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철학, 너 누군데

by 인문학도 최수민

제 전공은 철학입니다. 저학년이라 아직 철학과 수업을 많이 들어보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철학 비전공자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 철학이 어떤 것일까는 많이 고민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생활 수준이 높아져서 그런지 점점 철학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철학 관련 책들도 많이 팔리고 유튜브 같은 데서도 철학 관련 콘텐츠들이 자주 보입니다. 그에 비해 철학에 대한 제대로 된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어디에 속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는 거 모르는 거 끌어모아 제가 세운 관점을 전하고자 합니다.


철학은 이성을 극단으로 발휘했을 때 마주하는 문제들에 대한 모델을 상상하는 학문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이성입니다. 이성은 한마디로 묻고 답하는 능력입니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죠. '왜 스마트폰이 책상에 없지? 있을 만한 곳을 추려보자. 오늘 집 안에서 내가 간 곳은 화장실밖에 없으니까 화장실에 있겠다!' 이성을 발휘한 예시입니다. 이성을 극단으로 발휘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따지고 든다는 것입니다. 어떤 물음에 답을 해도 또 그 답에 대해 묻는 것이죠. 정말 그것이 답인지, 부실한 부분은 없는지요. 그 끝자락에 마주하는 문제들이 바로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들입니다. '무엇이 옳냐', '무엇이 존재하느냐', '우리는 무엇을 아느냐'와 같은 것이죠.


철학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여러 모델을 상상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논의되었던 것 중 하나가 상대주의입니다. 상대주의는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할 때 '모든 것'에 저 주장도 포함됩니다. 따라서 저 주장도 상대적인 것이 되므로 항상 옳은 것은 아니게 됩니다. 이는 절대적인 것이 적어도 하나 존재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이 상상했던 진리의 모델이 바로 이러한 객관주의입니다. 제가 모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사실 어떤 주장, 이론, 가설 등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모델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구체적으로 그려져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생각이 구체적인 모델로 그려져야 공유되기도 쉽고 생각을 더욱 심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두 가지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철학은 자투리를 처리하는 학문입니다. 학문에는 철학 말고도 여러 다양한 학문이 있죠. 학문이란 게 겉으로는 세련돼 보여도 그리 깔끔하지만은 않습니다. 귀찮고 짜증 나는 문제들은 대충 덮어놓거나 뭉뚱그려 놓습니다. 아까 말했던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들이죠. 그 자투리 같은 부분을 철학자들이 치우겠다고 나섭니다. 이렇게 보니 참 취향 독특하네요. 둘째, 철학은 학문의 정비공입니다. 다른 학문들이 깔고 있는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들에 대한 여러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다른 학문들이 잘 작동하도록 돕습니다. 심리학이 깔고 있는 문제 중 하나가 '마음을 마음이게끔 하는 것이 무엇인가'일 것입니다. 심리철학이 이를 대신 맡아 심리학의 토대를 지킵니다. 철학적인 사고를 훈련하는 것 자체가 다른 학문이 잘 작동하도록 도울 수도 있겠네요.


철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여러 오해들도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첫째, 철학은 감성적이라는 생각입니다. 철학을 인생이라는 주제와 과하게 연결해서 생기는 오해인 것 같습니다. 일단 철학은 이성을 극단으로 발휘했을 때 마주하는 문제를 탐구합니다. 또한 그 해결책으로 모델을 만들 때도 이성을 발휘합니다. 논리를 동원해서 체계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무엇보다 학문이라는 것 자체가 이성적인 것이죠. 인생은 철학의 여러 주제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인생을 탐구하더라도 감성은 쫙 빼고 이성적으로 탐구하는 것입니다. 둘째, 철학은 주관적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때 주관적이라고 하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를 포함합니다. 즉 철학은 자연과학처럼 객관적인 지식을 쌓을 수 없다는 뜻이죠. 이는 자연과학 중심적인 생각입니다. 철학의 목표는 객관적인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닙니다.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목표는 끊임없이 새로운 모델을 만들면서 인간의 상상력이 어디까지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철학은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요? 철학 공부는 크게 철학사 공부철학함으로 나뉩니다. 철학사 공부는 철학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고 과거의 철학자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공부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지금 하는 생각을 이미 앞 시대 철학자들이 했을 수도 있고, 또 그들이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도 알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철학함은 스스로 철학적인 주제들에 관해 비판적으로 생각해 보고, 모델도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철학사도 사실 과거 사람들의 철학함인 것이죠. 철학함은 풀리지 않는 철학적 문제들에 대해 독창적인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사실 저는 철학함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아마 철학함보다 철학사 공부가 더 구체적이라 철학사 공부에 힘을 쏟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철학함이야말로 실질적으로 우리의 사고력을 키우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활동입니다. 철학함을 통해 자신의 관점을 만들어가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철학은 이성을 극단으로 발휘했을 때 마주하는 문제들을 탐구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모델을 상상합니다. 모델을 확장하기 위해 이성을 발휘합니다. 또 이성을 발휘해 이를 비판합니다. 학문으로서의 철학은 끊임없이 새로운 모델을 상상해야 합니다. 철학함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철학을 공부하려는 것이지 철학자를 공부하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철학자를 공부함으로써 철학함에 도움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요. 우리나라의 학문적인 철학과 대중적인 철학이 모두 나날이 발전하길 기대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글쓰기라는 말의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