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신혼여행의 추억

[응급실이야기 130701]

몇 일 전, 의국 동기인 친구의 결혼식에서 친구의 부탁으로 사회를 보게 되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신혼여행을 출발하는 친구를 보고있자니 수련의 시절에 친구와 함께 겪었던 신혼여행과 관련된 나만의 특이한 경험이 생각났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겨울, 난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마치고 발리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수련의 시기에 결혼하느라 결혼식 포함 1주일간 휴가를 받아 4박 5일의 짧은 여행을 계획했다. 짧기도 짧았지만 추운 겨울에 따듯한 곳으로 놀러가 사랑하는 신부와 함께 추억을 만드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발리의 공항에 도착해 한국인 커플끼리 팀을 이뤄 세 커플이 함께 여행을 다니게 되었고,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한 인연을 얘기하며 웃고 떠들며 신나게 돌아다녔다.


그리고 짧은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양가 인사를 마치고, 응급실에서의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을 지나, 어느덧 여행을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났고 새로운 스케줄로 중환자실 주치의를 맡게 되었다. 


응급의학과 중환자실 주치의가 보는 환자는 주로 세 가지 진단명으로 응급실에서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교통사고나 낙상으로 전신을 다쳐서 흉부를 포함한 손상을 입은 다발성 외상환자의 경우, 약을 먹거나 목을 메는 등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여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해 입원하는 경우, 그리고 갑작스런 심장마비에 빠른 심폐소생술을 통해 심박동이 돌아와 저체온 치료를 위해 입원하는 경우이다.


중환자실 주치의로 보름여 시간이 지나 정신없는 중환자실 오더에 어느덧 적응이 되어갈 무렵, 응급실에서 입원시킬 환자가 있다며 새로운 환자를 인계받으라는 연락이 왔다.


응급실에서 치료를 맡았던 동기 친구의 인계 내용은 20대 중반 남성이 술을 마시다 갑자기 쓰러져 119에서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응급실에 도착했고 응급실에서만 40분, 현장에서부터는 한 시간에 가까운 심폐소생술을 하여 심박동이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보통 시작한지 30분이 지난 심폐소생술은 심장이 돌아오더라도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뇌사 가능성이 높아 보호자께 설명을 하고 의미 없는 심폐소생술을 중지하고 사망선언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워낙 젊은 사람이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왔으니 좀 더 심폐소생술을 해보자 하여 지속하다 심박동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심폐소생술 이후 찍은 두부 CT 결과는 예상대로 뇌부종이 상당히 심해보였다.


응급실에서 확인된 검사결과들을 가지고 중환자실 주치의로서 환자 가족들을 모두 불러 상황을 설명했고, 환자 아버지는 앞날 창창한 결혼한지도 얼마 되지 않은 아들이라며 눈시울을 붉히며 적극적인 치료를 부탁했다.

뇌손상을 줄이기 위해 환자의 체온을 34도로 낮추는 저체온 치료에 보호자의 동의를 받고나서 중환자실로 옮겨진 환자는 동공반응, 자가호흡 모두 없는 상태로 뇌부종 줄이는 약물치료와 항생제 치료를 시작했고, 혈압이 낮아 시작하지 못했던 저체온 치료는 다행히 강심제를 사용하면서 혈압이 올라 곧 시작할 수 있었다.


저체온 치료를 시작하고 다음날 아침, 환자를 진찰하던 중 동공반응이 약간 있어 희망을 가지고 치료를 지속하였지만, 저체온 치료 2일째가 되니 동공반응이 없이 다시 동공이 풀려버리고 말았다. 저체온 치료에도 불구하고 뇌부종이 악화되어 뇌압상승에 의한 증상일 가능성이 높은 상태... 재촬영한 두부 CT 결과도 같은 내용을 말해주고 있었다. 심한 뇌부종으로 지주막하 출혈같은 음영을 보이는 CT 소견... 뇌사로 가는 나쁜 예후 인자이다.


환자의 뇌간반응을 파악하기 위해 시행한 몇 가지 test 는 모두 반응이 없었고 뇌파검사는 완전한 뇌사는 아니지만 매우 약한 뇌파소견을 보이고 있었고 곧 뇌사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다. 예정된 5일간의 저체온 치료가 마무리 되었지만 환자 상태는 변함이 없었다. 사실 이렇게 되면 깨어나기는 어려운 상황, 의료진으로서는 보호자께 차선책을 얘기해야하는 힘든 순간이 왔다.


면회를 오신 환자 가족들께 조심스럽게 상황을 설명하고 환자분이 혹시 평소 장기기증에 대한 뜻을 표현한 적이 있는지 묻자 환자 아버지는 절대 그런 일은 없다며 내 손을 꼭 붙들고 아들 좀 살려달라며 눈물을 흘리시고 말았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아들의 평소 생활에 대해 한참 넋두리 하듯 쏟아내셨다.


얘기를 듣는 동안 나와 동갑인 나이에 이름도 비슷한데다 같은 시기에 결혼도 하고, 결혼 때문에 집에 손 벌리기 싫어해서 돈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는 얘기를 들으며 나와 비슷한 점이 참 많은 아들이었구나 하고 느꼈다.

그날 저녁, 환자 부인이 중환자실 간호사를 통해 주치의인 내가 신혼여행에서 만났던 분인 것 같다는 얘기를 전했다고 들었다. 나는 그제서야 한 달 전, 발리에서의 신혼여행에서 만났던 커플의 모습이 떠올랐고 부인 얼굴이 매치가 되면서 머리가 멍해왔다. 신혼여행에서의 인연이 머지않아 이렇게 주치의와 환자의 안타까운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차마 경과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부인을 만나 따로 인사할 용기를 내지 못한 나는 이후 중환자실 주치의를 마치고 응급실 당직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그동안 가족들의 눈물 속에 겨우겨우 생명을 이어가던 환자는 내 손을 떠난 뒤 1주일여 뒤,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신혼여행 하면 난 나와 비슷한 것이 참 많았던 그 환자가 생각난다.


130701 최석재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한 의사 "Happy Doctor" 이용 설명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