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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플로거 Jan 05. 2022

도시의 산책자

플로깅 스물 한 번째 날 

수요일. 우리 동네 쓰레기 배출일이다. 상표라벨 비닐을 떼고 속 내용물을 깨끗이 씻어둔 투명 음료페트병을 모아서 배출하러 나가는 김에, 오늘도 동네 플로깅 길을 나선다. 이얍! 기합 한 번 넣고 출발. 골목골목 어김없이 버려진 마스크를 줍는다. 오늘은 특이하게도, 부러진 연필을 주웠고, 길을 굴러다니다가 차 바퀴에 사정없이 찌그러진 커피캔을 주웠다. 납작해진 커피캔이 멋스럽다. 마치 평면아트 작품 같다. 

오, 레트로 감성 뿜뿜 납작해진 커피캔 

      

노란 부서진 연필. 왜 길에 이런 애처로운 쓰레기가 놓여 있는지?

사실 얼마 전에, 최종소비자가 라벨을 떼고 내용물을 잘 씻어서 버려도 재활용업체의 인력난, 경영난으로 투명 음료페트병이 잘 재활용되고 있지 않다고 뉴스를 보았다. 그래도 열심히 씻고 라벨도 깔끔히 떼어내려 한다. 바젤 협약 개정 후 더 이상 중국이나 동남 아시아 국가들이 한국이나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 폐플라스틱을 수입하지 않는다. 상황이 바뀌었다. 어쩔 수 없다. 어떻게든 재활용가능하도록 투명 플라스틱 페트병을 잘 배출하는 수밖에.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강조한 점은 약육강식의 생존경쟁 세계에서 적자가 생존한다는 게 아니라,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점이다. 이른바 자연선택설. 환경에 적응한 생물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멸종한다. 적자생존법칙이라 이름이 붙여 알려진 탓에 다윈이 진정으로 말하고 싶던 바가 전달되지 못했다. 


어쨌거나 내가 말하고 싶은 바는 시대의 패러다임(한 시대에 지배적인 사고양식)이 전환되고 있으므로, 이에 생활양식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르신이나 아이들도 페트병 포장지를 뜯어내기 쉽도록, 생산자도 좀 포장지를 신경써서 만들면 좋겠다..손으로 쉽게 잘 안뜯어짐.


새 배출방식에 따라 분류한 음료페트병 쓰레기 

나의 플로깅 차림새는 아래 사진과 같다. Plogging을 키워드로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해보니 외국 플로거 중에는 가볍고 산뜻한 조깅복을 입고 하는 사람이 많다. 추운 겨울에 플로깅을 시작한 탓에, 현재 나는 멋진 차림새와는 거리가 멀다. 평상복에 한없이 가까운, 다소 낡은 추리닝 바지와 외투를 껴입는다. 모자를 쓰고, 쓰레기를 집기 편하도록 얇은 장갑을 낀다. 거기에 쓰레기를 집는 용도로 활용 중인 ‘음식물 집게’를 들고 다니고, 살균소독제도 빼놓을 수 없다. 초반에는 집게랑 소독제를 넣을 가방을 손에 들고 다녔는데, 아무래도 쓰레기 줍기에 손에 드는 가방이 불편해서 요새는 어깨에 둘러메는 가방으로 바꿨다.       

플로깅을 처음 시작할 때는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 상하의를 블랙으로 입었다가, 얼마 전부터화려한 외투를 입고 있다. 하루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이른 저녁 시간에, 꽃무늬가 정신없이 들어간 외투를 걸치고 나가서 플로깅을 했더니 유심히 쳐다봐주는 이들이 좀 있었다. 이후 동네에 굴러다니는 쓰레기가 좀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체감일 뿐일 수도, 나의 부질없는 바람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팬데믹 후 확실히 운동량이 줄고 군살이 쪘다. 그런 사정에 더해 겨울이 되니, 이제 마지막 남은 보루. 걷기조차 잘 안 하지 않게 되었는데 딱히 엄청난 활동량은 아니지만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시선으로 나름대로 플로깅을 실천하며 몸을 움직이니 좋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면, 하루 중 대기환류가 가장 좋다는 오후 1~3시 사이(실내공기관리에서 배운 꿀팁 ㅎㅎ)에 잠깐 창을 열고 실내를 환기할 때를 빼놓고서는 실상 바깥바람을 쐴 일이 없다. 플로깅을 하면서 하루에 한 번 꼭 바람을 쐬고, 길에서 쓸모 있는 잡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이를테면..... 불연속적으로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거나, 쓰레기와 관련된 보다 근본적인 물음이 들기도 한다.  


중학생 때 내가 살던 아파트 베란다에는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지 않고도, 막 내다 버릴 수 있고, 얼마나 버리든 양에 관계없이 버릴 수 있는 쓰레기 투입구가 있었다. 1950~90년대까지 아파트에 다 있던 쓰레기 투입구 ‘더스트슈트’를 말하는데, 1991년부터 서서히 쓰지 않게 됐다. 투입구를 통해 가령 8층에서 쓰레기를 아무거나 버리면, 쓰레기가 미끄럼 통로를 따라 1층 함으로 모인다. 그걸 쓰레기 차량이 수거해간다. 아파트에 이사하고서 그 쓰레기 투입구가 너무 재밌어서 아이들과 콜라병을 투입구에 던지면서 아래에 내려가면 깨지나 안 깨지나 내기도 해보고 장난치고 그러고 놀았다. 플로깅을 해보니, 예전에 내가 쉽고 편하게 버린 만큼, 그 쓰레기를 수거해간 미화원 분들이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꽤 긴 시간 동안, “쓰레기는 그냥 버리면 그걸 알아서 재활용해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하고 무심히 그런 말을 주고받던 시절이 있었다. 플로깅 한다면서 이렇게 요란하게 글까지 쓰면서 단지 몇몇 개 쓰레기를 줍는 나와 달리, 생계를 위해 주워야 하는 이들이 있다. 허리가 마치 활처럼 휘어져 많이 굽고, 몸에 장애도 있는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폐지와 폐플라스틱, 캔을 줍고 분류해서 리어카에 한가득 싣고서는, 그 무거운 리어카를 정말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끌고 가는 광경이 마음 아프다. 


자주 마주치는 한 어르신은 이야기를 나눠보니, 다리도 불편하시고 아토피가 너무 심하셔서 마스크를 단 5분만 쓰고 계셔도 피부가 짓무르신다고 한다. 그래도 생계를 꾸리기 위해 폐지를 모으신다. 왜 재활용쓰레기는 가난하고 몸이 아픈 이들이 주워야 하는가?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서 그걸 어느 정도 당연하게 느끼는 나 자신도 좀 불편하다.      


어르신께 동의를 받고 약간의 사례비를 드리고 촬영했다


어제(2021년 12월 28일) S대 기숙사에서 2021년 6월에 숨진 청소노동자가 산재로 인정을 받았다. 숨진 59살 여성은 엘리베이터 없는 S대 4층짜리 학생 기숙사 건물을 청소했는데, 층마다 모아놓은 쓰레기 꾸러미를 손으로 일일이 1층까지 수거했다고 한다. 화장실, 독서실, 샤워실 등의 청소도 도맡고, 100리터가 넘는 쓰레기봉투 여러 개를 하루에도 몇 차례나 계단을 오르내리며 나르다가 심근경색으로 숨지셨다.     


뒤늦게나마 산재로 인정받은 게 옳긴 하지만, 만약 학교 측에서 학생들이 각자 분담해서 1층까지 자신의 쓰레기를 내다 놓게 그것 하나만 제대로 (생활)지도했더라면 어땠을까. 어쩌면 그 여성은 아까운 목숨 빨리 잃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청소비 등을 포함해 기숙사비를 냈을 수도 있지만, 돈을 내는 교환관계로 일어난 행위라 해도 정당하지 않은 행위는 얼마든지 있다. 인간공학에서는 15kg가 넘는 무게의 짐을 손잡이나 도구 없이, 단번에 드는 행위는 신체 특히 근골격에 큰 부담을 주는 행위라고 본다. 누군가는 오로지 공부만 하도록 기대되고 누군가는 오로지 청소만 하도록 기대되는 방식은 불공평할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이다. 이런 이상한 능력주의 분담이 학생들이나 학생들의 인생에 도움이 될 교육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주방에 가는 건 남자 일이 아니라고 여기는 철저한 성차별(주의) 교육을 받고, 나아가 살면서 스스로 그 가르침을 완전 체득하여 내면화한 탓에, 집밥으로는 오직 라면만 끓여 먹을 줄 아는 아버지. 요새는 그렇게 산 걸 좀 후회하고 있다. 추측컨대, 자신을 위해서든 자식(나)을 위해서든 자기 손으로 집밥 한 번 차릴 수 없어서이다. 


(자식 키울 때 열심히 벌어서 어머니한테 살림비를 보태고 뽀너스가 생기면 좋은 외식 사주시고 그런 고마움은 자식으로서 잘 알고 있다. 그니까,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일상적이지 않은 외식만큼, 일정한 심리적 거리가 늘 놓여 있고, 그래서 이제 늙으신 아버지가 그걸 안타까워하는 것 같지만, 돌이키기에는 서로 어색하다.)


오늘의 정리 

마스크와 연필, 커피캔을 줍고, 집으로 돌아오며 보니 쓰레기터에 또 찻잔 세트가 나와 있다. 비닐이나 종이에도 싸지 않고, 그냥 달랑 찻잔 세트째로 내놓았다. 좁은 골목길에 차도 오가고 내일이면 또 깨져 있겠지 싶은데. 살펴보니 찻잔 세트가 깔끔해서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집어가길 바라며 돌아왔다. 아니 사실 내심 반쯤은 귀찮아서 그냥 두고 왔다. 이런 귀찮음이 현재 플로깅 활동과 나의 어정쩡한 관계를 설명해주는 것만 같다. 


플로깅 목표를 100번으로 세운 만큼, 아무쪼록 헤매면서도 잘 헤쳐나가는 도시의 산책자가 되고 싶고 기록도 잘 하고 싶은데, 플로깅이 나를 대체 어디다 데려다 줄지 모르겠다..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지속하는 데에 집중하면서 새로운 사유가 싹트기를, 새롭게 결정화되길 기다려보겠다. 근대를 알린 도시의 첫 산책자, 비운의 사상가 발터 벤야민(1892~1940)의 책을 인용하며 오늘 플로깅 끝.  


“나는 베를린에서 한 번도 거리에서 자본 적은 없다. 저녁놀을 보기도 아침놀을 보기도 했지만 그 사이에 나는 어딘가 잠자리로 찾아들었다. 가난 혹은 죄 때문에 일몰에서 일출 때까지 도시를 헤매고 다니면서 도시를 풍경으로 경험하는 사람들만이 내가 알지 못한 도시의 모습을 안다.”

 발터 벤야민, 윤미애 옮김, <발터 벤야민 선집3 베를린연대기> 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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