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제 블로그 이름에 '이야기'가 들어갑니다.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표현 형식입니다. 대표적인 이야기의 종류가 소설이죠. 흔히 소설의 구성 요소로 주제, 구성, 문체를 말합니다. 저는 소설보다 더 포괄적인 것으로서 이야기 또는 서사의 구성 요소를 말하고 싶습니다. 바로 공유 단서, 심상, 탈세계감입니다.
공유 단서는 겉으로 전달되는 이야기의 내용입니다. 흔히 글자, 말 등의 언어나 그림을 활용해서 공유 단서를 주고받습니다. 예를 들어 '흥부가 주걱으로 뺨을 맞았다'라는 공유 단서가 있다고 합시다. 언어로 표현되기 전의 그 어떤 추상적인 것, 즉 흥부가 주걱으로 뺨을 맞았다는 사실이 바로 내용으로서 공유 단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언어로 표현되느냐는 내용과 별개니까요. 이 공유 단서를 전달하기 위해 한글과 같은 글자 또는 한국어 같은 말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공유 단서 자체로는 이야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야기를 접하는 사람들이 느끼고 만들어내는 무언가까지도 이야기의 요소로 포함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야기라는 것의 실체와 더 가까울 것입니다.
심상은 이야기를 접하는 사람이 공유 단서를 해석한 결과입니다. 공유 단서가 심상의 재료인 것이죠. 같은 공유 단서라도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심상은 천차만별입니다. 이야기는 심상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심상이라는 이 주관적인 요소가 이야기를 구성하는 한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는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유 단서만으로는 이야기의 생생함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다른 것을 떠올린다면 그게 어떻게 같은 이야기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를 공유 단서가 보장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유 단서는 객관적인 것이니까요.
탈세계감은 이야기를 접하는 사람이 느끼는 것으로, 자신과 세계가 분리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공유 단서를 해석하는 순간만은 이야기를 접하는 사람이 하나의 가상 세계와 완전히 분리된 관찰자가 됩니다. 마치 투명 인간이 되어 세상을 내려다보는 느낌이죠. 저는 탈세계감이 이야기를 이야기이게끔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봅니다. 이 탈세계감 때문에 우리는 이야기를 즐깁니다. 어떤 세계에 속해있지는 않지만 투명 인간처럼 남들의 행동, 심지어 심리까지 엿볼 수 있습니다. 자신과 관련된 게 없으니 근심도 사라집니다. 어쩌면 신이 되는 느낌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이 세 가지로 구성된 것은 모두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유 단서를 가지고 있고, 심상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탈세계감을 주는 것 말이죠. 주관적인 요소가 있어서 조심스럽긴 합니다. 이야기를 접하는 사람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고 싶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없으면 이야기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밖에 온전히 객관적인 이야기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죠. 소중한 이야기들 잘 간직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