루하루가 힘든 이유는 여기서부터가 시작이다.
사실 이 사건이 발생하면서부터 나를 포함한 호텔의 최고 경영진과 department head들은 향후 계획에 대해서 몇 주전부터 논의를 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시급제 직원들의 근무 시간 감축 정도로 시작했던 계획이 어제를 기점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그리고 매우 부정적인 상황으로 급속 전개가 되었다. 처음에는 약 10% 인건비 감축으로 시작되었던 계획이, 30%로, 그리고 급기야 권고사직 및 정리해고로까지 확장이 되었다. 내 바로 밑의 매니저들은 연봉 삭감과 동시에 주 4일제로 변경이 될 예정이며, 이미 15명에게는 정리해고 면담 및 통보가 진행되었다. 물론 호텔의 비즈니스가 다시 회복이 되면 가장 먼저 연락해서 복직 의사를 물어볼 수 있는 사실상 휴직 단계이나 보장이 되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직원들은 최장 4개월의 lay off letter에 서명을 하고 다음 주부터 생계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평소 웃으며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축구도 함께하며, 자신들의 아들, 딸이라며 사진을 보여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직원들이기에 이들에게 휴직 및 해고 통보 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상황을 공감하며, 휴직 상태에서 누릴 수 있는 복지에 대한 문의를 하는 등 잘 마무리 지어졌지만 일부는 충격에 눈물을 보이거나 20년 넘게 근무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막막한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런 직원들을 눈 앞에 두고 감정적 동요 없이 상황에 대한 설명과 이렇게 할 수밖에 없음을 통보하고 서류에 서명을 하게끔 하는 일은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우리 회사는 장애우 고용에도 매우 적극적인데, 해고 대상자 중 한 명은 청각 장애우라서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Job coach라고 불리는 통역사를 통해 내용을 전달했는데, 어제 갑자기 내 사무실에 찾아오더니 벽면에 붙은 직원 연락처 중 자신의 번호를 확인하고는 몸짓과 웅얼거리를 정도의 소리로 나에게 '자신의 연락처가 맞고, 언제든 스케줄을 받을 수 있을 때 꼭 연락을 해줘라'라는 의사 전달을 하였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 평소에 말도 못 하고 듣지도 못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움직이고 자신의 일에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는 훌륭한 직원이지만 필수적인 포지션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정리 대상자가 되어 휴직 진행을 할 수밖에 없어서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그런 일이 생긴 직후 1개월에 한 번 열리는 매우 중요한 월간 실적 및 전략 회의에서, 진행한 휴직 및 해고 처리를 업적처럼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수치적으로 어느 정도를 세이빙 할 수 있는지를 보여야 했기에 퇴근하고 나서 내 마음은 정말 그야말로 너덜너덜 해졌다.
내가 가장 힘들고 괴로운 이유는 이것이 이제 시작 단계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앞으로 부서의 수장으로 얼마나 더 무거운 결정을 내리고 진행을 해야 할지 막막하고, 이러한 암흑의 단계가 언제 끝이 나게 될지 모르는 끝이 없는 싸움일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정말 전 세계에서 누구든 좋으니 빨리 백신과 치료제를 발견하여 더 이상의 큰 동요나 고충 없이 행복한 나날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참고로, 지난주까지만 해도 동네 마트 여기저기를 가봐도 식료품 및 생필품이 충분했던 것이 지금은 간혹 텅 빈 섹션들을 마주하게 된 상황이다. 물론 언론에서 보도하듯 모든 것이 동나고 없어지는 정도의 상황은 아니지만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미 2~3주 전부터 마스크와 손 세정제는 오프라인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어졌다.
심지어 여분의 마스크를 구비해두기 위해 페인트 작업용 마스크라도 구해두고자 동네의 작은 철물점도 가봤지만 이미 동난 지 오래이다. 다행히 이베이를 통해서 N95 마스크를 구해두긴 했는데 한 장당 약 만원으로 구매를 했다. 지금은 3만을 줘도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이 전쟁 같은 상황이 빨리 종식되어 화사하고 따뜻해진 뉴욕의 봄 날씨를 즐길 수 있는 날이 다가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이 글을 구독해주신 모든 분들이 COVID-19로부터 안전하고 무탈한 일상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추가적으로 제가 시작한 유튜브에서 전하는 현재 코로나 관련 미국 상황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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