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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플로거 Jan 03. 2022

치우지 못한 쓰레기

플로깅 스무번째 날 

플로깅 스무번째 날. 크리스마스가 지나 플로깅에 나갔다. 아마도 이브 날(금요일) 저녁에 먹었을 것으로 보이는 케잌 껍데기가 여기저기 버려져 있다. 쓰레기를 수거해가지 않는 토요일, 일요일에 케잌 포장껍데기만 쓰레기 수거터에 많이들 내놓았다. 반경 500미터 내에서 케잌 포장껍데기를 대여섯개 정도 발견했다. 배출일을 제대로 지키면 깨끗하고 좋을텐데. 집안에 놓인 케잌 쓰레기가 아무리 싫더라도 딱 이틀만 참고서 월요일에 내놓으면 될텐데. 이제 성탄절에 케잌 사서 먹는 문화가 정착한 것인가 싶다.


곳곳에 눈에 띄는 케잌 포장껍데기를 치우려고 보니까 그 중 몇 개는 크림과 빵이 케잌 포장 바닥에 남아 있다. 크림을 닦거나 따로 음식물로 버리지 않고 던져놓다시피 했다. 장갑에 크림이 묻을 것 같아 맨손으로 하자니 날이 춥다. 장갑 위에 비닐장갑을 끼고 치울 수도 있겠는데, 치워야지 하는 마음이 도통 들지 않아서 크림이 남아 있는 케잌 포장껍데기는 관두었다. 미소를 띈 채 플로깅 하기 위해, 또 다음 날 일찍 지역에 갈 일도 있어서,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기로 한다.   


플로깅을 기분 좋게 수행하려면 약간 속도를 내서 쓰레기를 줍줍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배출법이나 배출일을 지키지 않고 내놓은 쓰레기 앞에서 번번히 정체된다. 기분 좋게 즉, 약간의 무아지경 상태가 되어 줍줍에 몰입할 수가 없다. 




이런 저런 상념을 뒤로 한 채, 아침 일찍 고속버스를 타고 출장 가는 길. 차창 밖 겨울 풍경이 멋지다. 인터체인지에서 버스가 서서히 회전할 때, 앙상한 전나무 숲을 보고 얼른 한 컷. 전나무 맞으려나? 새봄을 맞이하면 나무, 숲 공부를 해봐야겠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플로깅Plogging 정의를 찾아보았다. 나*위키에서는 "플로깅은 환경문제에 대한 기적의 해답은 아니다"라고 써 놓았는데, 글쎄... 플로깅 하는 사람 중에 이상적인 기적을 바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까지 20일간 플로깅을 해본 나의 체감으로 플로깅을 정의하자면, "주로 내 몸을 움직이면서 조금이나마 주변 환경을 지속가능하게 만들고자 하는 시도"라 하겠다.  함부로 버려진 쓰레기를 한 두개라도 줍고나면 운동도 되고 마음 한켠 뿌듯하긴 하다. 


 

지나온 스무번째 날까지 플로깅을 되짚어본다. 플로깅 하면서 사실 다 일일히 치우지는 못했다. 대표적인 쓰레기가 마스크이다. 여태까지 딱 하루 정도 빼놓고 골목 구석이며, 길거리 한 복판이며, 화단이며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마스크를 줍지 않는 날이 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또 어김없이 마스크를 봤지만 그 때는 마스크를 줍지 않았다. 쓰레기 집게도 이미 소독약으로 소독하고 가방에 넣은 터라 줍지 못했다. 


솔직히 마스크 쓰레기는 줍고 치우기가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작년 가을 한 달 동안 전세계에서 버려지는 마스크 1,290억 장일 것이라 추산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착용했던 마스크를 함부로 버리면 감염원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또 섬유가 아니라 플라스틱 성분도 들어 있어서 그냥 버리면 마모되어 미세플라스틱이 된다고 한다. 불과 2년 전 2020년 봄에는 마스크 한 장 사려고 줄을 서고 그랬는데 왜 이리 함부로 버리는지 모르겠다. 찾아보니 마스크는 쓴 면을 손에 닿지 않게 접어서 쓰레기봉투 안에서 나오지 않도록 깊숙이 버리고 그 후 손을 닦는 게 배출팁이다. 



출장간 지역은 비교적 깨끗한 편이었다. 그런데 마스크가 버려진 건 서울과 똑같았다. 마스크 쓰레기를 줍지 않았다. 쓰레기봉투나 비닐 장갑 등도 준비하지 못해서 위 사진 속 마스크 쓰레기를 치우지 못했다. 일 때문에 바빠서인지 대체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요즘 좀 답답해서인지, 내 마음에 여유가 없다. 줍지 않으면 사진 찍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플로깅 100일 기록을 목표로 글을 쓰는 마당에 이렇게 사진까지 올리고보니 나 자신에게 좀 부끄럽지만, 일단 기록이라도 남겨두고, 다음 번에 기회가 되어 다시 같은 지역에 출장간다면 줍고 오겠다고 다짐해본다. (아마 새봄 쯤 다시 가야할 것 같은데, 과연 저 자리에 저 마스크 쓰레기가 그대로 있을까? 궁금하다.) 


오늘의 정리 

크리스마스가 지나 케잌포장 껍데기를 몇 개 치움. 내 마음 속 동기 재부여를 위해 출장길에 찍은 아름다운 지역 풍경을 다시 감상한다. 플로깅을 시작하면서 (내가 보기에도) 썩 좋은 풍경 사진을 찍게 된 게 좀 많이 신기하다. 일하러 이동하는 중에 잠깐 짬을 내어 정말 급히 찍은 사진인데, 잘 나왔다. 나도 모르는 새에 시야가 넓어졌나 싶다? 괜찮은 사진 두 컷 올리며, 플로깅 스무번째 기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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