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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의 두 얼굴

by 인문학도 최수민

반복이라는 상당히 포괄적인 개념을 다루려고 합니다. 반복 자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사람들은 많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복은 우리 세계를 설명하는 데 큰 부분을 차지하는 개념일 것입니다. 반복은 크게 현상과 행동하고 연결됩니다. 현상은 반복되는 것이고, 행동은 반복하는 것이죠. 수많은 현상이 반복되고 사람들은 수많은 행동을 반복합니다. 저도 반복해서 글을 쓰고 있죠. 반복의 개념을 먼저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반복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보겠습니다.


반복을 반복이게끔 하는 것(본질)은 동일성주목입니다. 우선 반복에는 '똑같은 대상들'이 있어야 합니다. 반복의 대상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그것은 더 이상 반복이 아닙니다. 이거는 뭐 상식적인 얘기입니다. 하지만 반복은 '인식하는 사람의 주목' 또한 받아야 합니다. 인식하는 사람이 주목하지 않는 대상들은 그저 이름 없이 지나치는 것들일 뿐입니다. 우리가 주목함으로써 똑같은 대상들을 찾아낸 것입니다. 주목되지 않으면 반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식하는 사람이 없으면 반복되는 것도 없습니다. 반복이 인식에 의존하는 것이죠. 따라서 반복이란 한마디로 '주목된 동일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차들이 눈앞을 계속해서 지나간다고 합시다. '차가 지나간다'라는 동일한 현상이 있고, 인식하는 사람이 그 현상들에 주목했습니다. 이때 차들이 반복해서 지나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흰색 차들이 계속 지나간다고 합시다. 인식하는 사람이 더 이상 '차가 지나간다'라는 현상들에 주목하지 않고 '흰색이 나타난다'라는 현상들에 주목합니다. 그제야 '흰색이 나타난다'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차가 지나간다'는 더 이상 반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이름 없이 지나치는 개별 현상들일 뿐입니다. 직접 인식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반복은 두 속성, '흔함'과 '중요함'이라는 얼굴로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흔함은 반복의 동일성에서 나옵니다. 대상들이 바뀌지 않고 계속 똑같으면 반복될수록 흔해집니다. 그런 점에서 반복은 지루합니다. 반복되는 일상은 지루하죠. 피자 상자 같은 거 계속 접는 것도 지루할 것입니다. 자신의 접는 실력이 좋아지는 데 주목하지 않는다면요. 또한 반복은 정체됨을 뜻합니다. 어떤 주장을 할 때 기존에 있는 것을 반복한다면 그 주장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흔한 것이 됩니다. 가치가 떨어집니다. 현대 사람들이 "노예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라고만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 사회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정체될 것입니다.


중요함은 반복의 주목됨과 관련됩니다. 우리는 대상이 어떠한 이유로 중요하기 때문에 주목합니다. 또는 주목함으로써 대상을 중요하게 여기기도 하죠. 반복한다는 것은 강조를 뜻합니다. 시인이 강조하고 싶은 뜻이 있을 때 쓰는 방법 중 하나가 반복이죠. 읽는 이가 주목함으로써, 즉 반복으로 인식함으로써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반복은 끈기를 나타냅니다. 끈기 있는 사람은 흔해서 지루한 일이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계속합니다. 배드민턴에서 서브 연습하는 건 경기에 비해 지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브 연습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계속하고, 계속하니까 주목하게 되어 반복으로 인식합니다. 이것이 곧 끈기입니다.


반복이란 주목된 동일성으로서 흔함과 중요함이라는 두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흔함은 반복의 부정적인 면, 중요함은 반복의 긍정적인 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정도로 파악했지만 동일성이 긍정적인 면을, 주목됨이 부정적인 면을 낳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제 글을 거름으로 삼아 상상을 발휘해서 여러분이 직접 반복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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