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많이 힘드시죠?

[응급실이야기] 응급실에 아는 의사가 생겼다

우리는 각자 맡은 자리에서 사회적인 역할을 부여받고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회사에서 일하며 경제를 움직이는 하나의 객체로 역할을 하고, 어떤 이는 국가를 대신해 시민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공무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겠지요. 그중에서는 현장에서 크게 다친 환자를 직접 보고 수습해야 하는 119 구급대원과 같은 분들도 있습니다.
 
언젠가 구급대원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얘기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비슷한 일을 하는 입장이라는 동질감에 어떤 점이 가장 힘드신가 여쭈었는데 그 답은 제 예상과는 많이 달라 놀랐습니다. 그분의 답은 동료의 죽음이었습니다.




구급대원으로 활동하다 보면 교통사고 현장이나 낙상에 의한 자살사고 현장에서 시체를 수습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심한 경우는 여기서 떨어져 있는 팔을, 저기서 흩어져 부서져 있는 다리를 조각조각 모아 맞춰야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험한 장면을 본 날이면 한 일주일간 밥도 안 넘어가고 많이 괴롭다고 하네요. 안 그렇겠어요? 상상하기조차 힘듭니다.
 
그런 기억이 누적되다 보면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구급대원의 자살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네요. 뒤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겁니다. 동료로서 그의 죽음을, 그의 괴로움을 미리 알아채지 못하고 보내버렸다는 죄책감에 더 힘든 것이겠죠. 구급대원이라는 직업에서 오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일 겁니다.




응급의학과 의사도 직업에서 오는 말 못 할 고통이 있습니다. 아마 동료들 각자 그런 기억들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구태여 따로 말하지 않을 뿐이겠지요.
 
몇 년 전, 주방에서 발생한 불꽃이 집안에 퍼지면서 화마가 누나와 남동생을 집어삼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현장 또한 워낙 급한 상황이라 응급실로 미리 연락 줄 새도 없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상황이었습니다. 미처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응급실 의료진들이 달려들어 두 어린아이의 가슴을 세차게 눌러가며 심폐소생술을 했던 기억이 뚜렷합니다. 그 날 저는, 미약하게나마 두 아이의 심장을 겨우 살려내 떨어지는 혈압을 붙잡아가며 급히 대학병원으로 이송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곳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두 천사는 하늘나라로 갔었지요.
 
그 소식을 접하면서 집안에서 사용하는 가스레인지 불꽃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저희 장모님이 식당에서 주방 일을 오래 하셨는데, 그렇다 보니 가스 중간밸브를 잠그지 않고 사용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으십니다. 헌데 그 잠기지 않은 중간밸브가 제 눈에는 어찌나 위험하고 불안하게 느껴지던 지요. 한두 번 직접 잠그다가 나중에는 장모님께 또 가스밸브가 잠기지 않았다며 잔소리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속사정을 아실 리 없는 장모님께는 과한 참견과 잔소리로 느껴지셨을 테지요.





아이를 돌보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아기 키우셨던 분들은 아실 거예요, 영아 때 가장 위험한 순간이 언젠지. 응급실에서도 간혹 안타까운 상황을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보지 못하는 사이 뒤집기를 하고 나서 기도가 막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는 백일 전후의 아기들 말이죠.
 
내 몸 전부를 바쳐 낳았고 밤잠 못 자 가면서 키워냈던 배냇 웃음 가득한 사랑스러운 아기가 있습니다. 아기가 엎드린 채 울지 않아 이상하다 싶은 순간입니다. 아이를 뒤집어보니 혈색 없는 시퍼런 얼굴을 하고 있고요. 그 상황에서 응급실에 함께 온 부모의 슬픔과 자책이 가득한 울음소리는 오래도록 기억에서 지워지질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한창 뒤집기를 하는 내 아이를 볼 때에도 안 좋은 생각들이 자꾸 떠오릅니다. 혹시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으로 뒤집기에 성공한 아이를 되돌려 놓습니다. 뒤집은 채로 잠든 모습을 발견할 때엔 가슴이 덜컥 내려앉기도 합니다. 과한 상상이라며 마음을 달래려 해도 그게 쉽지 않습니다.





어느덧 3년이 지났네요. 우리 사회는 못다 핀 300여 생명이 바닷속에서 고통받으며 사그라지는 상황을 목격했습니다. 참혹한 현장을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면서 그 심리적인 충격을 함께 겪었습니다. 이후로도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정부를 보며 분노도 많이 하고 눈물도 많이 지었지요.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자꾸 우울해집니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적인 역할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자기도 모르게 어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문제를 겪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서로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을까요? 그냥 시간만이 답인가요? 그래도 "많이 힘드시죠?" 한 마디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226607
응급실이야기와 응급실 사용 설명서가 모여 한 권의 책으로 태어났습니다.
책이 나오기까지 사랑과 배려로 지켜봐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전 10화 "응급실, 가야 하나요? 어떤 응급실로 가야 하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