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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Apr 21. 2022

그들에게 사진은 무엇이었을까

장비 중고거래를 하며 마주쳤던 이들 

바르셀로나에서 지내던 시절 처음으로 손에 쥐었던 나의 첫 카메라는 소니의 A5000이라는 카메라였다. 누구에게나 '처음'이라는 의미가 주는 감정은 특별하기 때문에, 나 또한 아직도 그 순간의 감정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사진 하는 이들에게는 필연적으로 더 좋은 장비와, 좋은 사진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소중한 '처음' 이라는 감정을 잘 접어서 마음 속에 간직한채 나도 기변이라는 선택지를 뽑아 들었다. 

사람들이 하도 '풀프레임' 하지 않는가. 그래서 나도 처음 풀프레임을 써본 경험이 니콘 D700이었다.


기변할 때는 어떤 브랜드를 고르느냐도 중요하다. 한 브랜드에 새롭게 정착하면 렌즈와 호환 장비들을 여러개 추가하면서 다른 브랜드로의 기변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으니까. 다른 브랜드로 또 이사 가려면 카메라 뿐 아니라 그 모든 장비들을 같이 팔아야만 하는 번거로움에 사로 잡히게 된다. 하지만 그 번거로움 속에서 일어나는 만남들은 때론 이야기들을 동반한다.




고심 끝에 골랐던 첫 기변의 카메라는 니콘의 D700이라는 카메라였다. 누가 문과 출신 아니랄까봐, 니콘 D700이 갖고 있던 <캐논이 득세 해가던 카메라 시장에서 니콘이 내놓은 회심의 일발 역전타> 라는 스토리가 그 때의 나를 매료되게 만들었다. 물론 내가 가지고 있는 예산 내에서 가장 괜찮은 성능 중 하나이기도 했다. 


연식 대비 상태 좋은 매물을 찾기가 꽤 까다로웠다. 때문에 당시 학교 수업을 마치고 저녁에 충무로에서 부평까지 가야하는 기나긴 직거래 원정길이 잡혔는데, 부평의 한 카페에서 D700을 들고 날 찾은 판매자는 빵떡모자를 쓰신 연세가 지긋하신 노신사 분이었다. 누가 봐도 "나 사진 하는 사람이요" 하고 써붙여 놓은 것 마냥, 다소 텁수룩한 하얀 수염에 안경, 활동성을 위한 청바지에 편한 셔츠 복장이셨다.


성정이 약간 고집이 있어 뵈는 분이셨지만 동시에 호탕하신 분이셨어서, 자신의 렌즈까지 같이 테스트 해보라면서 렌즈들도 같이 선뜻 내어주셨다. 첫 기변할 때의 그 기분이란 것은 아마 사진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인데, '나의 동행자가 될 그 것'을 처음 손에 잡는 순간부터 차오르는 전율 같은 감정이 존재한다. 마치 조금만 움직여도 내 마음을 읽고 미리 기계가 움직이며 상황에 맞게 대비 해주는 기분이었다. 


"정말 연식 대비 사용량도 얼마 없고 정말 깨끗하네요. 어쩌다 내놓으셨어요 직접 소장하시지 않구요." 라며 D700의 단단한 그립감을 한번 더 만끽하며 내가 대화를 건냈다. "사실 이건 내 것이 아니라 내 친구 놈거에요." 라고 그 노신사 분께서 표정이 살짝 굳으며 대답하셨다. 그제서야 나도 D700을 잠시 내려놓은 채 이어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친구 놈이 쓰던건데, 사실 병상에 누운지가 꽤 되었어요. 병원비라도 충당을 좀 해주려고 녀석이 쓰던 것을 팔게 되었네요." 


"아... 그랬군요. 그래도 선생님께서 이렇게 많이 걱정 해주시는데, 덕분에 금방 털고 일어나셨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그 시점에는 나름 열심히 그 상황 최선의 위로라는 것을 노신사께 건내보았다. 하지만 노신사의 표정은 단호했다. "아쉽지만. 그 친구는 그렇게 되지 못할거에요. 하지만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편하게 갔으면 좋겠다는게 내 바람일거에요."


덕분에 저는 D700과 넘치는 세상의 광활함을 보고 담았어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노신사의 친구 분이 쓰셨던, 미처 끝까지 달리지 못했던 니콘 D700은 나와 약 2년을 함께하면서 내 사진 생활의 가장 즐겁고 순수했던 성장기들을 함께 해주었다. 어쩌면 그렇게 아무 걱정과 억지스러움 없던 순수했던 사진 생활을 그 D700과 했다는 사실로 난 그 어르신의 친구분께 또 한번의 위로와 애도를 드릴 수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못다 누비신 사진으로 담아낸 세상들을 광활하고도 벅차게 담아낸 세상. 그 분이 미처 다 못쓰고 남기고 가신 니콘 D700은 나에게 깊이를 알 수 없는 넓고도 광활한 세상을 선물 했다. 


지금 그 D700은 또 다른 주인 분께 보내드리게 되었지만, 또 어딘가에서 새 주인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최초의 주인이셨던 노인장께서도 어딘가에서 흐뭇하게 보고 계시길 소망했다.




그로부터 몇년 후, 한창 야경과 은하수 사진 촬영에 푹 빠져 있던 나는 초광각 렌즈를 찾게 되었는데, 탐론이라는 렌즈 제조사에서 나온 15-30mm F2.8 VC라는 렌즈의 중고 매물을 수소문 하게 되었다. 이 렌즈는 지금도 광곽 렌즈를 찾는 이들에게 훌륭한 선택지 중 하나이지만, 그 때는 정말이지 인기 절정의 시기라 중고 매물을 구하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기어이 원하는 매물을 발견 했는데, 이번에는 하필 또 직거래 장소가 원주란다. 경기 남부와 서울을 오고가는 생활권인 내게는 참으로 난감한 거리였는데, 운좋게도 당시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JIN형이 직거래 하러 운전 해줄테니 겸사겸사 여행으로 가자고 제안을 해왔다. (물론 운전 해줄테니 한우를 사라고도 넌지시 이야기 했다.) 그렇게 이번에는 원주행이었다. 


직거래 장소는 원주의 어느 한 큰 병원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아마도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이겠지' 정도로 가면서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게 웬걸, 직거래 장소에 도착하니 렌즈 박스를 들고 나타나신 분은 보호자가 뒤에서 끌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링겔까지 꽂은 채로 나타난 기력이 다 쇠한 중년 남성 분이셨다. 


아마도 사진을 하고 계시던 분인데 급격히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신 분이셨으리라. 오래된 고목나무를 보는 듯한 다 메말라 가는 듯한 힘 없는 모습이셨다. 갖고 계시던 모든 장비를 단 하나도 남김 없이 처분 중이시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 의미를 입 밖으로 차마 내지는 못했고 지금 이 글에도 적을 자신이 차마 없지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어렴풋하게 짐작캐 했다.

탐론 15-30mm F2.8 VC렌즈로 찍은 사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은하수 사진


이후에 그 분으로부터 데려온 탐론 15-30mm F2.8 VC 렌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에게 최고의 한 장씩을 남겨주곤 하는 최고의 장비로 활약했다. 그렇게 나는 내 소우주에서 나만의 최고들을 만들어 나갔고, 내 사진의 의미와 조각들을 맞춰 나가왔다. 


다만, 지금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안타깝고도 궁금한 지점들의 이야기들이다. 끝내 사진을 내려놓아야만 했던 그 분들의 사진은 현실 속에 펼쳐 질 수 있었다면 어떤 사진이었을까. 그 분들에게 사진이 갖는 의미란 무엇이었을까. 그 답을 끝내 알 수 없었기에 나는 그 분들의 손과 발이었던 장비들을 이어 받아 간접적인 인연을 맺은 사람으로서, 오늘도 내일도 끝없이 한번의 셔터와 한장의 사진들에 대한 의미를 고찰해 나가려 애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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