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 30분 이내에서 만난 도쿄의 맛
여행에서 중요한 한 가지는 분명 음식일 테다. 그게 도쿄라면 더더욱. 완벽한 식도락 도쿄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관문을 거쳐야 하는데, 로컬은 물론 여행객들에게 제법 괜찮다고 입소문 난 곳은 미리 예약해야 하고, 워크인 일지라도 웨이팅은 필수다. 발길 닿는 데로 구경하다 밥때 놓치기 일쑤인 나로서는 감히 생각지도 못할 일. 어차피 무계획인 도쿄였다. 미리 타베로그를 통해 맛집을 검색하고 예약하는 단계는 과감히 생략했다. 구글맵에서 적당히 괜찮아 보이지만 예약이나 웨이팅 안 해도 될만한 곳을 골랐다. 기준은 현재 위치에서 가까운 순. 혹은 식당에서 호텔까지의 이동 시간이 편도 30분 이내일 것. 그렇게 고른 도쿄에서의 첫 끼는 스미다 호쿠사이 미술관 근처의 kariya였다.
1947년, 처음 문을 연 노포다. 11시 반쯤 식당에 들어섰다. 메뉴를 주문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여유롭던 테이블은 금세 만석이 됐다. 하나 둘 가게를 찾았다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상당한 걸 보니 이 부근에서 꽤 알아주는 로컬 식당인 듯하다. 매력적인 단품도 많지만, 아무래도 점심에는 런치세트가 합리적이다. 7가지 정식 중에서 제철 재료로 만든 밥이 메인인 정식을 골랐다. 이날은 장어를 잘게 부숴 넣어 볶아낸 밥과 세 종류의 회, 미소국, 찬이 곁들여진 구성으로, 그 맛은 상당히 낯설었다. 일본 음식 답지 않게 모든 간은 슴슴했기 때문에. 여행에서만큼은 술에 관대해진다. ‘낮술이 진리'라는 나만의 여행 공식은 잠시 잊고 식사를 위해 웨이팅 하는 몇몇을 위해 일어서기로 한다.
아사쿠사의 shabutatsu. 꽤 퀄리티 좋은 샤브샤브와 스키야끼를 합리적인 가격에 맛볼 수 있다. 술 한잔에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단품 메뉴도 다양한 편이다. 고민 없이 스키야끼를 주문했다. 메뉴가 나오는 틈을 타 우롱하이볼로 목을 축이니 기본찬인 오토시와 피클, 된장국과 쌀밥이 차례로 내어진다. 스키야끼는 특상 로스 부위가 나오는데, 가격에 맞는 적당함이다. 모녀가 운영하는 이 작고 소박한 가게는 8명 정도를 위한 다찌석이 구비돼 있으며, 자리마다 있는 개인냄비에 셀프로 익혀먹으면 된다. 자신만의 속도로 말이다. 메인의 경우 고기양을 고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 마무리로 아이스크림까지 4,400엔. 기대 이상으로 가게는 청결했고 쾌적했으며, 맛과 구성, 가격도 적당했다. 다만 슴슴한 내 입맛에 꽤 맛있게 먹었으니, 자극적인 음식을 즐긴다면 다소 심심할 순 있겠다.
도쿄의 여름 더위는 상상 이상이다. 7~8월 여행을 피해야 하는 도시로도 꼽히는 도쿄인 만큼, 열기를 식혀줄 음식도 분명히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냉라면 히야시추카다. 가게에 히야시추카가 등장하면 아, 진정한 여름이 왔구나 라고 생각한다고. 차게 식힌 메밀면 위에 달걀지단과 여러 생채소, 돼지고기 등을 고명으로 얹는다. 식초, 간장, 설탕, 참기름 등을 맛 좋게 배합해 끼얹으면 우리가 아는 그 히아시추카가 완성된다. 일본을 대표하는 여름의 맛인 만큼 다양하게 바리 되며, 햄, 차슈, 오이, 토마토 등을 취향 따라 다르게 곁들인다. 그래서인지 식당마다 만드는 방식과 맛에는 조금의 차이가 난다. 지금은 폐점한 나카메구로의 Rairaiken에서 먹은 히야시추카는 마치 히아시추카라면 이런 맛이어야 해! 라고 생각이 드는 정석의 맛. 짭조름하고 달큼한 맛이 적당한 육수와 알싸한 연와사비, 탱글한 면과 올려진 고명의 합이 굉장히 좋았다. 반면 Yosuko restaurant에서의 한 그릇은 훨씬 자극적이었으며, 음식의 온도 또한 미지근했다. Rairaiken이 여로가 풀리며 편안해지는 맛이었다면 Yosuko restaurant은 더위가 조금 더 깊어지는 맛.
일식과 프렌치를 적절히 녹여 제철 재료로 선보이는 이자카야 居酒屋たぬき.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단 네시간만 문을 연다. 메뉴는 코스요리 단일이다. 6600엔이니 캐주얼하게 맛볼 정도이며, 주류의 경우 단품 외에도 2200엔에 모든 음료를 프리로 마음껏 마실 수 있다. 다이닝이라기엔 애매하고, 술집이라고 하자니 역시 아쉬운 맛과 리스트업이다. 하지만 음식의 맛은 원물이 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곳에는 다정함이 녹아 있다. 오너셰프를 포함한 5명의 셰프가 손님맞이로 분주한 와중에도 번역기 돌려가며 음식에 대해, 다테야마와 가미코지 그리고 나가노까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바로 분위기의 맛. 황홀한 음식을 먹는 것 이상으로 즐거웠다.
도쿄에 왔으니 토닉커피 또한 맘껏 마셔야 한다. 에스프레소와 토닉워터를 적당한 비율로 섞은 이 간단하지만 심오한 맛의 토닉커피는 2007년 스웨덴의 바리스타 Charles Nystrand와 Anne Lunell에 의해 선보여진 음료다. 파티 후 남은 토닉워터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탄생했다고. 은은하게 도는 단맛과 톡 쏘는 탄산이 어우러져 색다른 커피맛을 내는 토닉커피를 맛보기 위해 아자부주반으로 향했다. 오묘한 공기를 품은 아자부주반의 거리. 롯폰기와 도쿄 타워 사이에 위치해 복작 깨나 할 것 같지만,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한산하다. 오래전부터 상점가가 즐비한 곳으로, 100년 이상의 역사를 여전히 유지하는 곳이 많다. 전통과 현대 도시가 동시에 공존하는 거리랄까. STREAMER COFFEE COMPANY AZABU-JUBAN 역시 오래된 우동가게를 카페로 변모시켰다. 가게의 외관이나 구조는 기존 우동가게의 틀을 그대로 두어 더 매력적인 공간이 되었다. 전통적이지만 모던하게 잘 정돈된 카페로, 커피맛도 꽤 괜찮은 편이다. 무엇보다 이곳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여유롭다. 도쿄 여행 시 꼭 방문해야 하는 카페이거나 줄 서서 먹는 수준급의 카페는 아닐지언정 우동가게에서 마시는 토닉커피라고 생각하니 재미있는 경험.
최애 일드 중 하나인 쿠도 칸쿠로의 <맨해튼 러브스토리>를 떠올려봤다.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장소 <카페 맨해튼>에서 아카바네가 마시던 커피 플로트가 기억에 남는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커피 플로트에 빠졌던. 커피 플로트. 그 자체로도 시원한 아메리카노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스쿱 올려낸 음료다. 먹기 위해 반드시 정해진 순서는 없지만, 나는 먼저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 떠서 입안에 넣은 뒤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쌉싸래하면서도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한 마디로 여로 풀어 주는 맛. 딱 이맛이다. 복작한 긴자거리에서 반층만 내려가면 조용하고 차분하며, 킷샤가 현대식으로 재해석된 듯한 공간이 나온다. 점심인데도 모든 테이블은 혼자인 손님뿐이다. 긴자 로스터리 카페 Sanjikken Coffee House Ginza.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이곳의 아메리카노는 꼭 맛보시길. 태어나서 처음 경험한 독보적인 커피맛을 자랑한다. 깊고 농후하며 진득한데, 쓴맛과 산미가 입안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다. 고작 한 손에 다 쥐어질 정도의 작은 잔에 찬 커피의 맛은 몹시 강력한데, 묘한 매력이 있어 자꾸 넘기게 된다. abno는 DDD hotel 안에.
6월의 날씨를 가장 완벽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다이칸야마 Cafe michelanzelo. 유럽풍의 내부 대신, 볕이 좋아 야외 테라스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쇼트케이크와 더위 식혀줄 맥주를 주문했다. 목적지 없이 걷다 조금 지칠즈음 눈앞에 보이는 카페를 들어가 목축이며 잠시 쉬는 그 행복. 어쩌면 여행하는 이유의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다음번엔 적절한 거품과 은은한 커피향이 일품인 샤케라또와 함께 하리라.
가미야마치에서 조금 걸어 보자. 큰교차로 일각에 있는 Yokohamaya가 보이면 반드시 지하로 향해볼 것. 계단을 내려가 문을 열면 근사한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탁한 공기와 담배 연기로 희미해진 조명과 입에 담배를 문 장년의 사장님이 작은 프레임에 담긴다. 손님이라고는 다찌석에 앉아 앉아 펼친 종이신문에 집중한 양복 셋업한 남자 한 명 뿐이다. 마치 시간이 멈춘듯 재즈 음악도 느리게 흐른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심의 반 층만 내려왓을 뿐인데, 마치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다. 이곳의 시간은 정말이지 느리게 흐르는 지도. 다양한 종류의 블렌딩 커피와 디저트, 이곳의 시그니처 하이라이스를 맛볼 수 있다. 사장님이 추천해주시는 커피 한 잔과 따뜻한 생크림이 올려진 애플파이를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