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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플로거 Dec 27. 2021

사라지지 말아요, 제발

플로깅 열아홉째날 

눈이 개고서 계속 날이 차갑다. 시베리아서 내려온 찬 공기가 머물고 있어서라는데, 찾아보니 얼추 블라디보스토크와 비슷한 기온이다. 기상뉴스를 보니 올 겨울 내내 며칠은 매우 춥고 며칠은 매우 따뜻한 그런 날씨가 반복될 거라 한다. 날이 차가워서 그런지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쓰레기가 확실히 덜하다. 배출일이 아닌데 버려진 플라스틱 포장재가 있고 주변에 캔이니 음식포장재니 몇 개 안 되지만 흩어져 있다. 얼른 얼른 줍고 분류해서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춥다. 인간이 없으면 쓰레기가 덜 나온다. ㅎㅎ




만약 사람, 인류라는 종이 사라진다면 지구는 어찌될까. 그런 의문을 풀어낸 과학저널리스트가 있다. 앨런 와이즈먼이 2007년에 낸 <인간없는 세상>이란 책. 최근에 개정판도 나온 것 같은데 나는 2007년판 표지가 메세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더 마음에 든다. 인류가 멸종된다는 가정하에 미래를 시뮬레이션 해보는 내용인데, 두꺼운 분량이다. 나름대로 거칠게 요약하자면, "지금처럼 인류가 자연과 균형을 잡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인간 없는 세상은 거대한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는 내용이다. 물론 저자는 서문에서 반대로 문장을 썼다. "인간없는 세상이 인간의 부재를 안타까워할 수도 있을 거"라 부드럽게 마무리 했지만 나는 정반대로 인간이 이렇게 자연을 계속 착취한다면 멸종된다는 경고로 읽었다. 폐가가 된 시골집에 온갖 잡초들이 강력하고도 찬란한 생명력으로 집을 온통 뒤덮고 있을 때 이 책 표지가 생각이 난다. 

앨런 와이즈먼 저, 이한중역, 인간없는 세상, 2007년, 랜덤하우스코리아 뒷표지

나의 어릴 적 아직 냉전 시절, 핵전쟁이 벌어지고 핵겨울이 오면 결국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뜬 소문이라거나 요즘과 같은 가짜 뉴스 그런 류가 아니다. 핵개발에 열을 올리며 경쟁하면서 동서가 대립하는 양상에 많은 이들이 실제 있을 법한 일로 여겼다. (뭐 지금도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은 핵확산금지조약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어엿한 핵무기보유국이고, 그밖에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도 실제로 핵무기를 갖고 있을 것이라 추정하지만) 핵겨울에 대비해서 지하 벙커를 만들거나 벙커를 만들고 사는 게 줄거리인 SF만화도 있었다. 핵겨울은 핵이 터져 거대한 (방사능) 먼지가 형성되어 대기권을 막아 태양에너지가 도달하지 못해 지상에서 겨울이 된다는 것.


그리고 과거 공룡뿐만 아닌 매머드급 종들이 차례로 멸종했다는 점을 봐도 인류의 멸종을 상상해볼 수도 있겠지 싶다. 매머드급 종들이 사피엔스, 즉 현생 인류의 조상 출현 후 차례로 멸종하여 종의 다양성이 줄었다. 올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알게 됐다. (<사피엔스>책 1권이 만화 그래픽히스토리로 나왔는데 하라리가 직접 내용을 다듬어서 그런지 원서 내용에 충실한 만화이다. 2,3권도 계속 만화로도 나왔다고 해서 기대 ) <사피엔스>를 읽으며 내게 새로운 발견은 왜 육상에 대형포유류동물이 없는지 전부터 가진 의문이 풀렸다는 것이다. 심해 바다 등에 해상포유류동물이 있는데 왜 육상에 대형포유류가 없지하고 궁금했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이주하고 늘면서 불과 1000-2000년 사이에 사냥 등으로 대형포유류가 사라지게 됐다고 한다


2021년 가을날, 골목길 코스모스를 추억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에게 영향을 준 분들이 차례로 돌아가시는 일이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반드시 아프고 누구나 반드시 죽지만, 또 이 진실을 하루에 한 번씩 꼭 기억하자고 다짐하며 살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프다. 사라진다는 게, 더 이상 이야기도 나눌 수 없고 소식도 들을 수 없다는 게. 


얼마 전 소중한 존재를 잃고 슬퍼하는 친구에게 "가슴 속에 살아 있다면 기억한다면 계속 살아있는 거니까, 언젠가 다시 만날 거니까"라고 애써 조심스럽게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지만, 실은 나도 그런 사실을 믿지 않고 있다. '웃기지 마, 그냥 사라져 버린 것이잖아' 하고 하늘 향해 가끔 되내인다.  보고 싶을 때가 있는데 보지 못하고 꿈에서 만나기만 바라는 날이 있다는 게 가슴 한 구석이 저리다. 살아 있었으면 이럴 땐 이런 말을 해줬겠지, 이런 일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등등 상상도 해보고, 뭔가 생전에 내가 섭섭하게 한 게 없었나 후회도 자책도 된다. 시간이 흐르고 기억이 흐릿흐릿 조금씩 바래는 게 싫다. '사라지지 말아요 제발' 하고 싶을 때, 개체로서 유한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던 때, 거시통사로 종으로서의 역사, 종으로서의 유한성 등등을 공부하는 게 도움이 됐다. 아직도 여전히 스스로 전혀 예상치 못한 때에 갑작스레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 불현듯 들곤 하는데 그나마 조금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오늘의 정리 

춥고 컨디션이 좀 좋지 않아서 오늘 플로깅 끝! 정말 간단히 하고서 돌아서던 참에, 동네 냥이가 불쑥 다가오더니 아는 척을 한다.(전에 올린 플로깅 사진에서 눈길을 걷던 냥이) 전에 이 길냥이가 태어나서 얼마 안 됐을 적에 캣맘 분께서 밥 줄 때 지나가다가 본 적이 있는데 붙임성이 좋다. 지난 가을에는 골목에서 나를 한 번 깡총깡총 따라온 적이 한 번 있다. 오 귀엽고 반갑다. 동물과 교감능력 제로인 나를 알아봐주는 게 참 신기하고 고맙다. 그런데 추워서 그런지 가을보다 많이 야위었다. 안쓰럽다. 아무쪼록 무탈히 이번 겨울을 나길 바란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인데, 2차까지 백신접종을 했는데 코로나 확진자가 된 분이 나왔다. 잘 넘기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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