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지나가던 순간들의 기억 담아두기
그 어떤 것에도 닿지 못할 것만 같은 시기. 그럼에도.
유난히 고되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더위가 어느새 꺾이고, 시나브로 우리의 옷차림도 조금씩 길어지고 여며지고 있었다. 불어오는 가을바람처럼 내가 처한 일상에도 조금씩 변화가 일렁이고 있던 시기였다.
변해가는 일상을 맞이하기 위해 심적인 준비와 물질적인 준비를 해나가고 있던 이 시기, 직설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돈이 궁해서' 급하게 단기 알바들을 구해가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시기를 몇 주간 보냈다. 얼마 전 탁과 술자리에서 농담처럼 "하루 벌어먹는 인생이야~"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얘기한 것 치고는 꽤나 다양한 일과 사람들을 만났던 몇 주였다.
그중 가장 첫 번째로 찾았던 일은 어느 학교에서 하는 교육행사의 현장 세팅과 이후 철수를 돕는 일이었다. 급여가 적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세팅과 철수 사이에는 행사가 진행되는 학교 체육관 안에서 돌발상황에만 대비하면 되는 일이었기에 비교적 여유 있는 호흡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그때 문득 학교 체육관에 있던 저 사진들 속의 농구골대를 보았다. 사진 하는 사람들이 유독 좋아하는 감성 오브제들이 있는데 농구골대도 그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 체육관의 농구골대는 사용하지 않을 때는 천장 위쪽으로 바짝 붙여 올려놓는 방식으로, 그 높이가 그 순간에는 유독 참 높아 보였다.
'마치 무엇을 해도 전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시기, 어떻게 해도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미래와 목표'를 나타내는 것만 같은 느낌에 순식간에 홀려 나는 곧바로 아이폰으로 사진을 담았다. 그럼에도 내게 공이 온다면 저 림을 향해 슛을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함께.
닿을 수 없을 것 같을지라도 계속 싸워가며 달려 나가야 하는 목표 속에는 아무리 바빠도 놓치고 흘리긴 아까운 순간들도 있었다. 가을의 아름다움은 빼어나지만, 그만큼 짧게 머무르기 때문에 바쁜 시기와 맞물리면 눈 깜짝할 사이에 겨울이 되어버린 주변 환경을 마주하게 되는데, 어느 날도 알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 정말 화르륵 불타고 있는 것만 같은 강렬한 노을을 만나게 되었다.
지친 퇴근길에 아주 크나큰 선물이라고 느끼며 기록으로 담았는데, 이 날 만큼은 사진에 보정을 애써 하고 싶지도 않았고 원본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서 굳이 건드릴 필요조차 없다고 느낀 완벽한 하늘이었다. 그 완벽함에 굳이 그 어떤 손도 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만큼 티 한점 없던 순간이었다.
달려가는 시간 속에서도 절대 흘려서는 안 되는 순간들도 그렇게 늘 존재했다.
그런가 하면, 고되고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위안과 희망을 주는 순간의 기록도 이 시기에 함께 만났다.
때는 역시 야외에서 알바를 하던 중이었다. 골프장에서 진행되는 메이저 대회의 방송국 촬영팀 스텝으로 근무 중이었는데, 골프장 그린에서 새벽부터 대기를 하고 하루종일 대회 일정에 맞춰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에 새벽녘에 시작할 시간에는 숲 속의 농익은 추위답게 살을 파고드는 한기에 고생하던 중이었다.
이 날 아침에도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근무자 위치로 투입하려던 도중에 이 순간을 만났다. 내가 머물던 골프장의 3번 홀은 주변이 나무 그늘이 우거진 곳이었는데, 아침 해가 떠오르며 천지를 밝히는 빛이 그 나무그늘 사이로 스며들어오고 있었다. 그 빛은 빛 내림처럼 선명한 줄기가 되어 그늘 아래 길에 흩뿌려지고 있었다. 고민할 여지도 없이 바로 아이폰 카메라로 담아내었다. 암부는 강조하고 하이라이트의 빛줄기를 잘 강조해 낸 연출을 제대로 해낼 수 있었다.
아무리 춥고 어두운 곳에 있더라도 더 밝은 빛이 있다면 능히 해쳐 나올 수 있을 테다. 같은 이치로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더위가 꺾여 한기로 바뀌었듯, 영원한 어둠과 추위도 없을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담아낸 기록을 건져내며 내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시간에 한번 더 용기를 다질 수 있었다.
그렇게, 여느 때처럼 이번에도 역시 짧겠지만 나의 가을이 지나고 있었다. 손에 가득 움켜쥔 모래알은 결국 모두 지켜낼 수 없고 손에서 상당수가 빠져나가듯 나의 가을도 그럴 테지만, 이 시간들의 가을 기억만큼은 마지막까지 내 손안에 꼭 움켜쥐고 있겠다고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