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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리초이 Jul 18. 2020

갑작스러운 해외생활, 뭘 하면 좋을까?  

가성비를 높이는 해외생활을 하는 방법 

28살 처음으로 한국을 벗어나 해외에서 '일'이라는 것을 하면서 '돈'을 벌게 되었다. 

3년 동안 해외취업을 너무나도 갈망했기에, 처음에 잡 오퍼를 받았을 때는 모든 것을 다 이룬 듯했다. 


하지만 이내 반복되는 루틴 한 업무에 나는 점점 일에 대한 흥미를 잃어갔고, 

한국보다 더 높은 물가와 렌트비는 매월 한정된 월급으로 생활해야 하는 나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전문직이나 금융 쪽의 특수직군이 아니라면, 나처럼 아시아권에서 일하는 외국인의 경우 중국어를 기본적으로 해야 한다. 아시아에서 중국 마켓이 큰 것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인사팀에서 오퍼레이션, 이후에는 채용담당자로서 일을 했기 때문에 승진이나 업무 확장의 측면에서는 최소 3개 국어는 해야 했다. 

당시에 나의 언어 실력은 영어만 고만고만하게 했고, 중국어를 정말 잘하는 동료들은 주변에 깔려 있었다. 당장 20대 후반에 중국어를 시작해도 업무를 진행할 수 있을 만큼 실력이 향상될지는 미지수였다. 

어떻게 하면 나의 몸값을 올리고, 해외생활을 1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을까를 몇 달 동안 고민했던 것 같다. 


그 당시 나의 생각의 로직


'해외로 취업을 했으니 나의 몸값은 올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승진을 해야 하는데, 지금 상황으로는 승진은 희박해 보인다.'

'그렇다면 다른 루트를 통해서 나의 가치를 올려야 한다.' 

'내가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석사를 하게 되면, 네트워크를 이용해 커리어를 바꾸거나 이직을 할 수 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예전에 MBA 입학시험 영어점수를 만들어 놨었네?'

'주말반을 다니면,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겠군.' 

'잘하면 커리어를 바꾸거나, 이직을 통해 연봉을 올릴 수 있을 거야.'

'못해도 석사 학위를 얻으니까, 한국으로 돌아가면 어디든 날 받아주는 곳은 있겠지.' 

'MBA 하면서 내 바운더리 밖의 사람들을 만나보고, 홍콩에 대해서 더 깊숙이 알아보자.' 

'그래 그럼 어디를 지원할까?' 


이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난 홍콩대 MBA를 지원하게 되었고 그렇게 1년 반이라는 시간을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지냈다. 돌이켜 보니 정말 쉬지 않고 달려온 시간들이었다. 

주중에는 회사, 주말에는 학교 그리고 마지막 6개월은 주중에도 일 끝나면 학교로 달려갔다. 


당시에는 너무나 힘들고 지친 순간들이 많았다. 

내가 어쩌자고 이 비싼 공부를 시작했을까라고 자책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후회와 잡생각을 하기에는 난 너무나도 바빠져 버렸다. 

매달 새롭게 배우는 과목들, 리포트, 발표들을 처리하느라 딴생각을 할 틈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너무나도 떨렸던 시험과 조별과제들이 끝났고, 아쉽지만 스스로에게 대견했던 첫 학기가 끝이 났다. 

첫 학기 성적표. 경영에 ㄱ자도 몰라 끙끙댔던 과목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꾸준히 배워나가고 있었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었다. 

한 학기에 3개의 과목을 듣는 것도 힘들어했는데, 1년 뒤에는 6개의 과목을 소화해 낼 수 있었다. 

요즘 핫한 AI도 MBA에서 수업으로 배울 수 있었음 ㅎㅎ 


마지막 학기에는, 너무나 어려웠던 기업 인수합병 (M&A) 수업에서 A+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매주 발표를 해야 했던 Capstone이라는 과목은 망,,,ㅋㅋㅋ


3년의 해외생활을 돌아보니,,,,, 


첫 1년 반은 회사의 바운더리에 얽힌 사람들을 만나고, 회사에서 구할 수 있는 지식만 흡수하며 지냈던 것 같다. 

그 뒤, 1년 반은 내가 회사 생활만 했더라면 절대 배우거나 알지 못했을 지식, 사람, 트렌드, 경제, 산업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단순히 경제적 자유나, 커리어에서의 성공만이 인생의 다가 아니라는 귀한 배움도 얻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0kWvgAN0c

내가 제일 좋아하고 존경했던 한국인 교수 Davie Lee, 바람직한 리더의 조건과 기업의 목적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그렇게 30살의 문턱에서, 나는 매일 엄청난 양의 인풋을 나에게 들이부으면서 1년 반 동안 19개의 수업을 들으며 19번의 레벨업을 해나갔다.   


수업 하나를 들으려면 기본 45시간의 수업 + 시험공부 + 조별과제를 해야 하고 그 과정을 19번 반복하면, 최소 900시간의 공부를 하게 된다. (하지만 성적을 더 잘 받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을 부어야 한다.)

나는 경영 전공도 아니었고, 영어도 발표나 리포트를 쓸 수준이 아니었기에 저것보다 곱절의 시간이 들었었다.


하지막 다 공부를 다 끝내고 보니 외국어, 프레젠테이션, 네트워킹, 경제지식, 금융지식 등은 예전보다 훨씬 더 나은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경제나 금융에 대한 지식은 MBA 시작 당시 제로베이스였는데, 공부를 마칠 때쯤에는 금융계에 종사하는 학생들과 기업의 인수합병에 대해 토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쌓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커리어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계획 등도 더 긍정적이고 자신감 있게 바라보게 되었다. 


유명한 동기부여 강사 김미경 작가님이 말씀하시기를,

'자신감은 두려움이라는 주머니가 점점 작아지면서 그 감정이 최소화된 상황이다. 처음부터 자신감이 넘쳐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 두려움을 직시하고 즐기며, 천천히 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자'라고 하셨다. 


나에게 그 두려움은 결핍, 나를 둘러싼 상황에 대한 불만족이라는 감정이었다. 

MBA를 지원하기 전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 다시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인지 묻는다면, 나는 기꺼이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6,000만 원의 학비와 쉬지 않고 달려온 1년 반 동안의 시간이 짜릿할 만큼 힘들었지만, 그만큼 나의 결핍과 불만족이 작아지면서 자신감이 커지는 과정을 더 짜릿하게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다시 해외에서 나가 살게 된다면 또 다른 학위는 안 따겠지만, 

그 나라에서가 아니면 배우기 힘든 것, 해보기 힘들 것들을 또 시도해 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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