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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성호 Cha sungho Jul 22. 2023

친구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모처럼 비번날이 되자 나는 큰맘 먹고 친구 홍찬이를 오랜만에 만나보기로 작정했다.

학교 졸업 후 군 복무 등 서로 바쁘다 보니 안 본 지가 3년은 된 것 같았다. 나는 공군에서 방위복무를 마치고  통영의 한 호텔에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돌아오는 비번날에 그런대로 가까운 고성에 있는 홍찬이를 한번 만나보리라 벼르던 차였다. 그 전날, 편지에서 홍찬이가 일러준 대로 마을구판장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구판장 주인이 잠깐 기다려 보라며 수화기를 내려놓고 마이크로 방송을 한다. “! ! 최홍찬 씨, 전화받으소 오~. 최홍찬 씨 전화받으소 오~”  나는 공중전화기에 동전을 계속 집어넣으며 조바심을 냈다. 동전을 몇 개 더 넣었을 때 홍찬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수화기를 들었다. 몇 년 만에 들어보는 반가운 목소리였다. 내가 내일 오전에 찾아가겠노라고 간단하게 약속을 하고 버스 편을 물어본 뒤 통화를 끝냈다.

 

통영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고성 배둔 사거리에 내린 다음 길모퉁이에서 구만 행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렸다. 팔월의 찜통 같은 더위 가운데 나타난 빨간 완행버스는 흙먼지 풀풀 나는 비포장길을 30분 정도 느린 걸음으로 달리더니 가천 저수지를 지나 영오면 양월마을 앞에 내려 주었다. 멀리서 버스 오는 걸 보고 정류소에 마중 나온 홍찬이와 반가운 해후를 하였다.

여기는 고3 때 홍찬이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반장 대정이와 함께 찾아온 후 두 번째였다.

친구네 집은 전형적인 남루한 시골집이었다. 좁고 무더운 방에서 견디기 힘들었던 친구는 조금 떨어진 마을회관에서 낡은 선풍기를 틀어놓고 무언가 열공 중이었다.

 

9급 검찰사무직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는 새 책 살 돈마저 궁해서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서 헌 수험서를 사다가 이 무더운 여름날 책과 씨름하고 있었다. 이듬해 봄, 친구는 그 어렵다는 검찰사무직 시험에 떠억 하니 합격하였다. 정말 대단한 친구였다. 그러나 채용 강검진에서 결핵으로 그만 최종 불합격하고 말았다.  너무 안타까웠다.

그러나 친구는 포기하지 않고 군 보건소에서 무료 결핵 치료 약을 타다 먹으며 또다시 1년을 준비하였고 그 이듬해 검찰사무직 시험에 마침내 합격하였다. 결핵이 완치되었음은 물론이다. 남들은 한 번도 합격하기 어려운 시험을 2년 연속 합격하였으니 그것도 학원 수강할 돈도 없어 시골집 마을회관에서 절치부심하며 헌책으로 독학한 친구가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우리가 입학한 마산공고는 그 당시 성적은 우수하나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이 선택한 학교였다. 입학 첫날, 나와 홍찬이는 운명처럼 만났다. 첫날 교실에 들어와 대충 자리 잡고 앉게 되었는데 옆의 짝이 바로 최홍찬이었다. 우린 기계제도 반이라 졸업할 때까지 반이 섞이지 않고 그대로 올라갔는데 우린 3년 동안 짝이었다. 정말 흔치 않은 경우였다.

나도 가정 형편이 가난했지만 친구는 나보다 더 열악한 환경이었다.  봉암동 팔용산자락의 무허가 판잣집에 살았는데 부모님은 리어카로 근처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 잔반을 걷어다가 돼지 몇 마리를 길렀다. 그 때문에 아직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부모님 직업을 조사하면서 물었다.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홍찬이는 쭈뼛거리며 대답하였다.

짐승 먹입니더” “짐승?” “돼지 말입니더반 아이들은 폭소가 터졌고 홍찬이는 얼굴이 빨개졌다. 나는 그런 촌놈 홍찬이가 참 좋았다. ‘부마항쟁으로 학교 밖 대로에서 최루탄이 터지곤 하던 그때 홍찬이와 나는 대학 진학할 형편이 안되어 해군 제2사관학교에 응시하였고 둘이 모두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하였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2차 신체검사에서 나는 만성 상악동염 즉 축농증으로, 홍찬이는 충치 개수가 많아 최종 불합격하였다. 이렇게 우린 해병대 장교가 될 기회를 놓쳤지만 같이 떨어져서 서로 위안이 되었었다.

 

홍찬이는 검찰사무직 합격 후 첫 발령을 제주지검으로 받아 근무하다 연고지인 마산지검으로 옮겨왔고 거기서 나에게 엄청 큰 선물을 주게 된다. 같은 지검 직원인 지금의 아내를 소개해준 것이다. 친구가 중신아비까지 되었으니 이 정도는 되어야 요즘 말하는 찐친이 아니겠는가? 작년에 검찰 사무관으로 정년 퇴임한 친구는 어언 45년 지기로 변함없이 잘 지내고 있다. 일 년에 한 번씩 만나서 낚시도 한다. 나이 들어도 그 친구는 옛날 그때와 변함이 없다.  수더분한 게 역시 촌놈이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그 촌놈을 깍듯이 모신다. 우리 중신아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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