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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경화 환자의 마지막 가는 모습

15년 전 글정리 04

응급실에 내원하는 생체징후가 불안한 내과계 환자중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무서운 환자가 몇 있다면 그것은 심장내과의 심근경색과 소화기내과의 위식도정맥류출혈, 그리고 만성신부전 환자의 고칼륨혈증 등이 있을 것이다. 오늘은 간경화 환자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서 펜을 들었다. 


연말 분위기는 차분한 가운데 날씨도 차가워 새벽 응급실엔 환자가 많지 않았다. 새벽 3시... 토요일 밤임을 감안하면 조용한 편이던 그때... 오늘도 어김없이 2년차 선생과 인턴 한명을 쉬도록 시간을 주고 나와 1년차 조선생과 함께 응급실을 보고 있을 때였다. 


119를 통해 돌아온 환자는 한눈에도 안좋은 환자다 하는 느낌이 드는 그런 환자였다. 배는 복수가 심한데다 늘어난 피부 및 혈소판 저하로 인해 이곳저곳 멍까지 들어있고 얼굴, 팔은 마를대로 마른 모습... 암 병력이 있는지 물었지만 보호자로 함께 온 부인은 간경화만 있다고 했다. 급히 뒤져본 전자차트에도 간경화로 본원 소화기내과를 다니고 있는 환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오늘 응급실을 온 이유는 새벽 1시부터 발생한 토혈 및 혈변을 보고 놀라 119로 내원한 것이었다. 


접수도 되지 않았지만 급히 혈압 확인하고 중심정맥관을 준비하라고 하고 소화기내과 당직을 불러놓는게 낫겠다 판단한 나는 뒤에서 들리는 “혈압이 50이예요” 소리를 들으면서 내과 당직의에게 전화연락을 했다. 환자는 의식은 명료하게 있었지만 호흡도 힘들어하고 춥다고 벌벌 떨고... 혈압이 떨어지면 환자들은 춥단 얘기를 많이 한다.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나오는 호소일때가 많았다. 


보호자분께 중심정맥관 동의서를 받으면서 말했다. 오늘은 힘드실 수도 있겠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게 좋겠어요. 이미 그런 얘기는 많이 들어봤다는 듯 아주머니는 크게 놀라지도 많이 당황하지도 않는 눈치였다. 장기간 병원 생활을 한 분들의 보호자들의 모습이 보통 이렇지 하는 생각을 잠깐 하면서 급히 중심정맥관 삽입술을 시행했다.


“환자분 입고 있는 옷 지금 급하니까 가위로 자를게요. 여기 어깨에다가 굵은 관 하나 넣을꺼예요.” 환자는 계속 추워 추워만을 연발하고 있었고 나는 중심정맥을 잡아 라인 연결을 하고 혈장 증량제를 주면서 응급수혈을 준비하라고 간호사에게 지시했다.


중심정맥이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그 타이밍에 환자의 맥이 갑자기 느려지기 시작했다. 응급실에 들어온지 이제 겨우 20분이 지났을 뿐인데 시간이 없어도 너무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CPR!!” 인턴을 불러 흉부압박을 시키고 난 환자 머리위로 올라가 기관삽관을 시행했다. 입안에는 목부터 올라오는 피가 가득차 있는 상태... 겨우 기관삽관을 하고 맥을 확인했지만 환자의 심장은 몇 초간 혼자 뛰는 것 같더니 또 다시 늘어져 버려 더 이상 반응이 없었다. 


도착한 내과 당직의에게 보호자분께 설명을 하도록 하고 난 인턴선생님과 번갈아가며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결국 30분간의 소생술에도 반응이 없어 새벽 4시 환자가 온지 50분 겨우 넘었을까? 사망 선고를 해야만 했다. 그토록 의연하던 보호자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좀 아까까지 괜찮더니 왜 이렇게 급하게 가요. 얘기할 수 있을 때 조금만 더 얘기를 할껄.. 이게 뭐야 이게 뭐야...”


5년전 친척도 많지 않아 가깝게 지내던 처 고모부가 대장암 수술 후 7년만에 간암으로 재발돼 암세포가 퍼져 복수 등 간경화 증세에 의한 정맥류로 어렵게 투병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하도 고생을 해서인지 문병갔을 때 체념한 듯 “나 먼저 갈테니까 잘 살다 나중에 하늘에서 만나자” 하시던 모습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처 고모부는 비교적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경화 환자의 마지막 가는 모습은 너무 슬펐다. 남은 가족들의 모습도 너무 슬펐다.


#간경화 #간암 #식도정맥류출혈 #토혈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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