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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아프고 다리 저려 앉지도 못하고 서 있던 아저씨

신경조절 주사요법 #05

새벽 두 시, 아저씨 한 분이 괴로운 표정으로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허리가 아프다며 진료를 청해오시기에 자리에 앉길 권하였으나 앉질 않으십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냐 물으니 허리가 아프고 오른쪽 다리가 저려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앉기 많이 불편하시냐 물으니 오른쪽 다리를 절뚝이는 채로 의자에 앉으셨습니다.

그러더니 1분도 못 있어 다시 일어나시고 말았습니다.

상황을 자세히 여쭈니 그 히스토리가 길었습니다.



6개월 전, 트럭에서 내리다 허리를 삐끗한 느낌이 있은 뒤 점점 통증이 심해져

2개월 전부터는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서서 생활해야 할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고

점점 통증과 함께 다리로 내려오는 저림이 심해 일상생활에 불편이 컸다고 합니다.


누울 때에도 처음 자리에 누워서는 허리와 우측 다리 통증과 저림이 심해 괴롭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좀 낫다고 했습니다.

통증 위치는 우측 허리에서 시작해 엉덩이 뒤쪽을 타고 대퇴 앞쪽 바깥쪽과

아래 다리 앞쪽 바깥쪽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라고 합니다.


과거 기록을 보니 2개월 전, 그리고 1개월 전에 한차례씩 총 두 차례

새벽에만 응급실에서 진통제 주사를 맞은 기록이 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 분은 원래 디스크가 있어 다른 병원에서 검사를 다 했으니

진통제 주사만 놔달라며 다른 진찰을 아예 거부하셨던 분이었습니다.



오늘은 그때보다 통증이 더 심한지 자세한 진찰을 해보자 하니 수긍하셨습니다.

침상에 엎드린 채 배 쪽에 베개를 받치고 허리를 세우는 척추기립근들부터 진찰을 시작했습니다.

T-L junction에 다열근(multiffidus)에는 특별한 압통이 없었고

양쪽 허리와 엉덩이의 피부감각에도 특별한 차이는 없었습니다.

최장근(longissimus)과 장 늑근(iliocostalis)도 양측에 차이가 없고 압통도 없었습니다.

우측 요방형근(quadratus lumborum)을 깊게 눌러보니 좌측과 차이가 나는 통증이 있었습니다.


일단 다리로 내려오는 양상의 저림과 통증이 있는 걸로 봐서

좌골신경통(sciatic neuralgia)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고 이상근(piriformis)에서 압통을 찾았으나

좌측에 비해 미세하게 통증이 더하다 할 뿐이었습니다.

이 정도 고생하시는 분에게서 눌러서 나타나는 압통이 이것밖에 안 나온다면

이상근은 원인 근육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시 환자를 앉히고 다른 근육에서 원인이 있는지 재평가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어디가 아프고 어디가 저린지 좀 더 자세히 알려달라 하자

환자는 오른쪽 대퇴부 앞쪽 외측을 만지며 이쪽이 아프고 내려가는 듯 한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대퇴부 근육을 두루 만져보니 약한 통증과 함께 장골근(iliacus)에서 저명한 압통을 보였습니다.

앗, 그렇다면 뒤쪽 좌골신경통이 아닌 대요근(psoas major) 증후군이겠구나 하는 느낌이 옵니다.

다시 환자를 바로 눕혀서 다리를 최대한 굽혀 올리고 배에 힘을 빼도록 주문했습니다.

이어서 복부를 통과해 깊숙이 있는 대요근 진찰을 시도하니 우측 대요근에서 강한 압통을 보입니다.


대요근은 우리 몸의 척추 기립근 중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매우 굵고 큰 근육입니다.

대요근에 과긴장이 오면 요추체와 대퇴부 사이에 과하게 힘을 받아

요추전만증(lumbar lordosis, 척주 앞굽음증)을 보이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림과 같이 걸음이 불편할 정도로 엉거주춤한 자세로 걸으시는 분들에서 확인이 필요합니다.



통증의 원리와 통찰(성정원, 군자출판사) p.818에서는 대요근 증후군의 여러 증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퇴부 앞면의 허혈성 통증, 무릎의 압박에 의한 염증성 통증, 대퇴부 앞면이 찌릿하다는 감각신경성 통증,

무릎 내측과 정강이 내측 앞면의 감각 이상, 대퇴부 내측의 허혈성 통증, 서혜부 내측의 골막 자극 증상.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몸을 일으켜 세우는 큰 근육이다 보니 다양한 증상을 일으킵니다.

대퇴부 후면과 아랫다리의 허혈성 통증, 아랫다리 전외측과 발바닥의 감각신경성 통증, 둔부의 통증,

대퇴부 옆면의 감각신경성 통증(이상지각성 대퇴신경통), 하복부의 통증과 고환, 음경의 통증까지...


왜 일개 근육의 과긴장과 단축으로 인한 증상에 대요근 증후군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 할 것입니다. 그만큼 다양한 증상에서 범인이 대요근이 아닌지 고민해보라는 것이겠죠.



어쨌든 다시 환자분께 돌아와 봅시다.

환자분께 신경조절 주사요법 치료의 필요성과 방법, 합병증에 대해 설명 후 동의를 얻었습니다.

처음 진찰 때처럼 엎드려 배에 베개를 받친 후 대요근을 수직으로 접근하는 곳에 표시 후

서서히 주사침을 찔러 들어가 7.5cm에서 근막 뚫는 느낌을 느끼고 9cm 깊이에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근육이 얼마나 과긴장해 딱딱한지 아무리 눌러도 주사액이 밀려 들어가질 않습니다.

6개월 전 시작한 근긴장을 제대 풀어주지 못하고 방치하다 최근 2개월간은 앉지도 못할 정도로

불편함을 달고 살았으니 말 그대로 돌덩이처럼 근육이 변해버린 것이겠죠. 안타까운 마음이 앞섭니다.


겨우겨우 조금씩 밀어 넣다시피 하여 처음 계획했던 10cc의 반 정도인 5cc 정도만 주사할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은 저도 손에 힘이 빠질 정도로 무리했던 터라 이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하고 경과를 보기로 했습니다.



잠시 그대로 엎드려 계시도록 설명하고 오더를 정리하고 있으니 환자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십니다.

아까는 그렇게 불편해하며 엎드리는 것도 오래 걸리시더니... 일어나시는 걸 보니 많이 편해지신 모양입니다.

통증이 많이 줄어서 10% 정도로 줄었다며 대만족을 표시하십니다.

이제야 의자에 앉아서 이것저것 물어보시네요. 처음엔 앉지 못하고 서서 진찰을 받으셨는데 말이죠.


일이 바빠서 바로 내일은 오지 못하신다 하여 2일 뒤에 뵙기로 하고 기분 좋게 인사드렸습니다.

아마 이 정도 통증이면 세 번에서 네 번은 오셔야 완전히 편하게 일상생활이 가능해지지 싶습니다.

허리와 어깨 등, 오래된 통증에 대해 검사를 충분히 받았음에도 딱히 구조적인 원인이 잡히지 않은 채

지속적인 통증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 통증을 전문적으로 치료하시는 통증의학과 선생님들께 진찰을 받아보시면

근육에서 발생하는 원인의 통증인 경우가 상당수에서 있습니다.


앉지도 못할 정도로 2개월간이나 고생하면서도 검사에서 이상이 없었다는 얘기에

지레 포기하고 두 번이나 응급실을 방문해서도 진찰을 거부한 채 진통제만 맞고 가셨던 아저씨처럼

통증을 방치하지 마시고 한 번 더 원인을 찾는데 협조해주세요.

해결 가능한 방법이 있을 겁니다.


아저씨께서 또 오시면 이후 상황을 기록으로 남겨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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