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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실려 온 중증 암환자…응급실에선 생명이 우선

[안녕하세요 응급실입니다](9) 응급실과 연명의료결정법

경향신문-응급의학회 공동기획 50부작, 벌써 9회가 나왔네요.

이번 글은 제가 썼던, [환자가 정말 원하던 바였을까? - 응급실과 연명의료결정법]입니다.

지면에 한계로 축약본이 신문에 실렸는데 하고픈 얘기가 다 실리지 못한 느낌입니다.

여기 개인공간을 통해서는 원문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응급실과 연명의료결정법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 등 의학적 판단으로 생명유지

응급 상황의 연명의료결정법…제도·기술적 방법 보완 필요


119 구급대원들이 종합병원 응급실로 환자 이송을 마치고 구급차로 돌아와 다음 출동 준비를 하고 있다. 김포 뉴고려병원 제공


저 멀리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다. 응급실 의료진들의 불안감에 답이라도 하듯 '우당탕탕' 하며 119 카트가 환자를 싣고 들어온다. 위중한 환자인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중증 치료 구역으로 밀고 들어오는 카트. 자세히 살피니 오랜 병색이 완연한 할머니가 의식 없이 숨을 헐떡이고 있다.


구급대원 진술에 따르면 폐암 환자이고 보호자 없이 홀로 지내던 분이라 한다. 평소에도 숨차다는 소리를 달고 살던 터에 오늘따라 더 숨이 차 헐떡이다 의식 없이 쓰러졌다 했다. 다행히 함께 있던 이웃에 의해 바로 신고된 모양이다. 당장 기관 삽관을 하고 인공호흡기를 적용해야 생명을 유지시킬 수 있겠다 싶어 급히 보호자를 찾는다. 하지만 가족은 없고 폐암이라 들었다는 이웃의 진술에 선뜻 후두경을 들지 못하고 고민에 빠진다.


병색으로 봐선 말기 암환자의 오랜 투병생활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의식도 없고 가족도 없어 기관 삽관과 인공호흡기 적용에 대해 환자가 평소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확인조차 할 수 없다. 혹시 우리 병원에서 암 치료를 받던 분인가 싶어 급히 주민등록증을 찾아 접수부터 시켜보지만 진료 기록에는 아무 내용도 나오는 것이 없다. '지금 하는 이 기관 삽관, 환자가 정말 원하던 바였을까?' 의문을 애써 삼킨 채 환자의 성대 사잇길로 튜브를 밀어 넣는다.




한 사람의 삶의 과정에서 누구에게나, 언젠가 찾아오는 죽음, 임종의 시간. 응당 이 또한 자연스러운 삶의 마지막 과정으로서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점차 삶의 끝자락을 병원에서 맞는 경우가 일상이 되면서 인간다운 죽음과 최선을 다하는 치료 사이에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지에 대한 고민 또한 복잡해졌다.


삶을 미리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편안한 마지막을 보내고 싶었던 수많은 말기 환자들. 중환자실에서 수액과 약물을 주렁주렁 단 채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심폐소생술을 하느라 망가진 몸을 두고 생을 마감하는 일이 흔하다.


특히 1997년 보라매 병원 사건에 대한 판결이 알려지면서 그 빈도는 더 늘어나게 되었다. 이 사건은 심각한 뇌 손상을 입은 환자를 보호자가 요구하는대로 퇴원시켜 주었다가 주치의가 살인 방조죄로 처벌받은 사건이다. 이후 의사들이 처벌에 대한 큰 부담을 가지면서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서 편안한 죽음을 맞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 문제로 인해 고통받는 환자와 보호자가 늘면서 세계에 유래 없는 우리나라만의 법안이 새로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올초부터 화두가 되었던 연명의료결정법, 언론을 통해 들어본 이름일 것이다. 오늘은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법의 내용과 취지, 현실에서의 혼란, 응급실과 관련되어 어떤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지에 대해 짚어보려 한다.




연명의료결정법으로 불리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란 긴 이름의 법이 작년 8월부터 시행되었다. 연명의료 결정 사항 등 세부적인 시행은 올 2월 들어 전격 시행되었고 3월 말 한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기대와 우려 사이에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이 법은 임종과정에 있어 사망에 임박하였거나 말기 환자로서 여명이 수개월 이내로 판단되는 환자에게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미리 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를 마련하기 위한 법이다.


기존에 작성하던 DNR (Do not resuscitation, 소생술 금지 요청서)가 병원마다 서식이 다르고 환자 본인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하는데 한계가 있어 이를 대체하는 의미도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DNR 서식의 경우 본인이 암이란 사실을 모르는 상태로 환자가 의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호자만의 서명으로 작성되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고 의료진과 환자 및 보호자에 대한 법적인 보호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이 절차에 동의할 이유가 분명하다.




간단하게나마 이 법을 적용하는 방법을 정리하자면 먼저 환자가 사망 직전으로 판단되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이거나 여명이 수개월 이내로 추정되는 '말기 환자'인 경우에 적용할 수 있다. 연명의료 계획서나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하여 국립 연명의료관리기관의 온라인 시스템에 등록하면 된다. 이 법에서는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과거처럼 의식이 있는 환자에게 병의 존재나 중함을 숨기고 가족이 대신 결정하는 것은 불가하다. 죽음에 대한 문화의 개선에도 긍정적인 역할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단점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여러 가지 문제점이 거론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응급실 환경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상황에 대해 논하려 한다. DNR 의 경우 반드시 문서가 아닌 목걸이나 문신, 보호자의 진술 등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더라도 그 의사를 인정받았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보호자가 '저희 어머니는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하면 심폐소생술을 중지하거나 인공호흡기 적용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연명의료결정법은 엄격한 법의 특성상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확인되기 전엔 그 의사를 인정받지 못한다. 따라서 앞의 예시에서 본 것처럼 응급 상황에서 홀로 실려 온 환자의 경우나 온라인으로 확인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에서는 활용도가 떨어진다. 현재까지는 접수와 동시에 연명의료 결정 여부가 자동으로 확인, 반영된다든가 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응급실에 실려오는 대부분의 응급환자가 의식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경우, 이 법에서는 보호자 전원의 합의와 의사 2인의 확인, 의료기관 내에 윤리위원회가 있을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하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는 촌각을 다투는 응급상황에 가족관계 증명서를 확인해가며 보호자 전원의 의사를 확인하기 어려운 문제가 앞선다. 게다가 밤중이나 주말에 의사 2인이 상주하는 응급실이 드물다. 또한 어렵게 가족 전원의 합의를 확인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중소병원에는 윤리위원회가 존재하지 않아 연명의료결정법을 이행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해 국립 연명의료관리기관에서는 응급실의 응급상황은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므로 환자의 상태에 대한 의학적 판단에 근거하여 필요한 의료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기존의 DNR 서식의 효력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연명의료결정법과 관계없이 응급상황 등에서 의료기관의 판단 하에 DNR 사용의 가능성은 있겠으나,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는 결정은 아니다.'라 하였다.


이 답변대로라면 사실상 응급실 현장에서는 사전에 연명의료 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은 많은 수의 환자에 대해, 그리고 연명의료 계획서를 작성했다 하더라도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연명의료결정법의 혜택을 볼 수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입원해서 병동이나 중환자실에 있을 때엔 연명의료결정법에 적용을 받지만 응급상황이 발생해 도착한 응급실에서는 그 적용이 불가능한 아이러니가 생기는 것이다.


법의 취지를 고려했을 때 인간다운 죽음의 과정을 보장하고 보호해준다는 면에서 이 법의 전면적인 시행을 환영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위에 기술한 문제들로 인해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응급상황에서는 그 가치가 미미하다는 문제가 있다. 제도적인, 그리고 기술적인 방법으로의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최석재 |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위원·정책위원


원문 보기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9112112025&code=9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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