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첫 이야기.
2008년에 일을 시작하고 나는 오랫동안 내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놓지 못했던 것 같다. 흔히 말하는 가면 증후군에 사로 잡혔는데, 이직을 해도, 각종 상을 받거나, 승진을 해도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참 웃기는 일이다. 물론 주변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받고 나 또한 도움을 줬지만, 내 인생은 나 아니면 대신 살아주는 이가 없기 때문. 나의 가면 증후군은 내 발목을 잡는 동시에, 나 스스로를 테스트하며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양날의 검이 되어주었다. 지금부터 내가 단 한 번도 누구에게 세세하게 말하지 못한 내 좌절과 인내, 또 나아감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외신기자 8, 9년 차 때 즈음 겉으로 승승장구하던 것처럼 보였던 나는 회사나 일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한창 북한이 김정은 체제 하 핵전쟁에 대한 협박을 매일 일삼아하고 있던 시절인데, 나는 이 소식을 누구보다 재빨리 전달해야 했던 외국 통신사 기자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당시 경력도 나름 쌓여 업계에서 인정을 받았으나, 내가 느끼기엔 회사에서는 나는 단지 소모품이었으며,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기분이 자주 들었다.
매일 누가 바늘로 한 번씩 살짝 찌르고 간다고 생각해보자. 죽을 정도로 아프진 않지만 이게 반복되면 당연히 피하고 싶고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오늘은 언제 찔릴까' 두려워하며. 회사에서 느꼈던 스트레스가 이와 같았다. 겉으로는 대인관계도 좋고, 긍정적이고, 굳세게 일을 했던 것으로 보였다고 지인들과 동료들이 말해주었다. 하지만 집에서의 내 모습은 행복하지 않았다.
불면증으로 수년째 고생 중이었고, 한밤 중에 혹시나 뉴스 때문에 일어나서 일을 해야 할 상황에 대비해 잠을 자도 깊이 들지 못했다. 시댁과 관련된 상처도 꾸준히 받고 있었는데, 꾹 꾹 내 마음속 깊은 항아리에 가둬두었다. 술로 이 모든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해봤지만 술이 가져다준 스트레스 해소는 언제나 일시적이었다. 사실, 스트레스가 깊어질수록 술 먹고 필름 끊기는 현상이 심해져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불규칙한 생활패턴으로 인해 건강도 자연스레 나빠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길어지자 주변 선배들이나 멘토들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같은 외신계에서 삼성전자로 몇 년 전 이직했던 선배와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행복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털어놓자 선배는 며칠 후 내게 삼성전자로 이직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전까지는 이직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해보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회사를 통해 해외로 나갈지, 혹 승진을 할지에 대한 생각 위주로 고민했다. 대학 때부터 외신기자가 꿈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내가 기자여서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내려놓기 쉽지 않은 직업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리고 있던 만큼 나는 불행하지 않았던가. 처음에 일을 시작했을 때만큼 즐겁지 않았고 보람되는 순간도 찰나였다.
고심 끝에 선배의 부서 임원들도 만나고, 여러 번의 면담과 협상 끝에 이직을 결심했다. 그리고 나는 10년 간의 외신기자 생활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