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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는 세상이 보인다

15년 전 글정리 03

의사의 측면에서 보면 진료비가 비현실적이어서 병,의원 경영이 어렵지만 환자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높은 벽이 있는 곳이 병원이다. 더구나 어쩔 수 없이 갈수밖에 없는 응급실이다 보니 이곳에서 보는 모습이 바로 세상이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IMF가 한창이던 시절 전국민이 집에 있는 귀금속을 내놓아 모두가 IMF에 대처하던 시절, 한 할머니와 다른 할아버지가 응급실을 내원했던 사연이다. 이 시절의 응급실 환자는 상당 부분 참고 참다가 힘들어서 방문하는 경우가 많아 간단한 질환이 중증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할머니의 사연인즉 고열과 상복부 통증으로 몇 일을 버티다 며느리와 응급실을 방문하였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진료비가 걱정이 되어 의사에게 진료비에 대한 내용을 꼬치꼬치 물으며 최소한의 진료로 열과 통증만 없애 달란다. 최소한의 검사와 X-Ray로 약간의 황달을 포함한 총수담관 결석과 염증의 진단이 내려졌다. 입원이 필요하고 증상 완화 후 수술이 필요한데 며느리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입원을 권유하자 할머니는 의사에게 다시 부탁을 한다. 우리 아들이 요즘 어려운데 나까지 입원하고 수술하면 안되니 늙은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비싼 돈 들여가며 입원하냐고 아들이 오면 적당히 잘 얘기해서 집에서 치료받게 해달라고 사정을 한다. 잠시 후 허겁지겁 달려온 아들... 직장도 어렵고 집안도 어렵고 난처해하는 모습에 의사에게 모든 선처를 바라는 아들의 입장. 자의귀가서를 쓰고 일단 집에는 가셨다. 보내면서도 걱정은 많이 됐는데 나중에 다시 열과 통증이 심해져 어쩔 수 없이 재방문하여 수술을 받았다. 수술 결과가 좋아 다행히긴 하지만 의사나 환자나 보호자나 할머니의 아들걱정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 케이스였다.


다른 할아버지의 사연이다. 콜라 빛 소변과 등쪽에서 고환쪽으로 당기는 통증으로 내원하였다. 요로결석이다. 분만 다음으로 아프다는 통증이니 얼마나 심했겠나 싶어 응급으로 진통조절을 하며 처치했으나 수술이 필요하다던지 하는 당장 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통증에 대한 두려움에 입원을 강력히 원하신다. 아들은 의사에게 물어본다. 꼭 입원해야 하냐고. 역시 입원은 필요치 않은 상황이다. 의사는 통증은 가라앉았으니 집에 가시고 내일 비뇨기과 외래로 와서 쇄석술로 돌을 깨도 된다고 말한다.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왜 입원을 안시켜 주냐고 한다. 난처한 아들은 역시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의사는 다시 자세한 설명으로 이해를 시켜주었다. 나라의 경제가 어려우면 서민의 생활과 집안의 가정이 힘들고 환자가 있는 가정은 더욱 곤경에 빠지고... 응급환자가 내원하는 응급실 역시 사회상이 그대로 반영이 된다.


권위적인 가부장 시대를 살아온 할아버지의 모습, 이기적으로 보인다. 또한 자식에게는 무조건적인 모성본능을 보이는 할머니, 희생적으로 보인다. 이 사이에 끼어 있는 아들, 효도와 현실 사이에서 갈등은 이만저만 말이 아닐 것이다. 어려운 계층일수록 건강에 대한 대비가 허술하여 응급 질환이 많이 생겨 응급실을 많이 찾게 되어 있어 그 시대의 자화상이 응급실에서 나타난다.


10년이 지난 지금 응급실은 이런 장면이 현저히 줄었다. 경제가 좋아진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응급실에서는 세상이 보인다.


#응급실 #세상 #병원 #I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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