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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의 말기암 환자

15년 전 글정리 02

오늘은 응급실에서 자주 진료를 보지만 매번 결정 하나하나에 고민이 많아지는 말기 암환자의 응급실에서의 치료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평균수명이 증가하고 노인 인구가 폭증하는 현 상황에서 암환자는 급증하고 있고 치료기술의 발달로 여명기간도 늘어나 응급실에서의 암환자 치료건수도 날로 많아져 서울의 몇몇 종합병원 응급실은 마치 암환자의 대기 병상처럼 보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암환자들이 응급실을 찾고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여 중환자 치료를 받는다.


우리 병원 응급실은 그나마 다른 서울의 대학병원들에 비해서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병실, 중환자실로 빨리 입원하도록 각 과가 협조를 잘 해주고 있어 응급실 대기가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로 곤란한 경우가 찾아오게 되는데... 어제도 몇몇 말기암환자의 치료를 맡았다. 새벽에 갑자기 심해진 호흡곤란을 주소로 찾아온 60대의 여자환자...


의식은 있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숨쉬는게 힘에 겨워 헐떡대고 있는 환자의 뒤로 보호자들이 말기 담낭암 환자인데 상태가 괜찮다가 갑자기 호흡곤란을 호소했다며 들어왔다. 환자는 혈압과 의식은 유지되고 있었지만 호흡 속도와 혈색만 보더라도 일반 환자였으면 바로 기관삽관 시행에 대해 설명하고 집중치료실에 들어가 삽관부터 했어야 했을 상태였다.


하지만 보호자들이 말기암 환자라는 말을 해주었을 때 우리 의료진은 치료적인 노력과 함께 환자의 적극적인 치료를 받을지에 대한 의지와 그 결정에 대한 존중을 고민해야만 했다.


만약 환자가 암환자인지 모르고 응급실에 실려들어와 일단 삽관부터 해버렸는데 뒤에 들어온 보호자들이 적극적인 중환자실 치료 의지가 없고 환자가 추가 처치를 원하지 않는 상태였다라고 말한다면 그때가서 상태 안좋은 환자의 삽관을 뺄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환자는 바로 의식을 잃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폐 청진상 양쪽에 심한 수포음이 들렸고 특히 왼쪽이 심한 상태였다. 산소포화도 수치는 75% 동맥혈 검사에서도 겨우 80%를 밑도는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었다. 일단 보호자 및 환자의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해 같이 따라온 보호자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우리 병원을 다니고 계시지 않아 자료가 없는 상태라서 정확한 상태 파악을 하기 어렵지만 말기암 환자 상태라는 얘기를 들으셨으면 이정도 상태라면 결정을 하셔야 합니다. 평소에 중환자 치료나 인공호흡,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한적이 있나요?”


보호자들은 아들, 딸만 내원해 있었고 아직까지 상태가 좋아 그런 결정을 한적이 없다고 했다. 기관삽관을 하면 중환자실 치료를 받아야 하고 상태가 암 때문에 나뻐진 것이라면 여명기간 동안 인공호흡기를 달거나 못 깨어날 수도 있고 못 뺄수도 있다는 설명을 하자 보호자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잠시 전까지 상태가 나쁘지 않다가 자다 갑자기 호흡곤란을 호소했는데 이렇게 결정까지 얘기가 나오니 당황스러웠던 듯 하다.


보통 말기 암환자의 치료를 맡은 의사들은 이런 결정들에 대해 미리 마음의 준비들을 하도록 설명하고 그 결정을 존중해주고 있다.


하지만 오늘 온 환자의 보호자들에게는 이 문제가 생소한 문제였던 것 같다.


환자의 남편인 아버지가 오기까지 결정을 못하겠다고 하여 잠시 기다리지만 상태가 악화되며 기관삽관을 갑자기 진행할 수도 있다고 설명을 해놓고 환자 상태를 잘 보기 위해 집중 관찰 공간으로 배치 후 폐부종의 치료를 위해 이뇨제와 혈관확장제를 투여했다.


환자는 최근 몇 달 전 폐렴을 앓았었고 다리가 붓고 움직이며 숨찬 적도 있다고 해서 호흡곤란의 원인이 폐렴의 급격한 악화인지 심인성 또는 암과 관련된 폐부종인지 아니면 급격한 호흡곤란에서 꼭 고려해야할 질환인 폐동맥 색전증인지 감별되지 않는 상태였다. 더군다나 이동식 흉부 X-ray 촬영 결과도 왼쪽의 폐침윤과 동시에 기관지 주위의 부종도 함께 있는 상태라 감별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일단 산소 투여를 10L 까지 올리고 지켜보는 찰라 다른 보호자들이 도착하여 기관삽관을 진행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렇게 되면 삽관을 위해 수면유도제를 투여하는 순간 인사할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 삽관을 준비하면서 환자의 의식이 있을때 먼저 보호자들에게 잠깐씩 대화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 딸은 울면서 인사하지 않겠다고 곧 깨어나서 삽관 빼면 인사할 거라며 울고 있었고 다른 남자 가족들은 환자에게 힘을 내라며 손을 잡아주는 것으로 인사를 마쳤다.


기관삽관을 위해 수면유도제가 들어갔고 곧 삽관되어 인공호흡기를 달 수 있었다. 그 사이 나온 피 검사 결과에서는 약간의 염증 수치와 함께 폐 색전증에서 올라가는 수치가 매우 높게 확인되고 있었다.


암종은 색전증의 위험인자로 만약 색전증이라면 급히 혈전용해제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삽관하자마자 바로 호흡기내과 당직의를 호출했고 흉부 컴퓨터 단층촬영을 바로 시행하기로 했다. 검사를 준비하던 순간 환자의 혈압은 서서히 떨어지더니 120을 유지하던 수축기 혈압이 100이하로 떨어져버렸다. 맥박은 120, 전형적인 쇽 상황이다.


이런 상태로는 검사를 시행하는 그 몇 분동안 환자의 상태를 보장하기 힘들다. 설상가상으로 오랜 암투병으로 말초혈관이 모두 수축해 있어 굵은 바늘로 정맥을 잡기도 어려운 상황... 먼저 중심정맥부터 잡고 승압제를 사용해서 혈압부터 안정화시키기로 했다.


다행히 중심정맥과 승압제 사용, 혈관 확장제 중지 이후 혈압이 안정되었고 이후 촬영한 검사상 폐렴에 의한 심한 흉수가 확인되었고 폐색전은 저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일단 원인은 파악되어 항생제를 사용하면서 인공호흡기 치료하면서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했다. 내과에서 입원장이 나왔고 환자는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이지만 보호자의 감사 인사를 들으며 환자를 중환자실로 올릴 수 있었다.


이 환자의 경우는 다행히 폐렴이 원인으로 보여 항생제 치료를 시행하고 반응을 지켜봐야겠지만 암의 악화에 의한 호흡곤란으로 기관삽관을 했다면 고맙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또한 입원 경과 중 인공호흡기를 떼지 못하는 상황이 와도 진정으로 고마워할 수 있을까?


보통 말기 암환자라도, 평소에 적극적 치료를 거부하는 의사를 환자가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응급상황, 심장마비의 상황 등에서 보호자가 살려달라며 울고 매달리는 경우가 있다. 환자의 의지는 알 수 없고 보호자가 적극적 치료를 해달라면 시행해야하는 응급실의 상황... 무조건 일단 살려달라는 보호자의 말에 떠밀려 말기암환자의 심폐소생술을 시행해서 심장이 돌아오고 중환자실로 입원하게 되면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힌 보호자들이 그때서야 후회하며 적극적인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를 중환자실 치료과정에서 많이 봐 왔다. 가족이 숨을 거두면 뭐라도 하지 않으면 평생 마음의 짐을 될거란 생각. 다른 가족들의 의사를 몰라 뒤에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이런 문제들이 평소에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말기 암환자의 치료에 큰 걸림돌로 남는다.


우리 응급실 의료진들은 이런 얘기를 한다. 죽을 때가 되거나 죽을 병에 걸리면 DNR(소생거부서약)부터 챙길거라고...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중환자 치료에 있어 한가지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필요하다.


#말기암 #기관삽관 #심폐소생술 #폐렴 #호흡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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