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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플로거 Feb 06. 2022

결국 나를 위한 일

플로깅 서른 두 번 째

불법 사채(대부업체) 광고 명함 신고를 하고 나서 확실히 명함 광고를 덜 줍게 됐다. 신고 한 두 차례로 신고가 잘 접수되지 않아 미진한 행정 부분도 공들여 해결하고 나니, 쓰레기 줍기가 한결 낫다. 일일이 줍고 신고하기, 거기에 더해 신고를 안 받아주는 관청과 실랑이 하기. 단속해달라고 경찰에 신고하기. 이런 일들이 번거롭지도 힘들지도 않다면 거짓말일 터이지만, 그래도 나서길 잘했다.


애초에 단순한 동기였는데 일이 커졌다. 한 번 플로깅 할 때마다 열 몇 장 스물 몇 장은 기본으로 불법 사채 광고 명함을 줍는데, 더 이상 줍고 싶지 않았다.      


작은 바람이나마 이루고 나니 우선 일신이 편하다. (내 아까운 플로깅 시간을 저런 불법 유동광고물에 허비할 순 없지.) 기분이 상쾌하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불법 사채 광고 명함을 줍거나, 신고하거나, 신고 수리를 게을리하는 행정에 독촉을 할런지 잘 모르겠으나, 나의 작은 힘이나마 사회에 기여하도록 노력하겠다. 더불어 내 한 몸과 마음도 더욱 편안하고 온화해지도록 힘쓰겠다.


일찍이 아들러 선생도 한 인간이 실존하는 한 인격체로 통합되기 위해서는 자기존중과 공동체 의식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설파하지 않았던가? 간만에 몇 년 전 베스트셀러 <미움 받을 용기>를 읽고 나름대로 깨우친 내용을 되새겨봤다.




플로깅 서른 두 번째 날. 유달리 길거리에 플라스틱 일회용컵이 이곳저곳 떨어져 있다. 뭐 ‘유달리’ 라고도 할 수는 없는 게, 사나흘에 한 번꼴로 플라스틱 일회용컵 한 두개는 꼭 줍는 것 같다. 커피, 주스 등을 사 마시고서 그냥 아무데나 버린 플라스틱 용기들. 오늘은 날이 추워서, 마시지 않고 보린 음료 내용물이 꽁꽁 얼었다. 길 아무데나 버리기 전에 남은 음료를 다 마셔버리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골목 곳곳에 있는 하수구에 몇 걸음만 걸어가서 남은 액체를 흘려버리고서, 용기를 버리면 좋을텐데.


플라스틱 일회용컵에서 얼어붙은 음료가 잘 빠지지 않는다. 음료 남은 게 얼면서, 어라? 용기에 꽂힌 빨대까지 붙어서 같이 통째로 얼어 있네? 줍고 분리수거를 하느라 품이 든다.


땅바닥에 플라스틱 일회용컵을 쾅쾅 치며 얼음을 뺀다. 용기(플라스틱 일회용컵)에서 얼음(얼어버린 음료 내용물+아이스 아메리카노 혹은 아이스 주스를 마셨는지 원래 있던 얼음)을 빼낸다.


얼음을 하수구에 버리려 하니 하수구 구멍보다 덩어리가 더 크다. 덩어리를 쪼갠다. 땅바닥에 패대기를 쳐서 ㅎㅎ. 그래도 하수구가 막힐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얼음 쪼갠 것을 다시금 일일히 땅바닥에 힘껏 내리 찍어서 ㅎㅎ 깨부순다. 잔얼음으로 만든 후, 다시 담고 모아서 하수구에 버렸다.


이러고 나니 장갑이 젖는다. 손끝이 시렵다. 기록용(증거용?) 사진 한 장도 찍지 못했다. 한 5개 정도 플라스틱 일회용컵을 치웠는데, 얼음 빼고 조각내서 버리느라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다른 쓰레기는 줍지도 못했다.


장갑을 벗고 손가락에 호호 입김을 불어넣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추워서 그런지 그렇지 않아도 동네서 구박받는 길냥이가 맥없이 아주 느릿느릿 걷는 걸 보았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서 "어디 아파, 괜찮아?" 하고 물으니까 냥이가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말을 알아들을리는 없는데, 날 힐끗 쳐다본다. "저기 물 갖다 놧어, 아직 안 얼었어. 마시고 가" 하고 말을 붙였는데, 그냥 가던 길을 다시 천천히 간다. 멀어져 가는 냥이의 뒷모습을 잠시 물끄러미 쳐다봤다.


왠지 오늘의 플로깅이 좀 서글프다.

    

아! 이 겨울이 가고, 다음 겨울이 오면 사정이 훨씬 나아지겠지! 왜냐하면, 올 2022년 6월부터는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시행되니까! 매장에서 일회용컵으로 음료를 받으면 300원을 더 내야 하는데, 나중에 매장으로 다시 가져가면 300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물론 이런 제도로 플라스틱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은 기대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길거리 이곳저곳에 플라스틱 일회용컵이 버려지는 일은 줄어들 듯하다.


지층에도 플라스틱 퇴적층이 쌓이고 '플라스틱 비'(비에 미세플라스틱이 섞여서)도 내린다는데...(플라스틱 비, 플라스틱 퇴적층 뉴스를 보고서 깜짝 놀랐다...)

https://www.lifein.news/news/articleView.html?idxno=12469




여태까지 플로깅하며 하루라도 푸념과 탄식을 안 하는 날이 있나.. 마침 내게 주는 우주의 메시지(?) 격인 에세이를 읽었다.


<운을 읽는 변호사>(니시나카 쓰토무 지음, 최서희 옮김, 알투스 2018년)란 책이다. 저자의 직업은 변호사인데, 책 내용은 특이하게도, 일상에서 덕과 인성을 쌓아 운을 틔우는 법을 담았다. 읽다가 재미난 부분이 있었는데, 저자도 쓰레기 줍기를 하고 있다는 것.


<운을 읽는 변호사> 표지. (니시나카 쓰토무 지음, 최서희 옮김, 알투스, 2017년 출간)


저자는 하좌행下座行을 하기 위해 쓰레기를 줍는다고 한다. 하좌행이란 일종의 수행방법(인격단련법)인데, 덕을 닦으려고 일부러 자신을 낮은 장소에 두는 수행이라 한다.


“본래 내가 할 필요가 없거나,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를 몸으로 익힐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남들이 모두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해온 사람의 어려움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그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오만한 마음이 사라져 자연스럽게 겸손해집니다. 이렇게 하좌행을 하면 인격을 갈고닦게 되는 것입니다. (중략) 그 누군가가 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하면 됩니다. (중략) 결국 쓰레기를 줍는 것은 나를 위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운을 읽는 변호사> 223~224쪽 (밑줄은 내가 친 것임)


도서관서 왜 이 책이 눈에 띈 것인지 신기하다. 동네 도서관 큰글씨 책 코너에서 펄럭펄럭 책장을 넘겨보는데 저자가 50살 때 생명의전화(자살예방상담 전화)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또 '도덕과학'이란 생소한 개념을 설명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이 책은 보통 글씨 책으로도 책이 나와 있는데, 나는 큰글씨 책으로 출간된 2018년도판 책을 대출했다. (아직 시력이 많이 나쁘진 않지만 큰글씨 책을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이 든다.) 쓰레기를 줍는 것에 관한 내용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도덕과학에 해당하는 Moralogy 영어단어는 영영사전을 찾아보니 없다. 일본식 조어 영어인 듯 한데, 개념이 재미있다. 법학자 히로이케 치쿠로가 창안했다는데 도덕을 과학적으로 연구한다는 뜻이라 한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생활 전반에서 누군가의 '덕분'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 먹는 음식도 고기, 생선, 채소의 생명을 빼앗아 먹고, 태양이나 자연이 주는 은혜를 이용해 살아가고, 통근이나 통학할 때도 도로나 철도 등을 건설할 때 사고로 생명을 잃은 사람이 있고, 사람들의 희생이 있어서 우리가 회사나 학교에 다니고 있다..(<운을 읽는 변호사> 23쪽 내용 요약) 이런 부분은 평이한 말로 '능력주의'를 비판한 유용한 가르침이라 생각이 들었다. (이 책재밌어요. 추천합니다!)  


최근 화제가 된 책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함규진 옮김, 와이즈베리, 2020년)에서도 보면, 능력주의의 문제점과 그 허구성을 알기 쉽게 잘 설명한다. 공존사회를 위한 관점도 잘 나와 있다.


대학(학문의 장)은 지적 호기심이나 지식 탐구의 장이 아닌지 오래이고 출세를 위한 장이 됐고 동시에 능력있음을 증명하는 곳,  출세나 돈을 바라는 이들이 모이는 곳이 됐다. 그리고 이 '능력있는' 이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이들을 경멸한다. 자신들이 누군가(부모든, 주변의 누구든)의 도움을 알게 모르게 받았던 적 없다는 듯 말하고 행동하며,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여 얻은 성과로 자신 스스로를 승자, 즉 승자로서 성과를 독식할 가치가 있는 자, 다 가져가서 누릴만한, 매우 자격있는 이들이라 여긴다.


학벌주의 대한민국에서도 곳곳에서 이런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나게 된다. (전에 학교 좋은 곳을 나온 오래된 친구들이 학벌없는 이를 꺼리거나 하찮게 여기고, 자신과 같은 학교를 나온 이들한테만 호의를 갖고 정중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무척 충격을 받았다. 지금은 이런 친구들과 더는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특히 이런 사람들이 사회지도층이 되거나 뭔가 리더하는 입장이 되면 단 몇몇 사람한테 영향을 미치는 데에 머물지 않고, 사회 전체를 파국으로 이끌 리스크가 큰 것 같다.


학벌로 인맥을 맺고서 관계를 쌓아 은퇴 후에도 회전문식 인사를 하며 자신들끼리 이너써클에서 집단적 이익만 도모하는 모피아(금융관료), 원전마피아 등이 떠오른다. 아무리 작은 조직에서라도 '능력주의 신봉자들'은 조직을 망칠 위험이 크다. 샌델은 '모든 노동이 존엄하다All labors has dignity(마틴 루터킹의 말)'는 관점을 받아들여, 모든 인간의 일이 존엄하며 능력주의에서 승자가 된 이들이 겸손할 것을 충고한다. (샌델의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은 꼭 책을 찾아서 안 읽어도, 유투브나 EBS 위대한 수업 시리즈 프로그램 등에서 쉽게 강의를 찾아볼 수 있다.)


오늘의 정리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는 인생이 그래도 나 자신이 뜻을 세우면 세운 대로 그럭저럭 잘 흘러온 편이다. 한 번 뜻한 바를 이루려고 결심하면 이에 합당한 노력을 잘 했고 대체로 잘 이뤘다. 그러다가 팬데믹 초기부터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 의지대로 안 풀리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럴 때 나는 스트레스를 무지 받는다. 내가 노력한 만큼 안 되도 웃고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원체 이렇게 반백살 살아와서 그런가, 잘 대처가 안 된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플로깅하며 자신의 인격을 좀 수련하고 덕을 함양해야 할 것 같다.      


딱히 콕 집어서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플로깅을 하는 덕분에, 아, 요런, 답 없는 '쓰레기 줍기 자원활동' 덕분에, (일이 뜻한대로, 노력한 대로 풀리지 않는 요즘에) 인성이 그나마 더 꼬이지 않는 것 같다. 플로깅을 하면서 차츰 드는 생각이 있다.


내가 노력해서 내 ‘자유의지’대로 풀리게끔 만들어 냈다고 뿌듯하게 여긴 내 인생의 많은 성취도, 어쩌면 순전히 나의 노력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 친구들의 모습에만 실망할 게 아니다. 어쩌면 나도 (스스로에 관한 한) '능력주의 신봉자' 중 한 사람이었다는 생각.....


살아온 시절(사회적 역사적 상황)도 비교적 좋고, 주변에 음으로 양으로 나를 도와주거나 그저 묵묵히 따스한 눈길로 지켜봐준 고마운 사람들도 만났고, 시간을 쪼개며 잠을 줄이고 바삐 살던 시절조차 나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도 유지할 수 있었고 등등 여러 가지 행운이 겹쳐 작용한 덕분에 나름대로 성취를 이뤄낼 수 있었다. 그런 행운 덕분에 이렇게 오늘, 나로서 존재하고,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내가 애쓴 만큼 일이 잘 안 풀리더라도, 감사히 여길 줄 알고 살고 싶다. 이게 말처럼 쉽지 않고, 도무지 내겐 잘 안 되니까 플로깅을 좀 더 열심히 하자. 처음부터 안 풀리는 게 원래 디폴트값이라 전제하고, 좀 더 의욕을 내고 좀 더 부지런히 살자.


참, 그러고 보니 매주 같은 요일에 줍던 치킨 쓰레기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앞서 ‘너그러운 마음으로’란 제목의 글에 언급된, 정기적으로 배출일도 배출방법도 지키지 않고 나오던 집앞 쓰레기터의 치킨 쓰레기). 좋은 마음을 먹고 하다보니까 운이 쫙쫙 트이는 것 같다!  아, 인류에게도 하루속히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되는 날이 오기를...인간이 저지르고 누적해온 잘못으로 인해 인간이 고통받는 날이 이제 좀 끝나면 좋겠다. 오늘 플로깅 끝!      


올 12월 말 지역 출장에 갔을 때 찍은 사진. 한 겨울에 이리도 탐스럽고 고운 빛깔의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니. 이름 모를 열매야! 네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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