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리초이 Oct 24. 2020

인생에 슬럼프가 올 때

이번 생은 처음이라서 

겉으로는 씩씩한 척했다. 


3년 반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그 날,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에게 이별을 통보받았을 때도, 

그다음 날 첫 출근만 잘했었더랬다. 


사실 우리의 관계는 내가 한국으로의 귀국을 준비하고 있던 시점부터 삐걱대고 있었다. 

해외에 있을 때는 일, 학교, 사이드잡까지 3가지 일을 병행하느라 그 사람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잘해 주겠노라 마음을 먹었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아등바등하며 살고 있는데, 

편안하게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사람에게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 내가 벌린 일들을 잘 해내려고 했고, 

그럴수록 그 사람이 나에게 표현하는 서운함의 농도도 짙어졌다. 


커리어와 학교, 그리고 자기 관리에 열심인 모습이 멋있어 내가 좋다고 했던 그 사람은, 

결국 똑같은 이유로 나에게서 떠나갔다. 


스멀스멀 내가 잘 살아왔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겉으로는 씩씩한 척했다. 

나답게 내가 가진 주관을 들이밀며 하루하루 살아갔다.

내가 세운 목표들을 하나씩 클리어하며, 내 인생이 나아지고 있다고 믿었었다. 


그렇게 올해도 꽉 찬 한 해를 보내다 문득 걷잡을 수 없는 무력함, 우울감이 몰려왔다.  

30대에 들어서니 힘이 빠져서 그런 건지, 원래 인생의 난이도는 30대부터 진짜 시작인 건지 모르겠지만 하루하루가 버겁고 힘겨웠다. 

20대 때 쉬지 않고 달려와도 느끼지 못했던 슬럼프가 30대에 와서 찐하게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문득 또래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자 했고, 다른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황스러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머릿속에서는 오만가지 생각이 밀려왔고, 

자꾸만 내가 '그때 ~~ 했더라면' 과거의 결정을 번복하는 생각을 수천번도 더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해외를 나갔다 오고, 학교를 다녀오고, 그 경험으로 수백 명의 학생들을 멘토링 해주었지만

그런 수식어가 주는 자랑스러움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미뤄두었던 내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했다. 

지방에 있었던 작은 부동산을 처리하고, 서울에 있는 집도 내놓으면서 혼자 좀 더 편안하게 살기 위한 아파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일이 끝나고 저녁도 대충 때우면서 그렇게 집을 둘러보고 밤에 집으로 올 때면, 육체가 주는 피로함과 마음이 주는 피로함이 내 어깨와 머리를 짓눌렀다. 


그렇게 우울함을 외면하려고, 틈만 나면 이것저것 달그락거렸다. 

브런치를 열어 글을 끄적거리고, 운동을 하러 가서 숨이 턱끝까지 찰 때까지 운동을 했다. 

해외에 있을 때부터 가르쳤던 수백 명의 학생들에게서 가끔씩 감사 메시지도 받으면 잠깐 괜찮아지기도 했다. 


그렇게 일주일에도 몇 번씩 우울해졌다 괜찮아졌다를 반복했다. 

나 제대로 살고 있는 거 맞는 건가? ㅎㅎ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고,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는 게 인생이라지만 어떻게 하면 극복이 되려는지, 

이럴 때는 누가 답안지를 줬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