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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볼 환자 가득한데 취객까지…‘조용한 밤’은 틀렸다

[안녕하세요 응급실입니다](4) 응급실 간호사의 하루

중증응급실엔 비어있는 침상 없어

정신없이 환자들 살피다 보니…

경증응급실선 술 취한 환자 소란


1시간 넘게 들은 욕설, 귀에 맴돌아

주변에선 편한 부서로 옮기라지만

위기의 순간에 도움 주는 게 보람


간호사들이 야간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에게 모니터를 적용하고 소변량을 측정하고 있다.


나는 응급실 5년차 간호사이다. 학생실습 때 응급실이 가장 매력 있고 흥미로운 실습부서였고, 다채로운 상황과 박진감이 좋아서 주저 않고 응급실을 지원했다.


오늘은 나이트(밤) 근무이다. 근무시간은 밤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다. 하루 종일 환자로 북적이던 응급실도 새벽시간에는 잠시 소강상태가 되기도 하니, 조용한 밤이 되기를 기대하며 출근을 한다.




중증응급실은 빈 침상이 없이 중환자들로 가득 차 있다. 신입 간호사 두 명과 중환자들을 돌보며 하룻밤을 보내려고 하니, 걱정이 앞선다. 얼마 전 잦은 밤 근무로 이직을 선택한 동기 소정이를 생각하며, 경력 간호사가 근무 환경으로 사직을 고민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오늘 오후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인한 혈복강으로 외과 수술을 앞두고 있는 첫 번째 환자는 빨리 응급수술 스케줄이 잡히면 좋겠는데, 그전 수술이 끝나지 않아 수술이 지연되고 있다. 수술 전까지 활력 징후(vital sign)가 잘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환자의 혈압과 맥박이 점점 떨어지는 조짐이 보여 불안하다. 그 옆에 있는, 심폐소생술 후 자발호흡이 돌아와 조금 전에 중환자 구역으로 옮겨온 환자는 목표체온조절치료(TTM)를 시작한다고 한다. 이제 인공호흡기와 목표체온조절치료를 위한 장비를 세팅하고, 수많은 약제를 준비해서 연결해야 한다.


그 옆에 있던 호흡기 환자는 상태가 변했는지, 인공호흡기 알람이 삑삑 울리기 시작했다. 중환자들의 상태를 헐레벌떡 살피고, 새로 난 오더(의사의 처방 등)를 받고자 의자에 앉았는데, 간호 스테이션(간호사들이 행정처리·치료준비 등을 위해 머무는 구역)을 계속 바라보고 있는 위암 환자와 눈이 마주쳤다. 인계받을 때부터 배가 아프다고 힘들어하던 환자인데, 미안한 마음에 ‘의사와 연락 중’이라고 크게 입모양으로 뻥긋거리고는 다시 전화기를 든다.




정신없이 환자들을 돌보다 보니 새벽 3시가 되었다. 그사이 외과 환자는 응급 수술을 받으러 가고, 목표체온조절치료를 하고 있는 환자의 보호자가 도착하였다. 보호자가 불안해하기는 하지만 연신 “살려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나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제 담당 환자의 오더 리뷰와 정리를 하려는 참에 갑자기 경증응급실이 소란스럽다. 술을 마시고 넘어지면서 팔에 상처를 입은 환자와 보호자가 큰소리를 지르고 있다. 이미 봉합이 끝났고 퇴원 예정이었는데, 입원이 안되는 이유가 뭐냐며 “병원장 나오라”고 큰소리를 지르고 있다. 급기야 담당 간호사에게 욕을 한다.


술에 취해 소리 지르고 횡포 부리는 환자와 보호자는 어떠한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 순식간에 경증응급실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고, 모든 환자와 보호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술에 취한 환자와 보호자는 보안요원이 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욕설과 난폭한 행동으로 정신을 빼놓았다. 더 이상의 방법이 없어, 경찰에 신고를 한다.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미안하고, 저렇게 횡포를 부리는데 어찌할 수 없는 내 모습이 슬프기도 하다.


경찰이 와서 술에 취한 환자와 보호자, 담당 간호사와 면담을 한다. 옆에서 팔짱을 끼고 보고 있던 보호자가 증언을 해주겠다며 시끄러웠던 상황을 설명했다. 이제야 환자는 술이 깨는지 미안하다며 연신 고개를 떨구었다. 사건은 정리가 되었지만, 1시간 넘게 들었던 욕설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이제 오전 4시30분이다. 어서 오더 정리를 하고, 아침 피검사, X-레이 검사를 진행해야겠다. 선배 간호사에게 인계를 하게 되어 긴장이 된다. 신입간호사 시절에 많이 혼나서 무서워했던 선배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한가지라도 더 알려주려 했던 모습이어서 고맙게 여겨진다.


밤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발걸음이 무겁다. 중환자들도 많았고, 술 먹고 온 환자 때문에 감정 소진이 심했다. ‘오늘은 지하철에서 졸지 말고, 정거장 놓치지 말아야지.’


아침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 겨우 탔다. 눈꺼풀이 점점 내려온다. 애써 참고 있는데, 앞에 서 있던 70대쯤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갑자기 스르르 힘없이 쓰러진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도 잠시, 본능적으로 “응급실 간호사입니다. 여기 사람이 쓰러졌어요. 승무원 호출해주세요!”라고 소리지르고, 할아버지의 맥박을 짚었다. 다행히 맥박은 있었지만, 식은땀을 흘리고, 물음에 희미하게 대답을 한다. 옆사람의 도움으로 다음 역에서 할아버지를 내리게 해서 의자에 눕혔다. 당뇨약을 복용하시고 있다니 저혈당 증세가 의심된다고 승무원과 119구급대원에게 상황을 알려준 후 다시 지하철을 탔다.


주변에서는 “왜 험한 응급실에서 일하느냐”라며 편한 부서로 옮기라고 하지만, 나는 그래도 응급실이 좋다. 생사가 오가는, 삶의 가장 위기의 순간에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응급 전문인으로 하루하루 커가는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 내용은 응급실 간호사의 일상을 기반으로 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주영 | 서울성모병원 응급의료센터 간호사

원문보기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7312107025&code=9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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