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리초이 Jul 23. 2020

인류 역사의 획을 그은 그림 한점

이 그림 때문에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갔다고??

대학교 때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교양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꽤 재밌게 수업을 들었었고, 지금도 내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수업이 있었다. 

그 당시 교수님은 소개해 주셨던 그림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암굴의 마돈나'(Virgin of the Rocks)였다.


이 그림은 인류의 역사를 '신' 중심의 중세시대에서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로 시대로 변화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적인 예술가이자 과학자, 기술자, 사상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다. 


1452 ~ 1519 

그는 31살일 때 밀라노의 성 프란체스코의 교회의 수녀회로부터 성모자와 세례자 요한에 대한 그림을 의뢰받았다. 다빈치는 3년에 걸쳐 그 그림을 완성시켰고, 교회에 보여주었으나 교회의 분노를 사게 되어 다시 10년이라는 시간을 걸쳐 2번째 그림을 그려야 했다. 


  

좌측: 암굴의 마돈나(1483 - 1486) (루브르) 우측: 암굴의 성모 (1495 - 1508) (런던 내셔널 갤러리) 


왜 다빈치는 똑같은 그림을 두 번 그려야 했을까? 


두 그림을 얼핏 보면 옷 색깔밖에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왼쪽 그림에는 아기 예수나 성모 마리아에게 모두 후광(Halo)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후광(빛)은 신의 성체를 상징하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성자의 뒷배경으로 나타나는 후광

예술작품을 보면 많은 성자들의 뒷배경에 후광 (빛)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신이 빛이라는 존재로 그들과 함께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후광이 없는 첫 번째 그림은 중세시대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 인식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후광이 없으니, 그림 속에 표현된 성모 마리아나 아기 예수나 모두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이 되어버렸고 이는 사람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게 된 것이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세례자 요한과 아기 예수가 구도상으로나, 의상으로나 구분이 가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에서 퇴짜를 놓았다고도 한다.) 


'신' 중심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점차 '인간'중심(인문주의)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고, 감히 궁금해 할 수 없었던 다양한 분야들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후 르네상스 시대 동안 문예 부흥, 학예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고 건축, 사상, 회화에 있어 엄청난 발전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수업을 들었을 당시 내가 느꼈던 충격도 정말 컸다. 그림 한 점으로 인해 사람들의 인식이 180도 바뀌다니! 그것도 신중심의 절대 권력자에 대한 복종과 순응의 사고방식에서, 인간 중심으로 인문주의로 말이다! 


그 당시 첫 번째 그림을 그렸던 다빈치는 어떤 마음으로 그 그림을 그렸을까? 

시대보다 앞서 있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던 다빈치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통해 과감히 시대에 거스르는 생각을 표현했던 게 아닐까? 그 결과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사건이 발생을 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두 번째 그림은 다빈치의 제자 '암브로조 데 프레디스'의 손이 더 많이 갔다고 한다. 

어쩌면 나의 가치관을 거스르는 그림을 외압으로 그리기 싫어 제자의 손에 더 많이 맡기지 않았을까? 


그 수업을 들었을 당시 교수님은 자신의 집에 '암굴의 마돈나' 모사품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 그림을 걸어둔 벽 아래에 소파를 두고, 가끔씩 소파에 누워 그 그림이 주는 기운을 받는다고 했다. 

한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던 그 엄청난 그림을 바라보며 그 그림의 기운을 흡수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사실 오타쿠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다빈치의 그림과 그 그림을 대하는 교수님의 태도에 매우 심취하게 되었다. 

왜냐면 나도 별생각 없이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대로, 이 세상이 그렇게 하라고 하는 대로 맞추어 가며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중세시대에 삶에 순응하며 고통받는 백성 같아 보였고, 다빈치나 교수님은 시대에 순응하지 않고 오히려 탈피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펼치고자 하는 개혁가, 개척자처럼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교수님은 그렇게 살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지만,,) 


어쨌건 그 뒤, 개척자처럼 나만의 가치관,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신념에 따라 살아가려고 많이 노력을 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쉽지 않지만 말이다.  


나도 '암굴의 마돈나' 모사품이라도 하나 사서 침대맡에 두어야 할까 보다. 





작가의 이전글 갑작스러운 해외생활, 뭘 하면 좋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