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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성호 Cha sungho Jul 22. 2023

제주도 자전거 일주여행

                   

2003년 8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다그해 여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한 페이지로 각인되어 해변의 조용한 파도처럼 밀려오곤 한다.   

불혹의 나이에 15년여의 지방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남들은 그 철 밥통을 왜 그만두느냐고 의아해했지만 현실은 그 물음에 답을 줄 수 없었다지금도 그렇지만 공무원의 보수가 너무 낮아 4인 가족의 외벌이 가장으로서 늘 고민하던 끝에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보기로 했다고생되더라도 돈을 더 벌어야 자식들을 키울 수 있겠다는 책임감이었다남자는 책임감 빼면 시체지

어설픈 도전은 보기 좋게 어퍼컷에 휘청거렸다준비되지 않은 도전은 1년 만에 퇴직금 까먹고 막을 내렸다월급쟁이 신분을 벗어나 호기롭게 자영업을 시작했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았고 통장잔고가 바닥날 때쯤 판단을 빨리 내려 알량한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가진 게 없으니 이제는 기술을 배워서 새로운 2막을 시작하기로 했다그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20년 넘게 버티고 있는 도배 인테리어 장식업이다고생 끝에 도배 기술을 배워서 시작한 조그만 가게에서 하릴없는 사십 초반의 내 모습을 아내는 보기 안쓰러웠던 모양이었다그 해 여름 우울한 마음에 무심코 내뱉은 제주도 자전거여행 이야기에 아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응원해 주었다.  마침 여름휴가 때였지만 주머니 빈 가장에게 휴가는 언감생심이었다하지만 아내는 아들 예솔이랑 남자 둘이서 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다녀오라고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시작된 제주도 자전거트래킹을 부랴부랴 계획을 짜서 4박 5일 여정으로 출발했다이제 중학교 1학년이 된 열네 살 아들이지만 벌써 덩치가 날 추월해 버려 듬직한 아들 예솔이랑 이른 새벽 장도에 올랐다여수까지 내달려 부두 근처에 차를 세워놓고 자전거 두 대에 텐트랑 배낭을 잔뜩 싣고서 제주행 카페리 호에 올랐다.

7시간의 항해 끝에 제주항에 내린 우리 부자는 부두에서 곧바로 제주도 서쪽 코스로 트래킹을 시작했다제주 해안도로를 따라 도는 일주거리가 2백여 킬로미터였다하필이면 기온이 가장 높은 8월 초에 겁도 없이 시작한 이 여행이 고행이란 걸 알아차리는 데에는 몇 시간 걸리지 않았다자전거를 타면서 왜 그리 오르막 내리막길이 많은지 새삼 인생길이 이와 같음을 실감했다특히나 내리막길을 브레이크도 잡지 않은 채 질주할 때 얼굴을 때리는 시원한 바닷바람의 맛은 자전거 여행을 해봐야 느낄 수 있는 백미다.

3십만 원의 예산으로 그야말로 짠돌이 여행 계획을 세웠으니 최대한 지출을 아껴야 해서 이마트에서 식료품을 사고 잠은 텐트 치고 야영하기로 하였다하지만여름 무더위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지나가는 마을 편의점만 보이면 생수랑 아이스크림을 챙겨 먹어야 했다여기에 십만 원가량은 지출한 것 같다땀은 연신 줄줄 흘러내리고 얼굴은 점점 짙은 색으로 선텐이 되어갔다.  곽지 해수욕장중문단지에서 야영 2박을 하고표선에선 주인 할머니와 흥정 끝에 2만 원짜리 민박을 구해 밀린 빨래와 샤워도 하였다

우린 해안을 따라 구석구석을 돌며 제주도 풍광을 제대로 만끽하였다자동차 여행을 하면 느낄 수 없는 색다른 여행이었다누가 제주도를 이렇게 구석구석 밟아 봤을까

여름 뙤약볕에 지치면 용천수가 솟아나는 해안가에서 몸을 씻으며 피로를 풀곤 하였다

 

자전거가 한두 번 말썽을 피우긴 했지만 그래도 예솔이는 어린 나이에 잘 참아내며 그 힘든 트래킹을 해내었다마주치는 자전거 트래킹 팀이 많았는데 우리 부자가 최연소 최 연장자 팀이었다지금도 우리 부자처럼 그 나이에 제주도를 자전거로 일주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라며 자부심을 느낀다또 이 자전거 여행이 아들이랑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아버지들의 흔치 않은 기회며 로망이었다여행 끝날자전거를 끌고 여수행 배를 탈 때 누군가 그랬다나도 아들이 있으면 저렇게 해 볼 텐데부럽다 부러워.

4일 동안 라면 끓여 먹고 냉면 한 번뼈다귀해장국 두 번 사 먹었는데 이 부분이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시리다그것도 매우.  한참 먹성이 좋은 아들에게 비용 아낀다는 명분으로 제주도까지 와서 괜찮은 밥 한 번 사 먹이지 못한못난 아버지가 되었기 때문이다그때 왜 그랬을까스스로 후회막심이다그렇다고 돈이 그렇게 없었던 것도 아닌데 지금도 제주도 여행 가서 우리 부자가 자전거로 지나갔던 길을 보면 그때 생각이 몽글몽글 떠오른다그러면서 자책한다다시 가면 맛있는 거 마구 사 줄 텐데

가끔 그 얘길 하면 예솔이는 손사래를 친다이젠 그 고생 안 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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