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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석 Jul 11. 2016

계속 수영해 나가는 것

<도리를 찾아서> 앤드류 스탠튼, 2016

적어도 나는 종종 길을 잃는다. 길을 잃었다는 기분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아주 좋지 않은 기분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는. 자연의 이상한 규칙에 의해 나쁜 것들은 항상 중독성이 강하다. 일상에서의 반복적인 표류의 경험은 그 감각이 아이러니하게도 강렬해서 진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 경험 속에서의 '나'는 어느새 내가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나'가 되어 있기도 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도리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베이비 도리가 말하듯이 도리는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이 장애가 도리의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서 도리는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도리도 그렇게 믿는다. 자기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또 잊어버릴 것이라고. 영화 도리를 찾아서 속 도리의 여행은 도리가 잊어버렸던 엄마, 아빠를 기억해내면서 시작한다.


도리의 여정은 예상했던 것만큼 길을 잃음의 연속이다. 여정 자체의 속에서 마주하는 어려움도 있지만 많은 경우 도리의 '상태'로 인하여 실마리가 보이던 길도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리기 일수이다. 도리와 같은 상태를 가지고 있지 않은 말린과 우리는 그런 도리를 보며 한편으론 답답함을, 한편으론 연민을 느낀다. 우리가 보기에 도리는 절대 그녀가 열망하는 것들을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잊어버리고 방황하는 도리, 그것이 말린과 내가 기억하는 도리였다.


베이비 도리 시절 자신의 잘못으로 부모님과 떨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낸 도리는 다시 한 번 자신을 책망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도리, 계속 잊어버리는 도리, 결국 엄마, 아빠도 잊어버리고 만 도리. 이것이 도리가 기억하는 도리였다.


도리의 부모님과 니모가 기억하는 도리는 달랐다. 도리와 떨어지게 된 도리의 부모님은 매우 슬펐고 도리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이 기억했던 것은 도리가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아니라 도리가 그녀 스스로의 방식으로 할 수 있었던 것들이었다. 그 기억 속에서의 믿음으로 그들은 오랫동안 도리를 기다릴 수 있었고, 결국 그 기억을 통해서 도리는 부모님을 찾게 된다.


도리와 떨어지게 된 후 말린과 니모는 도리를 찾아 나선다. 그들이 난관에 봉착하고 말린이 거의 포기 상태에 이르렀을 때 니모는(말린과 내 입장에서는 너무도 뜬금없게) 도리를 떠올린다. 니모가 기억하는 도리는 항상 잊어버리기만 하는 친구가 아니다. 니모의 기억 속의 도리는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도리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수영해 나가는 친구이다. ('니모를 찾아서'에서 결국 니모를 찾게 된 것도 도리 덕분 아니었나!) '도리라면 어떻게 할까?'를 통해서 말린과 니모는 결국 난관을 빠져나오게 된다.


모든 여정이 끝나고 모두가 모두를 찾고 일상으로 돌아온 영화 마지막까지도 말린은 도리를 걱정한다. 삶 속에서 말린은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던 기억이 너무 많았던 것을 나는 알기에 그의 주변 것들에 대한 그의 걱정 어린 태도는 너무 이해가 되면서도 짠했다. 다시 한 번 도리를 잃어버린 줄 알고 애타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던 말린이 발견한 것은 희미하지만 빛나는 미소를 머금고 바다의 큰 공간을 응시하고 있는 도리이다. 그 모습을 보고 말린도 나도 더는 도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을 느꼈다. 도리의 그 모습은 항상 가지고 있었지만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도리 자신만의 수영법을 기억해낸 물고기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도리의 그 모습을 보면서 나의 삶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고, 남들에 대해서도 기억해야 할 것들은 좀 더 그런 것 들이 아닐까. 아무리 조그맣게 보이는 것들이라도 스스로 해내었던 기억들. 여기저기 부딫이고 상처받고 좌절한 기억들은 조금 더 가볍게 잊어버려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기억들 속에서 자신만의 헤엄으로 수영해 나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p.s니모가 도리에게 그러했든 남들에게 좀 더 '니모'가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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