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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지 후 혼수상태… 체온 낮춰 뇌손상 방어

[안녕하세요 응급실입니다](12) 심정지와 저체온치료

심정지와 저체온치료

갑자기 쓰러진 50대 남, 제세동으로 심장은 다시 뛰었지만 미동도 안 해

체온 33도로 24시간 유지…정상체온으로 끌어올리자 서서히 의식 회복


심정지로 내원한 70대 남자 환자가 체온을 33도로 낮추는 저체온 치료를 받고 있다.



늦은 밤이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임상강사가 되어 서울의 제법 큰 대학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어느 날. 중증구역엔 이제 막 인공호흡기를 달고 안정을 찾기 시작하는 폐렴환자와 동맥류 파열로 응급 수술이 필요한 뇌출혈 환자를 비롯해 심각한 환자들로 인해 긴장감이 고조되고, 경증구역엔 이마가 찢어져 울고 있는 아이와 그 부모 등 역시나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둘러싸여 정신없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때 “심정지 환자예요!” 하고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119구급대원이 도착했다. 환자는 50대 남성으로, 평소 자주 가던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고 한다. 쓰러지자마자 119에 신고되어 구급대원이 도착했을 당시 이미 심정지 상태여서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응급실에 도착했다. 신속히 의료진의 처치가 이어졌다.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기관삽관을 하고 인턴은 흉부 압박을 시작했다. 심전도는 심실세동 상태를 보여준다. “제세동(심장충격)합니다! 모두 물러나세요!” 10여분이 흘렀을까….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던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환자의 의식은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어야 할 동공반사, 각막반사도 없다. 아무리 꼬집어도 미동조차 없다. 완전한 혼수상태다. 살려야 한다. 아니 살리고 싶었다.



별다른 지병 없이 건강했던 50대 남자.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심정지를 가족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눈으로는 보고 있지만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 환자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료가 뭐지? 가장 최선의 치료가 뭐지? 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인데…. 혼란스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냉정을 찾아야 했다. 이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를 찾고 이를 해결해야 했다.



뇌를 보호해야 해! 그렇다. 심정지가 일어나면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은 손상을 받는다. 그중에도 뇌가 가장 많은 손상을 받고, 이는 환자가 지속적인 혼수상태가 되는 원인이다.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뇌를 보호해주는 약은 없다. 그래 체온을 낮추자! 심정지 후 저체온 치료가 유일한 치료 방법이었다. 특히 저체온 치료는 환자의 심정지 리듬이 심실세동일 때 더 효과적이지 않은가.



“이 환자에게 저체온 치료를 시행하겠습니다! 중심체온 33도로 24시간 유지하겠습니다!” 호기롭게 처방을 내고 치료를 시작했다. 다행히 환자의 혈압, 맥박은 정상이다. 저체온 치료를 유도, 유지하기 위해 혈관 안에 특수관을 삽입했다. 별다른 문제 없이 저체온 치료가 시작되었다. 하루가 지나 환자의 체온을 서서히 정상 체온으로 끌어올린다. 정상 체온에 도달하면 저체온 치료 도중 사용했던 진정제, 근육 마비제 등 환자의 움직임을 인위적으로 제한했던 약을 모두 끊게 된다. 이때 뇌 보호가 충분히 이루어져 뇌손상이 적은 환자는 사람에게 보이는 기본적인 반응, 반사가 나타나게 된다. 동공반사, 각막반사 등.



이 환자는? 없다. 약을 모두 끊고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완전한 혼수상태이다. 그렇게 하루이틀이 지났다. 보호자도, 의료진도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환자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심정지 발생 후 정확히 6일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환자의 몸에 삽입되어 있던 각종 의료기기를 하나씩 제거했다. 환자는 사고 당시의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 기억 못하는 게 낫지….



그렇게 환자는 약 한 달간의 힘든 입원생활을 마치고 심정지 예방을 위해 제세동기를 몸에 삽입하고 퇴원했다. 환자는 아직까지 별다른 문제없이 정상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윤준성 | 서울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10162115025#csidxd42688dd81446989b7ba9a47bd6b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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