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대체재

친숙했던 소재들을 이곳에서 찾는다는 것

by 대숲사진가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왔을 때, 그날은 유독 날씨가 좋았다.
DSCF2682_1.JPG 이 날 날씨가 참 좋았다. 이런 하늘에 은은하게 퍼져있는 구름이 너무 좋다.


'타향살이하다'라는 말을 국어사전에 검색하면 '자기 고향이 아닌 고장에서 살다'라고 나온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말레이시아였고, 시간은 어느덧 3달 정도가 흘러있었다. 집에 살림살이도 제법 들여놓았고, 헬스장도 찾아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었고, 내 입맛대로 부엌도 꾸리고 그럴싸한 홈 카페도 차려두며 살던 참이었다.


모든 면에서 풍요로울 수는 없었지만 '내 삶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요소들을 생각했을 때 제법 하나하나 구색을 갖추어 가던 참이었다. 그렇게 안정화가 되고 난 이후에는? 필연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내 삶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들'을 쫓게 되기 마련이다. 정확하게 그 감정이 느끼기 시작할 쯤의 내가 되었을 때 나는 혼잣말로 '이제 여기서 좀 살만 해졌나 보다'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했다.


IMG_7833.JPG 언제나 그리워하는 이 장면. 이곳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




한국에서 내가 다녔던 모교는 불교 학교였다. 언제나 봄에서 초여름 사이의 그 시간을 가장 사랑하는 나에게, 그리고 그 시기에 가장 많은 사진을 찍었던 나에게 모교의 벚꽃과 초파일을 기리며 학교 곳곳에 걸어두는 연등은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였으며, 동시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과 달린 말레이시아는 꽃이 다채롭게 피는 느낌은 나지 않는다. 물론 어느 한 가지 꽃의 군락지도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연등은 뭔가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는 것이다. 마침 이 시기가 Chinese New Year였고, 화교 인구들의 영향으로 도시 곳곳이 붉은색 연등 또는 장식으로 가득하던 시기였다.


그러던 시기에 내 머릿속에 떠오른 곳은 시내 근처에 있던 천후궁(Tien Hou Temple)이라는 사찰이었다. 찾아보니 1989년에 문을 열었던 사원이니, 그렇게까지 유서 깊은 문화재라 할만한 곳은 아니었으나 사찰이라는 장소이고, 특히 화교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장소라고 하니 왠지 모교에서 보던 한가득 모여 있는 연등들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 떠올랐다면 곧바로 실행에 옮겨야 했다. 퇴근 후 일정이 없는 날을 골라 출근 가방에 카메라를 같이 챙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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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후궁으로 가던 도중 본 것들.


그날 퇴근길은 유독 날씨가 좋았다. 분명 살을 찌르는 듯한 더위일 것이 분명했지만, 땀에 흠뻑 젖더라도 이 날은 걸으며 청량한 날씨를 만끽하고 싶었다. 회사 근처의 리틀 인디아부터 지나쳐, 천후궁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말레이시아가 사실 보행자에게 친화적인 나라가 아니다 보니 가끔 구글맵이 알려주는 길에도 인도가 아닌 길이 있을 때가 있는데, 어쨌든 '사람이 걸어는 갈 수 있는 길들'이 계속 나와주어 그럭저럭 걷는 즐거움이 있었다.


내가 사는 KLCC는 자국민과, 외국인들이 뒤섞여 지내는 곳이다 보니 사실 말레이시아만의 무언가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래서 이런 시간들이 1분 1초가 내게는 의미 있고 신기하다. 천후궁이 위치한 곳이 생각보다 대단한 곳이 아닌 주민들이 사는 평범한 거주지역에 함께 있었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사는 동네를 그대로 구경하며 천후궁까지 걸었다. 아기자기한 집들이 귀여웠고 (의외로 현지인들은 레지던스나 아파트보다 이렇게 전원주택 단지에 모여사는 경우가 많다.) 본의 아니게 엿보게 된 친구, 지인들 사이의 함께 나누는 모먼트를 보게 되어 함께 사진에 담게 되었다.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닌데 그냥 그 순간들을 보게 된 순간 실례를 무릅쓰고 그 사람들을 담게 되었다. 아마도 그들이 나누고 있는 그 감정이 지금의 나에게는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저런 잡생각과 여전히 맑고 푸른 날씨를 즐기다 보니 어느덧 천후궁 근처까지 도착해 있었다.




약간 속된 말로 '근본은 없는' 사찰이라고 생각하고 갔던 것 치고는 천후궁은 제법 그 위세가 볼만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붉은색 연등이 절 바깥에서부터 굉장히 화려하게 곳곳을 수놓고 있었다. 화교 친구들은 빨간색을 참 좋아했는데, 그 때문에 연등도 역시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빨간색이었다. 아마도 이 친구들에겐 이 색이 복을 가져다주는 행운의 색이기 때문이리라. 또한 근면 성실함을 중요시하고 경제적인 여유를 갈망하는 이들의 특성 덕분에 그 빨간색과 함께 따라오는 문구도 대부분 부와 관련된 행운을 빌어주는 덕담들이 대부분이다.


Chinese New Year에 걸친 기간이었기 때문에, 사찰에는 사람도 많았고, 방문 차량의 행렬도 이미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길게 늘어져 있었다. Grab을 탈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아마도 탔다면 크나큰 낭패를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다소 힘들었어도 걷길 차라리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사찰의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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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에는 겉에서 보이는 부분과 다르게 훨씬 더 많은 연등이 빽빽한 삼림을 이루고 있었다. '밤에 연등불도 켜줬을까? 만약 그랬다면 밤에 오는 게 훨씬 이뻤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좀 들었지만, 내 감성을 적시는 요소의 한 가지 대체제를 찾았다는 것 자체로 이미 마음은 오래간만에 꽤나 신나게 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말레이-말레이나 말레이-인디아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정말 그야말로 화교들을 위한 장소라는 것을 문득 눈치챘다. 조금만 다른 위치에서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순간, 순식간에 그 모습을 바꾸어 내 눈앞에 나타난다. 그것이 이 말레이시아라는 나라이기도했다. 그것이 과연 좋을지 마냥 나쁠지는 글을 쓰는 아직까지도 확답을 내릴 수 없지만 이 순간만큼은 좋은 순간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그렇게 완전하게 똑같지는 않지만, 결국 나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소재와 비슷한 것 하나를 더 찾아냈다.


'처지와 어느 정도의 물질적 풍요로움을 이루었다면 그다음은 마음의 풍요로움을 갈망하는구나, 그리고 그 감정이 흐르는 방향은 결국 나의 삶의 경험에 입각한 익숙함이라는 감정에 기대어 흘라가는구나. 결국 말레이시아의 나 자신도 새로운 내가 아닌 이곳의 요소들이 나에게 덧대어지겠지'


혼자 이곳까지 발걸음을 하게 된 나의 마음을 계속 곱씹고 되뇌며 같은 길을 여러 번을 돌며 그렇게 천후궁을 구경했다. 천후궁 중앙부에 기도를 드리는 공간에는 사람이 너무나 많았기에 향을 꽂고 기도를 드릴 순 없었지만, 그 기도를 드리는 수많은 인파들의 뒤쪽에서 나도 가만히 서서 잠시동안 나와 가족의 안녕과 행운을 빌고 자리를 떴다. 언젠가 또 한 번 이곳이 밤을 밝히는 날이 올 때 다시 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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