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 장애는 오늘날 소리 연구 분야 한 편에서 조명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소리는 흔히 청인에게만 들리는 그 무엇으로 언급되지만, 살펴보면 그것이 청각 장애인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경험되고 있습니다. 음악 작품은 대개 청인만이 만들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이야기되지만, 잠깐 생각해 보면, ‘그게 아니다’라는 것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불굴의 의지로 상상조차 하기 힘든 청각적 시련을 이겨내고 세상에 오랫동안 울려 퍼질 대작을 남긴 베토벤의 여정부터 세계에서 유일한 청각장애인 종합대학 갈루뎃 대학교(Gallaudet University) 출신 그룹으로 록 음악사의 범위를 새롭게 넓히고 있는 밴드, ‘베토벤의 악몽’(Beethoven’s Nightmare)까지 다양한 사례를 떠올리면서요. 그래서 소리 연구 영역은 청각 장애인들이 새롭게 엮어가는 소리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청각 장애의 역사는 청각 장애인 공동체와 의식 있는 청인들이 사회 어딘가에 존재하는 오래된 관점을 바꾸어 간 여정일 것입니다. 그 관점이란 청인이 청각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려 하지 않고, 스스로를 높은 위치에, 상대를 낮은 위치에 두려는 입장이자 청각 장애인을 사회에서 배제하고, 차별하려는 시선입니다. 두 주체가 점차 마음을 나누고 있는 지금, 사회 일각에는 다른 문제의식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청각 장애인이 ‘정상화’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가 자신의 소통 수단인 수어를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나아가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들입니다. 청각 장애사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두 주체가 소중한 발걸음을 내딛는 가운데 조금씩 새롭게 쓰이고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은 청인이 두 가지에 대해 주목할 때 열리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청각 장애인의 전신 청취 방식입니다. 청인과 청각 장애인은 모두 소리 진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청인이 대체로 소리 진동의 청각적 지각만을 행하려 한다면, 청각 장애인은 전신을 사용해 소리 진동을 느끼려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청각 장애인의 언어인 ‘수어’입니다. 청각 장애인은 수어를 통해 예술적으로, 정치적으로, 인간적으로 음악적 실천을 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청각 장애인이 이러한 두 가지를 적극 활용하고, 청인이 그 내용들을 숙지하고 있다면, 서로 섬세하게 교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청인이 수어까지 할 줄 안다면, 화합을 이루는 데 그보다 좋을 일이 없겠지요.
영화 ‘코다’(CODA)는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이뤄지는 뜨거운 화합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알려진 대로 코다는 ‘Children of deaf adult’의 줄임말로, 청각 장애인 부모 아래 태어난 청인 자녀를 뜻하는 말입니다. 영화는 가족 중 유일한 청인인 딸 루비와 청각 장애인 부모인 프랭크와 잭키, 그리고 오빠 레오가 만드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루비는 늘 수어와 음성 언어를 바삐 오가며 어업에 종사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연결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취미로 노래를 하며 나만의 즐거움을 찾아갑니다. 그러다 좋아하는 친구 마일스를 따라 합창부에 가입하고 그곳에서 음악 선생님을 만나 노래를 향한 꿈을 키웁니다. 루비는 먼 곳으로 나아가 이루고 싶은 자신의 꿈과 그럴 경우 가족이 처할 어려움 가운데서 고민합니다. 그러나 이때 오빠가 루비에게 꿈을 찾아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이 같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가운데 부모의 생각이 서서히 달라집니다. 가족들은 루비가 마일스와 함께하는 공연을 접한 뒤 딸의 진정성과 재능을 알아챕니다. 이후 루비는 버클리 음대 오디션에서 참여하고 합격합니다. 루비와 가족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헤어집니다.
영화에서 마음에 남는 장면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아버지의 청취 방식. 루비와 마일스와의 이중창이 끝난 뒤 온 가족은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옵니다. 마당에 프랭크와 루비가 남게 된 뒤, 프랭크는 루비에게 공연장에서 부른 노래를 불러줄 수 있냐고 묻습니다. 딸은 노래를 부릅니다. 섬세하면서도 절절하게. 이때 아버지는 딸의 목에 손을 대고 노래를 느낍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온몸으로 진동을 느끼기 위해 그렇게 하겠지요. 아버지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진원지에 손을 갖다 댐으로써 딸의 마음을 피부로 느끼고 싶어서 그럴 겁니다. 서로 이어져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려 아버지는 두 손으로 딸의 목을 감싸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하나는 딸의 수어입니다. 루비는 버클리 음대 오디션장에 크게 긴장한 채 들어섭니다. 조금 뒤 가족들은 몰래 공연장 2층에 들어와 오디션을 지켜봅니다. 루비가 조니 미첼의 ‘Both Sides Now’를 부르려던 순간, 위층 좌석에 앉아 있는 가족들과 마주칩니다. 그는 용기를 얻습니다. 그리고 후렴구에서 가족들을 위해 갑자기 수어를 하며 노래를 합니다. 수어는 청각 장애인의 음악적 실천에 쓰이는 긴요한 언어. 그 특별한 몸짓을 가족들에게 보임으로써 루비는 가족들이 마음속으로 노래할 수 있도록 하는 건 아닐까요. 수어를 통해서, 공연장을 채우는 루비의 목소리와 가슴에서 울리는 가족의 음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온 가족이 아름답게 하나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사회는 시선을 넓혀 보다 많은 소수자 집단들에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 집단 가운데 청각 장애자가 있습니다. 이 사회가 대안적인 청취 방식과 언어를 주목할 때 청인과 청각 장애인 간의 소통이 활발해지고, 묵은 경계가 무너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 같습니다. 청각 장애가 소리 연구의 중요한 주제라는 점이 다시 한 번 상기됩니다.
78호_VIEW 2025.03.20.
글 권현석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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