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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플로거 Jan 10. 2022

아수라장 속 이틀 연속 만난 생명체

플로깅 스물둘,셋,넷,다섯 번째 

2021년 한 해가 저물고 2022년 한 해가 또 왔다. 비슷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을 되풀이 한다. (수은)건전지와 (미세플라스틱)아이스팩을 주워두었다가, 주민센터나 보건소, 구청 등에 있는 재활용수거함에 갈 일이 생기면 갖고 가서 버린다. 기온이 확 떨어진 날엔 핫팩도 길거리에 그냥 버려져 있다. 산화철의 열 발생을 이용하는 핫팩은 그 내용물인 철가루가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종량제 봉투에 주워담는다. 

서울시 평균 동네 풍경 빌라숲. 플로깅 때 한 컷.

12월 31일 한 해 마지막 날. 우리 동네 쓰레기 배출요일인데, 1월 1일이 휴일이라서 그런지 미화업체가 쉬는 날인가보다. 31일 나온 쓰레기가 수거되지 않았다. 31일 금요일 밤부터 다시 배출요일이 오는 3일 월요일 낮까지 1일, 2일, 3일 사흘간 골목골목마다 크고 작은 쓰레기더미가 만들어지고 그 주변에 쓰레기가 마구마구 버려지고 쌓여갔다. 


주민센터나 구청에서 '31일 쓰레기 수거를 하지 않으니 새해가 되면 쓰레기를 배출하라'고 미리 공지 한 장씩만 돌렸어도, 이리 아수라장이 되진 않을텐데. 분명 코로나 이전에는 미리 안내문을 받은 기억이 있는데, 팬데믹 대처로 여력이 없나 보다. 그래도 요즘은 구청도 카카오톡 채널을 하는 시대인데,  채널메세지로 딱 한 줄만이라도 기본적인 청소행정 일정을 알려주면 좋을텐데. 


2021년 해가 저물기 전, 나는 플로깅을 하다가 이틀 연속으로 한 생명체를 만났다.

 

오늘 이야기에는 쥐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힘드신 분들 읽지 마세요. 




2022년 새해 1월 3일 밤. 골목 어귀에서 RV차 높이 정도로 쌓인 쓰레기산을 봤다. 3일 밤에는 내놓은 쓰레기를 정리정돈하시는 미화원 분이 유독 힘들어보였다. 원래 쓰레기배출일에 미화업체가 청소차로 쓰레기를 수거하기 전에, 미리 미화원 한 분께서 작은 카트차를 타고 골목을 돌면서 쓰레기를 미리 정리정돈하고 분류한다. 청소차가 쓰레기를 수거하기 쉽도록 먼저 정비작업을 하시는 것이다. 


며칠동안 쌓인 양도 양이지만, 쓰레기 더미 위로 아무렇게나 버린 쓰레기를 분류정돈하는 작업도 보통 만만치 않은 일이 아닐 터.


그리고 아마도.... 쥐도 자주 보시겠지... 


RV차(오른편 흰색차량) 높이만큼 쌓인 쓰레기. 평소 쓰레기는 이렇게 잘 정리되어 있지 않다. 미화원이 수거차량이 오거 전에 미리 분류정돈해 둔 것이다.  


쓰레기 배출일도, 배출방법도 잘 지키지 않아 골목골목 너저분한 쓰레기가 상시적으로 널려 있는 우리 동네. 서울 시내 어디에나 있는 빌라숲, 다세대숲 평균적인 풍경인데. 특이사항으로는 길고양이에 대한 인심마저 좋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플로깅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여태까지 내가 쥐를 안 본 게 오히려 이상했겠지 싶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이야 이렇게 담담히 말할 수 있는데, 사실 쥐와 눈빛이 딱 마주쳤을 때는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 했다. 여느 날과 다름 없이, 깨진 유리조각과 버려진 마스크, 약간 흩어진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려, 허리를 굽혔다. 쓰레기를 주우려는데, 쓰레기 더미 쪽에서 뭔가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쪽을 쳐다봤다. 


아이고! 진한 회색 털의 쥐가 큰 길가에 떨어진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려고 쓰레기 틈새를 비집고 나오려다가 나를 보고 발걸음을 멈춘다. 


나를 보고도 요 쥐 녀석이 도망가지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서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어쩌면 요 녀석도 놀랐을 지도 모를 일이다. '물끄러미' 나를 쳐다봤다기보다는, 인간인 나를 보고 무서워서 그만 얼어붙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은, 당시에는 그렇게 해석이 안 되고, 그 시간이 좀 길게 느껴졌다. 퍼뜩 정신이 들자, 나는 플로깅이고 나발이고, 그냥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얼른 일어나 도망쳤다. 


도망치기 전에 그래도 사진은 한 컷 찍었다. 쥐 크기라도 알아야 했기에. 진정되고나서 찍은 사진을 보니 쥐 몸체가 옆에 찍힌 담배갑 길이보다는 약간 길다. 15센치 정도 되는 것 같다. 나중에 다시 나가서 떨어진 유리조각을 치워보려다가, 쥐가 한 마리만 있지 않겠지 싶어서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리하여 플로깅 스물 두번째 날. 아무 것도 줍지 못하고 성과 없는 채로 플로깅을 끝냈다. 

작년 봄에 어느 지역에서 본 홍보포스터가 생각난다. 한 길냥이 커뮤니티에서, 부디 길냥이를 구박하지 말고 사랑해달라고 광고하는 포스터였다. 불법으로 마구 붙인 벽보포스터가 아니라, 돈을 내고 유료로 광고를 한 것이라서 유심히 본 기억이 났다. (길고양이를 사랑하시는 분들이 정말 고생이 많다.) 


다음 날 저녁. 어제 못한만큼 좀 더 쓰레기를 줍줍하자는 각오를 하고, 일을 좀 빨리 마치고, 플로깅 하러 비교적 이른 시간에 길을 나선다. 


동네 골목서 좀 줍다가, 동네 골목을 벗어나 다른 옆골목 사거리로 갔다. 여기도 우리 동네 골목과 마찬가지로, 배출일도 배출방법도 잘 지키지 않는 곳이라서, 쓰레기가 사거리를 중심으로 널려 있다.  플로깅 때 자주 쓰레기를 줍줍하는 곳이다. 


아이고! 이번에는 차 바퀴에 로드킬로 죽어 있는 쥐를 보았다. 이 골목 사거리는 약간 구릉지대로 평지가 아니라서 시야가 좁아서 차끼리도 접촉사고가 자주 나는 곳이다. 쥐 사체에 선명한 핏자국, 차 바퀴 자국이 나 있다. 필경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 더미로 돌진하던 요 녀석이 미처 차를 피하지 못하고 죽은 것이리라. 어제 본 쥐보다 몸체가 더 크다. 


하아... 플로깅 스물 세번째 날. 길가에 방치된 쥐 사체를 못 본 척 할 수가 없다. 120다산콜로 수거 신청 전화를 했다.( 02-120을 눌러 신고, '서울스마트불편신고' 앱으로도 신고가능) 그러고나니 기운이 빠진다. 전날처럼 쓰레기를 몇 개 줍지 못하고, 별 성과가 없는 채로 플로깅을 끝냈다. 


지난 며칠간의 플로깅 정리 & 새해 다짐 

쥐를 이틀 연속 보고 난 다음 날. 플로깅에 나가니 이번에는 버려진 소형가전제품(흰색 중형 전기포트) 속에 누가 개똥을 집어넣어 둔 것을 발견했다. 매번 같은 자리에 개가 개똥을 누면 그 개똥에 휴지만 살포시 덮어두고 가는 이가 있는데, 그이가 이번에는 그 개똥을 휴지로 말아서 포트 속에 고이 넣어둔 듯 하다. 이렇게 넣어두면 미화원이 소형가전제품을 바로 수거하지 못하니, 포트 속 개똥 위로 쓰레기가 하나 둘 계속 더 쌓일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그 개똥까지 치우고 나니, 도저히 며칠간 플로깅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쥐라는 생명체 그 자체나 개똥과 같은 배설 즉 생명유지현상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 유감이 없다. 공공의 공간이란 개념이 없다시피 하고, 길거리나 골목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는 문화에 대해 진저리가 난다. 


한편으로는 생업으로 환경미화를 하시거나 폐휴지와 재활용품을 줍는 분들의 노고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된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업무인데, 왜 우리는 학창시절에 공부를 못한다거나 떠들어서 혼날 때, 벌로 청소를 해야했을까. 청소부란 경의를 담아 바라봐야 할 직업이고, 또 작업 시 따르는 위험만큼 정당한 댓가와 마땅한 사회적 평판을 받아야 하는 직업이라고 왜 배우지 않았을까. 


2021년 한 해가 저물면서 TV에서 연예인, 가수 시상식이 많이 방영된다. 시상식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플로깅을 시작한 나에게 내가 스스로 상을 주자' 싶었다. 뭐 상도 상이지만, 새해에도 기분 좋은 마음으로 플로깅을 계속 하고 싶어서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오랫동안 하고 싶던 꽃배달 정기구독을 해보았다. 눈에 띄는 업체가 있었다. 소비자가 꽃구독을 해서 수익이 나면 그 수익을 청각장애인 플로리스트 양성을 위해 교육비로 일부 적립한다는 사회적기업이다. 

사회적기업 꽃배달 업체에서 정기구독한 꽃

한 달에 한 번씩 6개월만 정기구독으로 꽃을 받아 보기로 하고, 기분 좋게 꽃을 배달받았다. 땅에 분해되는 비닐종이에 싸인 꽃이 집으로 왔다. 한 겨울에 싱싱한 꽃을 귀한 상으로, 나한테서 내가 스스로 받았으니, 최고의 선물이다! 좀만 더 힘내서 플로깅을 하자. 뭐 백번 안 채우면 어때. 되는 데까지만 하자. 쉬엄쉬엄.


쥐, 도시의 공간, 길거리, 골목, 동네..... 생활세계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에 대해

며칠 간 플로깅을 쉬면서 쥐에 대해, 우리의 생활공간 도시에 대해 사색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마침 도서관서 빌린 책이 한국의 공학 역사에 관한 책이다. 한국의 1950년대는 아직 내가 태어나기 전인데, 한국이 전쟁 후 얼마되지 않은 폐허 속에서 경제발전시킬 산업이 없어서, 여자들이 머리를 길러서 가발 산업 수출도 하고, 곳곳에 들끓는 쥐를 잡아서 그 쥐털로 밍크도 만들어 입었다는 대목을 보았다. 


이제 한국은 경공업 국가도 아니고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2차세계대전 후 거의 유일무이한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그만큼 공공이란 개념은 따라오지 못했다. 물론 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공공의 공간은 그 범위가 극히 좁다. 내 집만 깨끗하면 되니까, 배출일을 지키지 않고 쓰레기를 그냥 내놓는다. 내 집 앞만, 내 집안만 깨끗하면 되니까 다른집 앞에 혹은 공공휴지통에 가서 쓰레기를 버린다. 


나만, 내 식구만 잘 살면 되니까, 내 세금으로 공공을 위해 쓰는 것은 아깝고, 복지 지출도, 증세도 말이 안 된다. 이런 생각들이 공공의 공간을 협소하게 만들고,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생활세계 공간을 망치고 있다. 


전에 전쟁을 겪은 나라에서는 공공질서나 규칙을 잘 지키지 않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극한 상황에서 생존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쉽게 죽임을 당하거나 양보하고 배려하거나 협력하고 연대하다가 목숨을 잃고 마는 것을 지켜보고 겪으면서, 나만 질서나 규칙을 잘 지킨다고 무슨 소용이냐 싶어한다는 것이다. (전쟁에서 사망한 이들 수치를 비교하는 건 참 슬픈 일인데, 한국전쟁에서는 베트남전보다 많은 민간인이 죽었다고 한다.)  


내전 혹은 냉전의 대리전을 치르고, 이후 한국인들은 군사독재정권 시대를 거치며 정통성도 없고 폭압적으로 사리사욕만 채우는 정권과 그 정권에 기생하면서 사는 이들의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득세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당연하게도, (동시에 불행하게도) 내 집밖의 일은 내 식구 이외의 일은 아무리 부당하고 아무리 불합리한 일이 일어나도 나몰라라 하게 된다. 이런 의식이 어쩌면 우리의 생활세계를 구성하는 그 기저에 깔려 있지 않을까.  


민주주의 운동은 비단 독재자 한 사람을 끌어내리는 데에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만, 내 식구만 잘 살면 된다는 식의 생각은 표면상으로는 끝났지만, 아직도 전반적으로 단단히 뿌리내려져 있지 싶다. 


코로나 이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집안 인테리어에 관심이 두게 된 이들이 많아졌다고 해서 포털에 올라오는 집안 인테리어 사진을 보면 참 센스 넘치고 감각적인 사적 공간(집)이 많다. 그런데 내 집 문만 열고 나가면 그 즉시 길거리도, 골목도 곳곳에 떨어진 쓰레기로 볼품이 없고 형편없는 대도시의 공간을 마주한다. 우리의 생활세계를 구성하는 의식은 어디쯤 와 있는가? 매일 일상의 공간, 그 생활세계를 바라보는 나의 의식과 행동은 어디쯤 와 있는가? 2021년 플로깅을 끝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앞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란 분석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이미 '필수업무종사자'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재인식되기 시작했고, 기존의 많은 가치관이 달라질 것이라 한다. 그 변화의 과정 중에 공공의 공간, 서울의 빌라숲 골목, 길거리 이런 곳의 풍경도 좀 좋게 달라져 있으면 하고 바란다. 


오늘도 긴 기록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쥐 사진을 찍긴 했는데 사진 그대로는 너무 날 것이라서(쥐 피자국마저 선명한 사진ㅜ) 누군가 보고 충격을 받을까봐 여기에 올릴 수가 없다. 보잘 것 없는 나의 그림 실력을 조금이라도 늘려서 브런치에 글이나 사진 말고, 각종 에피소드를 담은 그림을 올려보고 싶은데, 될려나? 그런 소망을 담아, 연초에 자~~알 쉬면서, 지난 가을에 읽은 감명의 수작 만화책 <건너온 사람들>의 그림 한 컷을 따라 그려 봤다. 

만화 <건너온 사람들>(홍지흔 지음, 책상통신, 2019년작) 멋진 한 컷을 따라 그려보고 콜라주.

위에서 컷을 따라 그려 본 만화는 2019년작 <건너온 사람들> (홍지흔 지음, 책상통신) 이다. 도서관서 빌려 읽었는데 한국전쟁 때 피란민(실향민) 실화를 다룬 내용으로 감명 깊었다.  강력 추천합니다! 


지난 가을, 도서관서 이 책을 빌려 책장을 펼치니, 나보다 먼저 읽은 듯 한, 어느 독자의 포스트잇이 눈에 들어왔다. 글씨체도 내용도 아름다운 서평인데 마음에 담아 두고 싶어서 그 때 사진을 찍어두고 때때로 다시금 사진을 찾아 보았다. 혼자 보기는 아까워서, 포스트잇을 쓴 분의 허락은 없지만 (공공도서관의 책에 포스트잇을 남겨두셨으니 허락으로 간주하고 ㅎㅎ) 여기에 올려둔다. 


끝으로, 올드플로거의 브런치를 찾아주신 여러분, 오늘도 긴 기록 열심히 읽어주셔서 혹은 대충 훝어봐주셔서 다들 참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도서관서 빌려온 <건너온 사람들> 펼치니 속표지에 이런 멋진 서평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2021년 가을 찍어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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