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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플로거 Feb 22. 2022

부끄러움이란

플로깅 34번째  

날도 풀리고 재택근무 일이 좀 일찍 끝나서 해지기 직전에 플로깅에 나섰다. 플로깅 서른 네번 째. 여느 때처럼 동네에서 온갖 쓰레기가 모이는 터에서 먼저 줍기 시작한다. 

     

우웩. 이게 뭐야. 쓰레기 터에 쓰다 버린 콘돔, 콘돔 박스가 떨어져 있다. 아니 개똥 치우는 것도 황당한데, 이제는 콘돔까지 치워야 하나. 역겹고 한숨이 나는데, 한 10미터 앞에서 이상한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서너 명 청년(이십대 초반)이 큰길로 통하는 골목 어귀에 둥글게 모여있다. 쓰레기를 줍는 나도, 지나가는 행인도 아랑곳하지 않고 청년들이 한목소리, 제법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라면을 먹자, 라면을 먹고, 섹스를 하자, 섹스를 하자” 이러고서는 저들끼리 한바탕 낄낄거리고 또다시 “라면을 먹자~ 섹스를 하자~” 합창을 하더니만 심지어 돌림노래를 부른다. 이따위 노래나 반복하고 모여 서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표정을 힐끗 살펴봤다. 히히덕 거리며 부끄러움이란 걸 전혀 모르는 기색이다.      

“아이고 이 녀석들아. 그런 노래는 방문 닫고 혼자 실컷 부르든지 아무도 없는 산에 가서 혼자 불러라! 너희들이 지금 하는 게 바로 길거리 성희롱이란 거다!”하고 꾸짖고 “콘돔도 너희들이 여기에 버렸지?”하고 따져보고 싶었다. 하지만 젊은이들 덩치를 보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단순한 일탈 행위 정도로 볼 수도 있겠지만, 요 녀석들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콘돔, 콘돔 쓰레기를 본 것이라서 기분이 썩 개운치 않다.     


해질 무렵 골목의 초승달




작년 늦가을. 동네 8차선 도로에서 이 녀석들과 비슷한 또래(십대 후반) 한 청년이 음식배달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나는 걸 현장에서 목격한 적 있다. 그 날은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전 가을 주말이라 그런지 도로에 나들이 차량이 많았다. 도로가 양방향으로 꽉 막혀 있었다. 나는 외출했다가 귀가하던 차에 건널목에서 길을 건너려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멀리서 오토바이가 한 대가 차들 사이를 이리저리 빠져나오는데, 꽤 속도를 내며 횡단보도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때 횡단보도에 파란불 보행자 신호가 켜졌다. 정신없이 달려오던 오토바이 운전자는 신호가 바뀌자 깜짝 놀란 듯,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홱 꺾었다. 천만다행스럽게도, 행인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기 직전이었다. 오토바이와 부딪친 행인이 없었다. 


그렇지만 오토바이 운전자는 급제동 때문에 자신이 가던 방향으로 (도로정체 때문에) 멈춰 서 있던 자동차 트렁크에 그만 쾅 하고 부딪혔다. 큰 소리가 나더니만, 오토바이 운전자가 중심을 잃고 횡단보도 중앙 쪽으로 꽈당하고 오토바이와 함께 쓰러졌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아마도 음식물 배달 일을 하는 듯, 오토바이 뒤에 음식물을 담은 통이 휙 하고 공중에 높이 날아올랐다가 떨어졌다. 오토바이 운전자가 만약 차량과 부딪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가 떨어졌으면 머리를 다쳤을지도 모르는데, 그러지 않아서 또 천만다행이었다. 오토바이가 박은 자동차는 뒷번호판이 떨어졌고 트렁크가 찌그러졌다. 오토바이 운전자가 배달하는 곳에 길을 찾기 위해 지도앱을 켜고 보던 듯한 핸드폰도 날아가 떨어졌다.      


이 모든 일이 단 5초나 되려나?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났다.      


쓰러진 오토바이 운전자는 아스팔트에서 금방 일어났다. 바닥에서 일어나면서 헬멧을 벗었는데 보니까 앳된 청년이었다. 아스팔트에 그만 다리를 쓸린 듯, 종아리에서 피가 났다. 난데없이 사고를 당한 차량 운전자. 급제동으로 오토바이가 차량을 박은 것이라서 운전자 본인도 좀 다쳤을 수도 있겠는데, 차량 운전자는 곧바로 차에서 내리더니 청년의 상태부터 찬찬히 살펴보았다.      


차량 운전자 아저씨가 따뜻한 음성으로 “괜찮느냐”고 묻고서 119를 부르려 했다. 청년은 “괜찮다”고 고개를 떨군 채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고선 청년은 자기 핸드폰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도로 위를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한다. 차량 운전자 아저씨가 “저기, 혹시 안 보이는 데가 다쳤을 수도...뼈가 부러졌을 수도 있으니까, 움직이지 말라”고 만류했다. 아저씨가 “어서 병원에 가보자” 하는데, 청년은 다리를 절뚝이며 핸드폰을 찾는다.     

 

마침 반대편 도로에서 오던 배달음식 오토바이 기사 한 분이 사고 현장으로 다가왔다. 차량 운전자의 권유를 거들었다. 청년한테 “여기 운전자 아저씨 말씀대로 해. 지금 멀쩡해도 다쳤을 수 있으니까 많이 움직이지 말고, 병원에 얼른 꼭 가봐야 해”라고 신신당부하는데, 청년은 “저기 제 핸드폰이 어디....” 하면서 핸드폰만 찾는다.      


나와 같이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사고를 목격한 한 아주머니가 나섰다. 아주머니가 정체된 차량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청년의 핸드폰을 찾아주었다. 그 사이 청년의 종아리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출혈이 심하진 않았는데 피를 닦아야 할 것 같아서 나는 가방을 뒤적이며 가방 속에 넣어둔 손수건을 찾고 있었다.           


청년이 “병원에 안 가봐도 돼요..죄..송..해요.”라고 작게 더듬더듬 말했다. 차량 운전자 아저씨가 사고 신고 전화를 했다. 차량 운전자 아저씨는 언뜻 침착해 보이셨는데, 내심 많이 놀란 듯 신고 전화 때 사고 지점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청년한테 핸드폰을 찾아준 아주머니가 차량 운전자 아저씨한테 얼른 사고가 난 장소 주소를 알려줬다.      


드디어 나는 가방 속 손수건을 찾아서 청년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청년은 손수건으로 종아리 피를 대충 쓱쓱 닦고서는, 핸드폰이 망가지지 않았는지 살피더니만 이내 전화를 걸었다. 친구인 듯 했다.      


“야, 나 방금 사고 났다. 사고 냈어. 아, 어쩌지. 어쩌나. 아, 쪽팔려.”      


자기 몸이 다쳤을 수도 있는데, 핸드폰 통화로 "어쩌나, 쪽팔린다"만 되내인다.  틀림없이 핸드폰으로 배달주문을 받고 그걸로 돈을 벌어야 하니까 사고가 나도 핸드폰부터 먼저 찾고 핸드폰을 살펴봤을 것이다. 자신의 몸이 얼마나 다쳤는지는 뒷전이고, 핸드폰이 안 망가졌는지만 신경을 쓰고 있다. 더욱이 크다면 큰 사고가 났는데, 청년은 부모나 어른이 아닌 친구한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이내 전화를 끊더니만 또 다른 친구한테 전화를 건다. 아마도 기댈만한 어른이 주변에 없겠지 싶다. 친구들과 통화하며 “어쩌지, 쪽팔려. 어쩌지” 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청년.      


차량 운전자 아저씨, 나와 아주머니, 배달음식 오토바이 기사님이 말을 건네도, 청년은 시선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다리를 절뚝이며 친구들과 통화하며 이리저리 서성댔다. 이런 모습 속에 어린 청년의 사정이 전해졌고 마음이 느껴졌다. 


물론 오토바이 과속 운전은 분명 청년이 잘못했다. 그래도 자신의 과실로 사고를 낸 데에 대해 적어도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있으니까, 앞으로 반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청년이 잘 반성하되, 크게 다친 사람이 없으니만큼  자신의 몸을 잘 안 돌보거나 하는 일은 없기를 바랐다.  


오늘의 정리 

플로깅 서른 네 번 째 날. 노랫말도 키득거림도 예사롭지 않은 이십대 초반 청년들의 노래 아닌 노래를 들으며, 콘돔 쓰레기를 치웠다. 성적 일탈인지 길거리 성희롱인지 애매한 노래를 대놓고 떼창하는 녀석들의 여유만만하고 뻔뻔스러운 모습. 어처구니없다.    

  

묵묵히 쓰레기 집게로 콘돔 쓰레기를 줍고 치웠다. 그리고 집게를 소독했다.      


플로깅을 마치고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오는 길. 음식물 배달일을 하면서 사고가 나도 자신의 몸보다 핸드폰이 안 부서졌지부터 먼저 살피던 앳된 청년이 떠올랐다. 길거리 성희롱 이십대 초반 녀석들의 행태가, 내가 작년 늦가을 교통사고를 목격하며 우연히 잠깐 들여다본 어린 청년의 삶과 너무도 대비되어서였다.     


오늘날 청년세대 내부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부모의 재산 증여나 가난 대물림 탓에, 같은 연령대·같은 성별 내에서도 소득·자산·교육·고용·주거 등에서 격차가 심하다. 격차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청년들의 정신은 썩어나가고 있다. N번방 사건의 청년들을 보라. 


본인이 노력한 것도 아닌데 삶의 갖가지 혜택이 다 그냥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라서, 혹은, 본인이 노력한 것보다 훨씬 큰 댓가를 얻고 있어서, 혹은 단지 태어난 성별을 이유로 그저 애지중지 받고 커서, 정신이 무너지고 마음이 그만 썩어버린 일부 청년들.      


아래에 있는 대다수 청년들은 희망이 없는 것만 같다. 가난을 불러온 환경을, 혹은 가난으로 인해 하는 일을 부끄럽게 여겨야만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서 그런지, 너무도 힘들게 살아가는 것 같다. 나도 앳된 나이에 시내에서 철가방을 들고 음식배달 일을 한 적이 있는데, 돌이켜보면 그 시절을 견디고 자긍심을 유지하며 살 수 있던 이유 중 한 가지는 내 또래 아이들이 한 번쯤 비슷한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와 또래가 크게 다르지 않고 따라서 나의 가난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삼십여년 전에도 불평등은 엄연히 존재했지만 오늘날처럼 심화되진 않았다.    

  

청년세대 간 내부 격차는 전세계적인 문제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해 자본이 축적되고 자산형성이 고착화된 선진국에서 피케티지수(한 나라의 총 자산소득을 총 노동소득으로 나눈 값)가 일반적으로 높은데, 한국은 경제발전 수준에 비해 피케티지수가 높다.      


불평등은 바로잡고 개선해나가야 마땅하다. 돈이 돈을 버는 자산소득에 과세를 강하게 해야 하고, 성평등한 교육도 해야 한다. 그런데도 요즘 정치판을 보면, 여성가족부 폐지를 운운하며 청년들을 선동하는 검사출신 정치신인, 무늬만 청년인 꼰대 청년정치가가 있다. 청년층, 특히 일부 남성 청년층을 무지와 자기기만으로 이끌어, 청년층 스스로 불평등에 대한 진실을 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무척 기만적인 정치라 생각한다. (나흘 전쯤에 위에서 언급한 모 정치신인의 '여가부 폐지' 메세지를 담당한 비서관이 여성 신체 불법 촬영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는 뉴스를 봤다. TMI지만 기억을 위해 써놓는다.)

 

내가 사고를 목격한 어린 청년은 미루어 짐작컨대, 가족 해체나 생계의 어려움, 혹은 가정폭력 등을 배경으로 가정이 위기에 빠져서, 남들보다 일찍 노동시장에 나와야만 했을 것이다. 이런 위기청년(청소년)과 위기청년의 가정을 돕는 일을 하는 게 여성가족부 업무이기도 한데, 무턱대고 여성혐오만 부채질해서 표를 얻고 권세를 누리려 한다. 불평등에 관해 진실을 호도하는 정치이다.


이런 선동정치가 앞으로 얼마나 더 갈런지 모르겠다. 아무쪼록 이런 가운데, 자신이 마주한 삶의 힘든 여러 상황들을 자신의 탓으로만 돌리며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는 청년들이 한 명도 없으면 좋겠다.  부끄러움은, 불평등에 대해 저따위 저차원 (설득과 기만의) 선동정치를 해법이랍시고 내놓는 이들의 몫이다.   


   

정월 대보름이 오기 전 초승달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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