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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플로거 Feb 17. 2022

작고 이름 없는 사람들

플로깅 서른 세 번째

겨울에 동면하는 감나무의 앙상한 나뭇가지가 아름답다. 플로깅 서른 세 번째 날. 길을 나선다.      

동면중인 감나무 가지

지난해 가을, 옆동네 어느 집 마당 밖으로 주렁주렁 열린 감을 보았다. 좀 흐린 가을 하늘이었는데 감 빛깔이 고와서 사진을 찰칵하고 찍었다. 마침 집주인인 듯한 분이 대문을 열고 나왔다. 앗. 혹시 왜 마음대로 사진찍느냐고 화내면 어쩌지 싶었는데, 웬걸. “이제 내가 팔십인데, 삼십 년 전에 나하고 남편하고 심은 거라우.”라고 감나무를 가리키며 미소를 띄고 말씀을 건네셨다.


“이 근처 골목 화단도 내가 꽃도 심고 가꾸거든요.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그러는데. 지금은 남편도 저 세상 가고 나도 멀지 않아서..."라고 하셨다. 잔잔하고 온화한 이웃의 미소. 평소 그 골목을 지날 때면 어떤 때는 장미, 튤립, 어떤 때는 해바라기가 피어있었다. 길가 화단이 참 예쁘고 잘 가꾸어졌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런 이웃 덕분이었구나! 세상에서 위로가 되는 좋은 풍경은 작고 이름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구나' 싶었다.      


겨울 감나무를 보며 훌륭한 이웃의 미소를 떠올리는 밤. 집게를 들고 후다닥 집앞에 깨진 유리조각, 플라스틱 조각을 치우고 골목을 이동한다.  

    

유리조각+플라스틱조각+기타 음료용기, 꽁초 등을 집게로 후다닥 줍줍.




롤러스케이트가 골목 헌옷수거함 옆 길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수거함 겉면에 롤러스케이트는 받지 않는다고 쓰여있는데, 아무래도 그냥 버리고 간 모양이다. 어떻게 치워야 하지? 이럴 땐 ‘내손안의 분리배출’앱이 정말 편리하다. 품목검색에서 ‘롤러스케이트’를 넣어보니 검색결과가 없다. 앱의 Q&A에 가서 검색을 다시 해보니 “롤러스케이트는 종량제봉투에 넣어 버려야 한다”고 배출법이 나온다.    


내손안의 분리배출 앱, 편리합니다!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kr.or.kprc.recycle&hl=ko&gl=US


아무렇게나 버려진 롤러스케이트가 고학년 아동용인지 꽤 크고 무겁다. 10리터 종량제봉투(250원)에 들어가지 않고, 20리터 종량제봉투(490원)에 들어갈 것 같다. 이걸 내가 치우려면 종량제봉투 값을 내야 하니 좀 아까운 생각이 든다.


단돈 500원을 써서 아깝다는 게 아니고, 20리터 봉투면 길거리의 많은 쓰레기를 담을 수 있는데, 롤러스케이트 한 켤레로만 봉투를 채우자니 아까운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내 선에서 한 번 재활용해볼까 싶어서 한 번 발을 우겨 넣어보았는데^^ 역시나 들어가지 않는다. (이런 시도를 하느라 사진을 못 찍어서 아쉽다)     


‘내손안의 분리배출’ 앱은 한국폐기물협회에서 운영한다. 지자체에 따라 품목에 따라 약간씩 분리배출법이 달라서 이 앱에서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안내한다. 가령 티백(찻잎, 육수용 티백 등) 같은 것은 분리배출이 무척 헛갈린다. 찾아보니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티백을 일반생활쓰레기로 버려야 하는데, 지역에 따라 티백 내용물은 음식물쓰레기로 버리고 티백 껍데기만 종량제봉투에 버리는 곳도 있는 것 같다.


‘내손안의 분리배출’ 앱 Q&A를 보면 정말 많은 문의와 답이 나와 있다. 특정 쓰레기를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하는 문의부터, 왜 투명페트병을 따로 분리해서 배출해야 하는지 이유를 묻는 글 등 다양한 문의가 있다.


참고로 투명페트병을 분리배출해야 하는 이유는 국가간 유해쓰레기 이동을 금지하는 바젤 협약 개정에 따라 플라스틱 페트병 쓰레기를 더 이상 국외로 수출할 수 없게 되어 국내에서 처리를 완료해야 하기 때문에 관련 규정이 바뀐 것이다. 그런데 (전에 브런치 글에도 짧게 쓰긴 했지만) 어떤 플라스틱 페트병은 포장재 뜯기가 쉽지가 않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제품 생산자에게 재활용의무를 부여)를 이용해서, 플라스틱 페트병 생산업체가 포장재를 뜯기 쉽게 만들 수 있도록 관련 규정도 함께 바꿔야, 투명페트병 분리배출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 것 같다.     

 

플로깅을 하면서 나도 궁금한 게 많아 ‘내손안의 분리배출’ 앱 Q&A를 자주 보고 있다. 이 앱 Q&A란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는 것이 쓰레기 문제에 관심있는 이들이 매우 많다는 점이다.


음식물쓰레기만 해도 정말 각종 문의가 많다. 이러한 높은 관심이 뭘 의미할까?      




함부로 쓰레기를 길에 버리고 투기하는 사람도 분명 적지 않지만, 앱 Q&A의 많은 물음을 훝어보다 보니, 한편으로 쓰레기문제, 쓰레기와 관련된 환경문제, 사회문제에 관심이 지대한 이들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7월에 부산의 한 음식물쓰레기 처리장에서 작업하던 분 한 분이 그만 음식물쓰레기 저장고에 추락해 사망하고, 그 분을 돕고자 구조에 나선 동료도 중태에 빠지는 참변이 있었다. 나는 TV뉴스로 당시 CCTV에 찍힌 사고장면을 보고 몹시 충격을 받았다. 추락방지 난간이나 사다리 안전망 등과 같은 안전장치 하나 없이 미끄러운 바닥에서 음식물쓰레기 저장고로 떨어져 질식사하신 분의 죽음. 동료를 살리려다가 중태에 빠지신 분은 음식물쓰레기 부패과정에서 발생한 유독성 물질로 인해 심한 화학화상(화학물질로 인한 화상)을 입으셨을 것이다....       


나는 필경 이런 비극을 끝까지 기억하려 하고,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런 마음들이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 있고, 그래서 조금이나마 (누군가한테는) 평온한 일상이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안전과 관련해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50명 미만 사업장 3년간 적용유예,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적용되지 않는 등 분명 미흡한 부분이 있다. 또 여전히 산업재해 통계조차 내지 않는 직업군,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어업노동자, 과로사한 공무원, 미등록 외국인노동자 등)   


2016년 추운 겨울 촛불혁명이 한창이던 때.  집안어르신께서 조심스럽게 집안의 비밀아닌 비밀로 부쳐진 이야기를 해주셨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들이 한창 지어지던 1970년대 말에 숙모님 동생이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셨는데 일하시다가 과로로 지친 어느 날, 추락해 그만 철근에 찔려 크게 다치셨다고 했다. 앓다가 며칠 후 그만 사망하셨다는 이야기를 내 나이 마흔이 되어서 처음으로 들었다.


군사정권시절이라 그런 죽음을 당하시고도 딱히 사과도 보상도 받지 못했다. 숙모님과 숙모님의 형제자매들은 한국전쟁 때 부모님을 여의고 정말 어렵게 살아오셨다. 배움은커녕 하루하루 그야말로 끼니 걱정 속에서 성장하셨는데, 숙모님 동생의 비참한 죽음은 그저 쉬쉬해야 하는 비밀이었다.


못 배우고 힘든 일을 한다는 것으로, 존경이 아닌 업신여김을 당하고 항시 주눅이 들어 있으니까, 또 그런 서러운 죽음에 대해 항의한다는 것은 곧 군사정권에 항의하는 것으로 여기는 서슬퍼런 시절이니까. 모두가 그저 침묵만 강요당하게 된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침묵 속에서 삶을 마치게 된 죽음, 죽어서도 쉬쉬해야 했던 이런 죽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겨우 알게 된 숙모님 동생의 죽음과 같은 이런 죽음들이 현대사에서 얼마나 많을까...


올해만 해도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 양주 채석장 매몰 사고, 여수 국가산업단지 공장 폭발사고, 경기 판교 건설현장 사고.... 정말이지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다. 작년 가을에 한 산업재해 때는 지인이 일하는 공장 바로 옆공장에서 사고가 나서 가슴을 쓸어내린 일도 있다....촛불을 들었던 백만 시민들의 바람은 결국 촛불로 탄생한 정권에서도 완전히 이뤄지지는 못했고, 이제 시작일 따름이다.


작고 이름 없는 이들의 관심사와 바람이 차곡차곡 모이고 모이면, 언젠가 틀림없이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고 끝낼 날이 올 것이다. 작고 이름 없는 이들의 의미있는 기억과 행위가 위대한 순간을 만들어낼 것이라 믿는다.        



산업안전 면에서 음식물쓰레기 처리장의 작업자를 보호하는 안전장치도 완비하는 조치도 중요하고, 동시에 집집마다 음식물 쓰레기도 덜 내놓을 수 있도록 애써야 하지 싶다. 폐기물관리에서 우선적인 제1의 쓰레기 배출원칙은 (당연한 소리지만) 쓰레기를 애초에 덜 만드는 것이다.     

 

나는 지금 양문형 냉장고를 쓰고 있는데 용량이 크다. 식자재를 사다가 넣어놓고서 바쁠 때면 그만 깜빡하는 일이 잦다. 유통기한이 지나서 음식물쓰레기로 버리는데 그 양을 보면 좀 죄책감이 든다.


예전에 텃밭이 있던 회사에서 일할 때 동료들과 점심시간에 먹고 남은 도시락반찬이나 과일껍데기 같은 류 음식쓰레기를 모아서 흙에 파묻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파묻고 나서 어느 날 한 번은 흙속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흙을 헤집고 살펴봤다. 놀랍게도 지렁이가 열심히 음식물쓰레기를 분해하고 있었다. 오늘은 그 시절이 좀 그립다.     


다니던 회사는 그 건물에서 이사갔는데, 오늘 지도앱에서 예전 회사 주소를 넣어 사진을 보니까 아직 건물이 그대로 있는 것 같다. 요즘과 같은 재개발 열풍 속에서도 아직 노후한 건물 , 텃밭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찌됐건 나는 지금 생태적 음식쓰레기 순환에 조금의 기여도 하고 있지 못하니까, 적어도 식자재를 쟁여놓는 일은 하지 말아야 겠고, 남는 음식물쓰레기를 줄여야겠다고 다짐한다.        

지렁이. 어릴 적에 지렁이 보면서 멍 때리는 걸 무척 좋아했다.


오늘의 정리   

지자체마다 분리배출 앱을 만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지역에 따라 쓰레기 분리배출이 다른 부분이 있으니까 그런 부분을 간단히 알려주고, 아울러 왜 그렇게 버려야 하는지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는 앱이 있으면 참 좋을텐데.      


2021년에 환경부에서 ‘2050 탄소중립’(2050년까지 탄소배출량과 흡수 및 제거 탄소량을 같게 하여 배출량을 제로로 하자) 목표에 맞춰 ‘탄소중립생활실천안내서’를 펴냈고, 내가 사는 주민센터에서도 이 안내서를 무료로 제작배부하여 나도 한 번 읽어봤다. 예컨대 음식물쓰레기 줄이기를 목표했을 때 참고할 배출기준을 설명하는 등 큰 맥락에서 도움이 된다.

https://www.korea.kr/archive/expDocView.do?docId=39631


반면 개별 쓰레기 검색은 안 되지 않아서 정보접근성 측면에서는 좀 떨어지는 것 같다. 쓰레기란 게 일상에서 그때그때 나오는 것이니까 안내서를 일일이 뒤적이며 찾게 되지는 않으니까, 그때그때 쓰는 지자체별 관련 앱이 있으면 편리할 듯하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주민참여예산제’라 하여 예산편성 등 과정에 주민이 직접 예산용처에 대한 의견을 제안하고 참여하는 제도가 있다. 주민참여로 관련 제안을 해볼까 싶은데, 요새 일도 많고 주변에 코로나 확진자도 생기고 해서 여러모로 바빠져서 여력이 없다. 3월 중순까지가 주민참여예산제 제안 마감인 듯한데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애초에 운동하며 쓰레기도 줍자는 매우 단순한 마음으로 시작한 플로깅인데 뭔가 일이 자꾸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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